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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별 May 25. 2021

아빠와 엄마에 대한 오해

생각의 근원



아빠는 나에게 어떤 것도 강요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나는 누누이 생각했다.


나는 아빠를 위해 살지 않을 거라고.


왜 그런 생각이 나를 지배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항상 아빠의 울타리를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야만 진짜 어른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본다.


그 시작은 엄마였을 것이다.




어렸을 적 기억으론 우리가 학원에 갈 때 항상 바둑 기원에 출근하시던 엄마. 여행을 좋아하시고 동네 학생들에게 과외를 해 주시고 끊임없이 자격증을 따시고 대학원 공부 등 다른 쪽에서 더 두각을 나타내시던 엄마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중학교 선생님이셨던 엄마는 아빠와 결혼하면서 교직을 그만두고 애들이 좀 크면 다시 일하기로 아빠와 약속했지만 끝내 직장으로 복귀하지 못하셨다. 엄마는 아빠와 부부싸움을 하고 난 뒤에 뒤늦게 울면서 우리에게는 "너희는 꼭 직업을 가져라, 보란듯이 살아"라고 말씀하셨다. 마치 <선녀와 나무꾼> 동화 속의 선녀처럼 엄마는 원치 않는 가정주부가 되어 버린 것처럼 보였다.  


한편 아빠는 (내가 생각하기에 예쁘게 들렸던) '누구 엄마' 또는 '부인'이라는 호칭을 쓰지 않으시고 엄마의 이름을 그대로, (내가 듣기에 함부로 들렸던) "영숙아"라고 부르셨다. 엄마에게 반찬 가짓수가 너무 없다고 신경 좀 써라는 잔소리를 하셨고, 셔츠 단추가 떨어져 있을 때 매우 화를 내시곤 했다.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오시면서 주말에도 집안일이라곤 하나도 하지 않으셨다.


그로 인해 나는 아빠를 가부장적인 사람이라고 규정지어 버렸고 나에게 아빠란 존재는 남녀평등을 방해하는, 가족이라는 작은 사회에서 극복해야만 하는 대상이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커가면서 물 반 컵이 '반밖에 남아있지 않다'기보다 '반이나 남아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빠의 행동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아빠는 엄마가 '누구 엄마'로 불리는 것보다 본래 이름을 기억해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계셨다. 엄마가 인정하듯 엄마께 여느 직장인에 뒤지지 않는 생활비를 주시면서, 아빠는 직장에서 엄마는 가정에서 서로의 역할 분담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집안일은 거들지 않으셨다. 오히려 내가 "가정주부는 절대 되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할 때 가정주부 또한 엄연한 직업으로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에 대해 경계하셨다. 아빠는 엄마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엄마를 직장이 가정일 뿐 '가정주부라는 직업'을 가진 직업여성처럼 대우하고 있으셨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빠는 엄마가 좀 더 주부로서 프라이드를 가지길 원하셨던 것 같다. 반찬을 타박하고 단추가 달려있지 않은 것도 그 한번 때문이 아니라 여러 번 말해도 개선되지 않았을 때였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런 잔소리들은 엄마가 주부로서 본분은 충실히 하지 않으면서 자꾸만 밖으로만 나도는 것에 대한 불만이셨을 것이다.


아빠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어쩌면 엄마라는 존재를 단순히 피해자로 규정짓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채 아빠를 가해자로 오해한 나에게 그 원인이 있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는 엄마였고, 아빠 또한 그 나름의 이유가 있는 아빠였다.


기울어진 우산만큼, 알고보면 엄마를 많이 생각하셨던 아빠




아빠, 저는 아빠를 오해하고 있었다는 걸 인정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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