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그렇게 바쁜데? 모르면 말도 하지 마.
5시 20분.
알람이 울린다. 40년간 게으른 잠순이였던 나는 새벽요가를 다닌다. 5시 20분이라는 시간은 사실 명절 당일에나 일어나 음식 하는 부담스러운 시간으로 인식했던 내가 그 시간에 일어나 운동을 한다.
이 시간에 깨서 무엇을 한 적이 있던가? 정말 마음먹기 달린 걸까? 아니면 나이가 들었다는 슬픈 증거일까? 나는 평생 해보지 않았던 새벽요가를 하고, 또 걷는 사람이 되었다.
사실 살기 위해, 살아내기 위한 자발적 동기였다. 나는 정말로 잘 살아내고 싶었다.
매일의 지친 일상과 저질 체력으로 악순환이 이어졌고, 나의 저질 체력은 사랑스러운 아이들에게 화를 내는 엄마로 만들었다.
7시가 되어 집에 도착한다. 집에 들어가면서 심호흡을 해본다. 예측이 안 되는 이 아침을 매 순간 겪으면서도 또 다른 아침을 마주하는 것이 신기하다. 착착 진행되는 날이면 그날은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이 마음을 남편은 알까? 운동하고 집에 오면 이미 출근하고 없는 남편이 알리가 없다. 언제나 나의 몫인 등원 준비가 시작이다.
"서준아~ 우리 이쁜 서준이 일어나~~ 많이 피곤하지? 잘 잤어?."
엉덩이를 토닥거린다. 팔다리도 조물조물 등도 토닥토닥 잠든 세포들을 깨워둔다.
잠이 많은 첫째를 깨우는 일이란 여간 쉽지가 않다. 이 아이는 분명 나다. 나를 닮은 게 틀림없다.
아침잠 많은 나를. 하지만 업그레이드되어 태어난 것 같다.
'나는 짜증은 안 냈다. 이 녀석아!!' 피곤하면 짜증과 성질로 무장하고 더 자겠다고 고집부리며 막무가내로 나오는 첫째에게 안 해본 방법이 없다. 그동안의 노하우 중 제일 먹히는 방법은 엄마의 개그와, 친절함 이 두 가지다.
내 아이는 알아서 일어나는 아이도 아니고, 일어나!! 한다고 벌떡 일어나는 아이도 아니다. 인내심의 한계가 찾아와도 본색을 철저히 숨겨야 한다. 지금 이 순간만은 세상에서 가장 친절하고 사랑스러운 말투의 엄마여야만 한다. 가장 빠르게 아이가 일어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첫째가 기분 좋게 일어난다. 다행이다. 첫째가 짜증이 섞이는 순간 욱하는 감정들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와 계획된 시간들이 무너질 수 있다. 나도 이런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 해보지만 긴 생각할 겨를이 없다. 이때부터는 10분씩 알림이 울리게 된다. 시간을 체크하며 아이들을 챙겨야 한다. 아침을 차려주고 먹을 동안 영어 영상을 틀어준다. 말도 말자. 이루틴도 장착하기까지 힘든 여정이었다. 그제야 나도 씻을 수 있다. 그다음 둘째를 깨운다. 둘째는 첫째보단 비교적 수월하게 일어난다. 너무 고마운 둘째. 물론 이 친구도 변수는 늘 존재한다. 잘 일어나다가도 한 번씩은 첫째보다 더한 진상모드로 나를 진땀 빼게 하기도 한다. 아이들 먹을 간식과 물병에 물을 담아 챙겨주고 각자 씻고 옷을 입으면 등원준비 끝이다.
첫째 아이는 같은 아파트 사는 친구와 같이 학교를 간다. 아직 저학년이고 학교가 멀어 친구의 아버님께 도움을 받고 있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이웃이 있어 행복했다.
It's 예준 타임~~~~
남은 둘째를 위한 시간이다. 형이 나가고 나면 나는 예준타임을 외치며 오버스럽게 춤을 추고 사랑스러운 둘째에게 무한 뽀뽀를 한다. 극 I인 엄마는 오늘도 극 E흉내를 낸다. 사실 아이와 단둘이 있는 순간은 나도 모르는 또 다른 나와 마주하는 것 같아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다. 늘 바쁘게 형아만 챙겨주고 신경 쓰다 보니 그 시간에 소외되어 있을 둘째가 내심 마음에 걸려 더 오버하는지도 모르겠다. 다행히도 짧은 시간이지만, 아이는 이 시간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준비를 하고 둘째와 집을 나선다. 유치원을 가면서 늘 사랑한다고 수고하라고 말을 건네는 둘째와 헤어지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빨리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왜 늘 출발할 때는 같은 시간이 되어 버리는 걸까..?
이때부터는 얼른 백미러로 보이는 나의 처참한 생얼에 생기를 주는 작업을 한다. 신호가 걸릴 때마다 황급히 작업할 찬스. 선크림을 바르고 쿠션을 바르고 입술을 바르면 끝이다.
거울도 잘 안 보고 익숙한 손길로 잘도 한다. 너무나도 생기 있게. 나머지 작업은 회사에 도착해서 하기로 한다.
일단 자리에는 빨리 앉아야 하니까 페달을 더 힘차게 밟는다.
이상한 법칙이 있던가? 어쩌다 아이랑 실랑이가 벌여져 늦게 나오는 날은 신호를 잘 받게 되아 간신히 지각은 면하게 되고, 여유 있게 나오는 날은 이상하게 거리게 차가 많다. 공사가 있는 날도, 거리에 사고가 있는 경우도 더러 있다. 어쨌거나 신기하게 나는 근무시간 5분 전에 도착하고 심장이 쫄깃하고 간당간당한 일상을 겪는다. 차에서 내리면 사무실로 무조건 뛴다! 젖 먹던 힘까지. 불안하고 조마조마한 출근길이라 내일부터 여유 있게 나와야지 생각하지만 내 일상은 늘 똑같다.
그래야 눈치 보지 않고 하루를 편하게 시작할 수 있다. 5분 이상 일찍 착석하면 속으로 혼자 그렇게 당당할 수가 없다. 어쩌다 간당간당하게나 몇 분 지각하며 앉을 때는 20년 차 직장인이어도 눈치가 보인다. 아이 엄마니까 이해해 주겠지?라는 이상한 합리화를 내세우며 조용히 자리에 앉는다. 사실 아무도 내 사정에 관심 없는 것을 알지만 그런 합리화들이 내 마음을 편하게 해 주니까.
커피를 타서 자리에 앉으면 밀린 메일을 보며 이제 나의 일이 시작된다. 밀려있는 메일을 하나 둘 읽으며
그렇게 엄마가 아닌 나로서의 하루가 시작된다.
가끔 숨 가쁘게 출근하며 커피를 타던 내게 뭐가 이리 바쁘냐며 묻는 동료, 10분만 더 일찍 오면 되지 않냐는 그의 말에 슬쩍 웃으며 아침이 얼마나 바쁜데!라고 가볍게 말한다. 어차피 이해 못 한다. 남자들은
'워킹맘 아니면 말도 하지 마라!!"
아무도 몰라 이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