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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벌레 잠잠이 Sep 02. 2021

잠 못 드는 밤

오늘도 올빼미처럼 올뺌올뺌

 모두 힘들다.


 아버지는 고관절 수술 후 그제 실밥을 풀고 어제부터 걷기 연습을 시작하셨다.

앞으로 2~3주 정도면 정형외과 진료는 마무리된다고 한다. 추석 연휴 전에는 퇴원하실 수 있을 것 같다.

 반복되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길지,
감히 짐작해본다.


 그 긴 하루를 앞으로 짧아야 2주 길게는 3주까지 버텨내셔야 하는 것이다. 아버지와 통화할 때마다 크게 호흡을 들이마시고  씩씩한 목소리를 낸다. 힘내시길 바라면서.


 어머니는 아버지 투병생활 동안 가까이에서 모든 상황을 함께 하셨으니 이미 심신이 지치셨을 것이다. 그런데 또 추석 연휴부터 요양보호사와 아버지 케어하시느라 더 힘드실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어머니를 모시고 식사를 하려고 한다. 예전처럼 극장 나들이나 문화센터 강좌는 언감생심이지만.

햇볕과 바람도 쏘이며
기운 좀 내시길 바라면서.


 남편도 힘들다.

실무 경험이 거의 없는 2세가 책임자 자리에 앉아서 결재 위주 일을 하기 때문이다.

주 몇 회인지 몇 시간 출근하기 때문에 실제 일하는 것보다 보고 받고 결재하는 게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비교 견적서 내라 어느 팀 직원은 뽑지 마라, 그 일 직접 하겠다, 하면서 본인의 근무 시간은 늘리지 않는단다.

 결국 실무는 그 직원 몫까지 다른 사람이 하고 2세 책임자는 결재만 하는 셈이다.


 그래서 남편은 울화통이 터진다고 하면서도 지난주부터 회사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온다. 최근에 내가 체중이 많이 빠져 저녁 준비하는 수고를 덜어주고자 하는 배려다.


 직장이 멀어서 회사 식당에서 저녁밥을 먹고 가는 직원들이 많다고 했는데, 남편은 야근이나 운동 약속이 없으면 집에 와서 같이 저녁식사를 했다. 수다를 찬 삼아 먹으면 기분전환이 된다고 한다. 주중에는 출퇴근 시간이 오래 걸리는 남편이 저녁 준비를 하기는 어려우니 내가 주로 했다.

대단한 요리를 하는 것도 아닌데,
그 일이라도 줄여주려는
남편이 짠하다.


 Y도 힘들다.

모의고사 결과가 6월 보다 안 나와서 실망이 크다.

게다가 최근에는 허리 통증도 심해졌고 장도 좋지 않아서 먹는 것도 제한적이다.


 하루에 열 시간 이상을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고 있는 상황에서 건강까지 좋지 않으니 힘들어한다.

먹는 것이라도 자유롭게 먹을 수 있다면 체력 보충도 되고 스트레스 해소도 될 텐데, 안쓰럽다.


 J도 힘들다.

자유로운 영혼이라 원하는 대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다음 주부터 매일 등교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코로나 상황이라 좋아하는 곳을 다니지 못하는 건 아쉬워했으나 격주 등교를 좋아했던 터. 4단계에서는 원격수업과 등교 수업을 병행했는데, 당장 다음 주부터 전면 등교로 바뀐다니 벌써부터 긴장 모드다.



 나는 힘들다는 말을 하기 싫어했다. 엄살 부리는 것도 싫었다. 그러다 최근에서야 나를 다시 보게 되었다.

 스스로에 대해 관대하고 긍정적이었던 나는 온데간데없고 여유 없는 낯선 이가 보였다. 지난해부터 앙상한 나무처럼 변해가는 기분이다.


 그래서 다시, 나를 찾고 있다.

쓸모 있는 일이 아니더라도 무쓸모한 일도 내가 좋아하는 일에 조금이라도 시간을 써야지.

힘든 건 힘들다고 말하고 거리두기가 필요한 일들은 때로 냉정해야지.


 그리 희생적인 삶을 살지도 않았지만 그렇게 조금쯤 이기적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밤.

어디선가 올빼미가 울고 있을 것 같은 새벽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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