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현실, 꿈같이 풀어낸 '똥' 이야기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를 보고

by 별별

이 연극은 우리에겐 감독으로 더 잘 알려진 이창동 작가의 소설 '녹천에는 똥이 많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소설이 무대 위에서 그대로 눈 앞에 펼쳐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원작에 충실한 작품이었다.


소리들

독특한 것은 연극 내내 들리는 '소리들'이다. 소설 속 문장들은 연극의 내레이션이 되었다. 준식, 민우, 준식의 아내를 제외하면 나머지 인물들은 1인 다역이었고 이는 연출자가 의도한 것이었다. 그들은 마치 준식이 보는 환영처럼 귀에서 맴돌며 관객들에게는 준식의 마음의 소리를 들려주는 역할을 한다.

두산인문극장2019_녹천에는똥이많다_공연사진 (1).jpg (이미지 출처: 두산아트센터)


준식, 민우, 미숙

연극의 줄거리는 형 준식의 아파트에 이복동생 민우가 눌러앉으면서 준식의 아내(미숙)와 준식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게 된다는 이야기다. 준식은 민우를 보면서 자꾸만 어머니와 아버지의 기억을 되살리게 되는데 이러한 과거의 기억들은 현실에 타협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준식의 기원을 스스로 탐색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미숙은 그런 준식과는 달리 오직 이상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민우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면서 준식은 민우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괴로워하게 된다.

두산인문극장2019_녹천에는똥이많다_공연사진 (6).jpg (이미지 출처: 두산아트센터)

간단히 말해서 준식은 소시민, 민우는 지성, 미숙은 허영을 상징한다. 세 명의 인물들은 준식의 아파트에서 한 데 만나게 되고 그들은 자신들에게 결여된 것을 하나 둘 깨닫게 된다. 특히 눈에 띄는 변화를 보이는 것은 미숙이다. 민우를 통해 자신이 잊고 있었던 옛날의 순수했던 모습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준식은 미숙을 오해하고 그가 단순히 민우를 좋아하게 됐다고 생각한다. 미숙은 준식을 이해하지 못하고 준식도 이해받지 못하는 것에 절망을 느낀다. 그는 그간 드러내지 못했던 또 다른 자아를 만나게 되면서 기존의 준식은 파괴되고 가라앉는다. 마지막 장면의 똥은 그걸 표현하기에 아주 적절한, 상징적인 소재였다.


23평짜리 아파트

이 연극에서 아파트는 그들이 처한 현실적인 공간이다. 마침내 준식의 부부가 갖게 된 조그만 보금자리였고 민우가 도피하면서 맞닥뜨린 현실이다. 그런데 이 공간은 연극에서 독특하게 연출된다. 준식의 아내는 이 집에 이사 온 후 매일같이 수족관을 사 오라고 채근하는데 연극 중반에서 아파트는 물소리, 물이 비치는 영상 효과와 마치 수족관처럼 묘사된다. 그렇다. 네모난 한정된 공간에 금붕어 몇 마리가 제자리 헤엄을 하는 수족관. 아파트를 마련하는 것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만족하는 이 부부는 그렇다면 금붕어와 같았고 훗날 죽어버린 금붕어는 그 수족관에서 탈출하려는 영혼일지도 모른다.

두산인문극장2019_녹천에는똥이많다_공연사진 (15).jpg (이미지 출처: 두산아트센터)


우리 부모님 세대

내가 연극을 관람했던 날은 연출진과 관객과의 대화가 있던 날이었다. 다양한 말들이 오갔지만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신유청 연출가가 이 연극을 연출하면서 부모님을 떠올렸다고 말한 부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원작과 이 연극 속 주인공들이 1990년대의 성인이라는 점에서 우리 부모님 세대였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나는 기억한다. 우리 집에도 수족관이 있었고 거북이를 키웠다. 엄마는 대야를 이곳저곳으로 들고 다니며 물을 짜내며 걸레질을 하셨다. 아빠가 출근하실 때 우리는 쪼르르 달려 나가 "다녀오세요~"하고 외쳤다.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우리 엄마와 아빠가 일군 그 아파트가 어떤 의미였는지를.

그래서 더욱더 준식을 더 이해하게 된다. 준식을 단순히 소시민으로, 그가 정의와 이상을 깨닫기만을 바라는 것은 너무 단편적 시선일 것이다. 그의 아내가 준식에게 불평하고 주변 사람들이 큰소리 한번 못 치고 살아가는 준식을 은근히 우습게 본다고 해서, 그를 지질한 인간으로만 볼 수 없다. 그는 우리 부모님 세대의 '누군가'였다. 또 준식이 애지중지하는 것처럼 아파트는 8~90년대를 살아온 '누구든' 꿈꾸던 인생의 목표였다. 비단 옛날 어른들 뿐만 아니라 우리는 '누구나' 소심한 부귀영화를 꿈꾸지 않는가. 현실은 누구에게나 조금은 슬프고 조금은 지루하고 조금은 견디기 힘들 뿐이다. 그걸 가지고 감히 준식을 바보 같다고 폄하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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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두산아트센터)
소설과 연극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나는 참지 못하고 질문을 해 버렸다. 연극에는 소설 문장이 내레이션, 대사 등으로 그대로 등장했는데 왜 각색을 많이 하지 않으셨냐고. 각본가에게 무례한 질문일까 살짝 고민했지만 정말로 궁금했다. 창작자에게는 보통 자신의 손길로 덧칠하려는 욕심이 있기 마련이다. 윤성호 각본가는 말했다. 그 시대 그 원작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 시의성이 좀 떨어질 수도 있겠지만 '거리감'을 두고 바라보고 싶었다고. 그가 말한 그 거리감은 보편성을 말한 것 같았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우리는 현실과 이상이라는 고민을 마주한다. 상징적으로 아파트라는 대상을 두고 준식과 민우, 미숙은 곧 현실과 이상, 그 둘의 괴리감을 표현한 것이었다. 이 또한 각본가의 결단이었다.



연극은 소설과 비슷했지만 또 한편으론 너무나 입체적이었다. 준식의 독백이 관객의 얼굴에 침을 튀길 것만 같고 준식이 잡는 똥이 내 손에도 만져질 것만 같은 느낌. 첫 장면에서부터 내레이션이 여러 인물들을 통해 다채롭게 읽히는 것 등이 그랬다. 과거로의 회상, 수족관으로의 전환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이루어졌다. 너무나 감쪽같은 느낌, 그건 이상하게 자연스러운데 의외라는 느낌이었다. 이게 바로 소설을 읽는 것과 다른 연극 연출의 묘미가 아닐까.

"녹천에는 똥이 많다." 우리에게 가르치려 들지 않는데, 무언가 뭉클하게 얻어가는 게 있다. 동시대 한국의 현실을 다룬다는 점에서 어쩔 수 없는 무거운 현실의 짐을 이고 가야 했지만 또한 환상적으로 표현한 한 편의 꿈같았다. 배우들이 연기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네 모습이었다. 그들을 관찰하면서 섬뜩하고 아프고 슬펐다. 부모님이 생각나기도 하고 내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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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두산아트센터)


준식의 아내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파트를 닦고 또 닦는다. 첫 장면에서는 우리 집을 가졌다는 기쁨이 반짝 반짝이는 것 같았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참고 견디는 어떤 오욕을 닦아내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똥을 뒤집어쓴 준식의 뒤로 그의 아내가 걸레질을 하는 모습을 보는 게 힘들었다. 똥과 걸레질을 대놓고 병치시키는 것은 관객들에게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걸 인지시킨다. 명치를 콩콩콩 때리는 듯 통증이 밀려오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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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6월 8일까지 계속된다. 예매는 두산아트센터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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