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페스트'는 어떤 존재입니까

간절할 때 읽은 알베르 카뮈의 책

by 별별


얼마 전 대학에 입학한 사촌동생에게 이 책을 선물했다. 축하 선물로는 너무 무거운 책이 아닐까 걱정했는데... 코로나바이러스가 온통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는 지금, 이제 와서 보면 현실에 비해 결코 무거운 책이 아닌 게 되어버렸다.


간절할 때 책을 찾는다.


고향은 힘들 때 찾는다고 했던가. 나에겐 책이 그렇다. 마음이 허해졌을 때, 지치고 힘들고 기댈 곳이 없다고 느껴질 때, 나도 모르게 책장 앞을 서성거리게 된다. 익숙한 문체가 주는 편안함을 기억하고 읽었던 책을 다시 읽으며 위안을 얻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코 현실을 외면하고 싶진 않았다. 차분하고도 이성적인 문장의 알베르 카뮈의 책을 꺼내 들었다. 사촌동생에게 선물하기 전에 다시 읽어보았고, 이번에 또다시 읽으며 밑줄을 그어 보았다. 책에 몸을 의탁하되 눈은 점점 더 말똥말똥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문장들이 내 안의 흐물흐물한 마음을 펼치는 기둥이 되었다. 조금씩 내 안에는 어느 공간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나만의 은신처는 책 속의 문장들로 점점 더 힘이 솟는 것 같았다.






날이 갈수록 나는 진리나 관념에 지쳐가고 있었다. 심지어 사랑이나 증오와 같은 감정으로도, 그 어떤 것도 구원의 손길을 줄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



"틀림없이 우리들의 사랑은 여전히 거기에 대기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쓸모없는 것이어서, 지니고 다니기에만 무겁고 우리의 마음속에서 생기를 잃어, 마치 죄악이나 유죄 판결과도 같이 불모의 존재였다.... 그 사랑은 이미 장래가 없는 인내에 불과했었고 좌절된 기대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절망에 익숙해져 버리는 것"이다. 최소한 페스트의 '공범자'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페스트는 단순히 전염병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종류의 악, 두려움을 말하는 듯하다. '페스트'를 대하는 다양한 인간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되묻게 된다.


그러는 와중에 나는 의사 리외를 점점 존경하게 되었다. 그는 성인이 아니었으므로 철저히 인간의 도리를 하고 있었다. 그는 현실을 받아들였고 그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였을 뿐이다. 진정으로 겸손한 자세는 남을 높이거나 나를 낮추거나 하는 게 아닌 그저 계속하는 것이라는 걸 깨닫게 했다.




어느새 동정심을 잃어가는 것조차 차라리 기쁘게 생각할 정도로 지쳐가던 의사 리외. 이 역시 현재 대구에서 피땀 흘리며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는 의료진들을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그런 선한 모습에 지나치게 의미부여를 하는 것은 또한 악에게 찬사를 보내는 것이라는 작가의 말은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페스트'는 도대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나는 바이러스가 단순히 의학적인 전염병으로만 보이지 않았다. 바이러스는 또한 사회 곳곳에 영향을 미치며 온갖 뉴스를 양산해 내고 있었다. 소소한 사회 곳곳의 담론이 모두 다 바이러스로 귀결되는 것은 마치 블랙홀과도 같았다. 이에 대한 생각은 리외에게 한 질문과 답변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 페스트가 선생님에겐 어떠한 존재인지 생각해 보고 싶어 지는군요."


"알아요." 리외가 말했다. "끊임없는 패배지요."


"그 모든 것을 누가 가르쳐 드렸나요, 선생님?"


대답이 즉각적으로 나왔다.


"가난입니다."



의외의 답변이었지만, 리외의 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사실 전염병이란 것은 사망자들의 경우를 볼 때 대부분 기저질환을 촉발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페스트'는 사회에서 또한 고질적인 병폐를 드러내고 면역력 없는 부분을 까발림으로써 고통과 혼란을 야기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신천지와 같은 폐쇄적으로 은폐되어 왔던 거대한 집단은 기저질환과 마찬가지로 사회를 이미 멍들게 하고 있었고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비로소 드러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가 우리나라에게 가차 없이 빗장을 걸어 잠그며 (비록 전염병에 대응하는 차원을 인지하더라도) 외교적 영향력의 약점을 여실히 볼 수 있었고, 마스크 대란, 자가격리 시스템의 허점으로 불거진 복지의 사각지대와 시민의식의 부족한 부분 등, 우리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들이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바이러스와 결부되어 큰 사건 사고 사태가 되어가고 있는 걸 목도하게 되었다.


어쩌면 '페스트'가 야기한 우리의 두려움은 병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뿐만 아니다. 이미 면역력이 약화된 사회, 애써 외면하려 했던 현실을 마주하고야 말 것이라는 두려움, 바로 그것이 우리를 더욱더 불안하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페스트'는 치료해야 할 것이다. 거침없이 환자를 발굴해서 병든 사회를 목격하는 것은 쓰라리지만 필요하다. 그리고 약을 먹고 공기를 주입하는 인공 처치를 하는 것이 현재 상황으로는 그것이 가장 최우선이고 급한 문제다. 하지만 '페스트'는 이번으로 끝날 것이 아님을 충분히 예상해야만 한다. 이번 사태가 진정되면 우리는 또 다른 페스트와 싸우기 위해 우리 사회의 면역력을 키우는 것이, 병의 예방을 위해 시스템을 정비하고 시민의식을 다잡는 것이 필요할 것임을 주지해야만 한다



'페스트'는 없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의 희망 또한 계속해서 생겨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쓰러지고 일어나고를 반복하며 마침내 일상이라는 평화를 유지하게 될 것임을, 바라고 또 믿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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