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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별 Dec 02. 2016

키르기즈어를 배운다는 것

아직 낯설지만... 살기 위해 배운다

나는 키르기즈어를 배우고 있다.


키르기즈어를 배운다? 키르기즈스탄에 왔으니 키르기즈어를 알아야 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하다. 잠깐 여행온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자연 풍광만 보며 살 것도 아니고, 나는 이곳에서 2년 동안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 심지어 키르기즈스탄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교육을 해야 하는 임무까지 있다. 때문에 현지어를 알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현지어 학습은 두 달 동안 현지적응교육의 약 90%를 차지하며, 가장 힘들고 가장 요긴한 수업이다. 선배들의 말을 들어보면, 실제로 이 두 달 동안 배우는 현지어가 2년 동안 간다고 하니, 초반에 언어를 배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모른다.


낯설고 쓸모없는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엔 키르기즈어를 배운다는 게 무척 낯설었다. 심지어 이상하고도 쓸모없는 느낌이었다. 과연 키르기즈어를 배워서 나중에 어디에 쓰란 말인가. '쓸모 없음'이란 경솔한 판단은 지금까지 내 경험에 비추어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내가 지금까지 외국어를 배우는 건 쓸모를 위해서였다. 다시 말하면, 언어를 배우는 목적은 항상 다른 이득을 좇기 위한 수단과 방법이었다.


첫 번째로 공부한 영어는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였다. 영어는 나에게 다른 수학이나 과학 과목과 다를 바 없이 '한 과목' 이었다. 학교 시험 점수를 올리기 위해, 토익 점수를 받기 위해, 토플 점수를 받기 위해, 공부를 하고 학원을 다녀왔다. 두 번째, 일본어도 마찬가지다. 수능을 치기 위해 필수 제2외국어로서 공부한 것이 다다. 하지만 '너무 재미가 없어서' 결국 수능과목으로 일본어를 공부하는 것을 포기했다. 세 번째로 배운 중국어는? 이건 언어를 배웠다고 말하기도 부끄러운데, 그냥 학원을 다녔다고 하는 게 맞겠다. 학원을 다닌 이유는 점심을 먹기 위해서였다. 회사 팀원들이 다 중국어학원을 다니는 바람에 함께 점심을 먹기 위해서는 이게 최선이었던 것이다. 구체적인 목적 없이 어설프게 따라 다닌 결과, 9개월이나 학원을 다녔음에도, 머리에 남는 건 하나도 없다.내게 언어를 배운다는 건 항상 이런 식이다.


사실이 그랬고, 내가 언어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솔직히 '언어' 공부라고 생각한 적 또한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언어'란, 서로 대화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정작 의사소통이라는 단순하고도 명료한 언어의 일차적 목적을 위해 배운 적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점수나 성적이라는 목적 없이, 나중에 다른 곳에 써먹어야겠다는 딴 생각 없이 언어를 배운다는 건... 그래서 많이 낯설었다.


언어를 배워야 하는 이유는 분명했다.


하지만 그 분명한 이유를 이곳에 도착해서야, 아니 며칠 동안 지내고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점점 더 목적과 필요성은 선명해졌다. 나의 마음가짐도 어느새 달라지고 있었다.


키르기즈어를 배워야겠지? → 배워야지. → 아니, 배워야만 해. → 배울 수 밖에 없다!


그 분명한 목적이란, 바로 '살기 위해서'이다. 살기 위해 식료품을 사고, 살기 위해 장갑을 사고, 살기 위해 집을 계약해야만 한다. 나는 물건이 필요하고 사람들에게서 그걸 구해야 한다. 사는 것은 곧 말하는 것과 다름 없었다.


키르기즈스탄에 도착하자마자 당장 다음날 아침, 정말 황당했다. 빈 집에 룸메이트와 살게 되었는데, 사 놓은 게 없으니, 당연하지만 그날 아침은 아무 것도 먹을 게 없었다. 그런데 집에 먹을 것이 없다니,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그땐 왜그렇게 황당했는지. 이제 정말 낯선 곳에서 막막한 생활을 시작하는 게 실감이 났다. 비상식량으로 배낭에 싸온 초콜릿으로 아침을 때우며 룸메와 서럽게 맛있게 먹던 기억이 난다.


언어가 안 되니 마트에서 가격이 적힌 대로 물건을 사는 수 밖에 없었다. 근데 그것도 정말 어려웠다. 빵하고 먹으려고 우유코너에 갔는데, 우유같이 생긴 게 너무나 많았다. 대충 우유겠거니 하면서 팩 하나 집어들고 온 게 하필이면 요거트였다. 그런가 하면, 과일을 묶어놓은 봉지가 있었는데 그걸 계산대에 들고가니 직원이 '뭐라뭐라' 말을 하는데 알아듣지 못해 그냥 안 사고 말았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건 저울에 달아서 가격 스티커를 붙여오란 소리였다. 아무튼 그렇게 마트에서 물건을 사는 것 조차 나에겐 도전이었다.


싸고 질 좋은 농산물은 사려면 시장을 가야만 했는데, 한동안 시장 갈 엄두를 못냈다. 이곳에 온 지 이틀째 되는 날. 시내투어를 하면서 가이드와 함께 시장을 간 적이 있다. 그땐 키르기즈어를 배우기 전이라 짧은 러시아어로 '스꼴까(얼마예요)?'라고 물어보는 건 하겠는데, 정작 그 다음에 얼마인지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아무리 주의를 집중해도, 손짓 발짓을 해도, 알고보니 그게 15솜이 아니라 50솜었고... 가격을 알아듣기가 너무 힘들었다. 흥정은커녕... 아, 아직은 무리구나... 그런 생각에 지레 시장에 갈 생각조차 포기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현지인 친구없이 시장에 우리 힘으로 가보진 못했다.)

처음으로 갔던 이름모를 시장.

그렇다. 아직 그 수준 밖에 안 된다. 뭐라도 하나 제대로 사려면, 언어를 배워야만 했다. 제대로 먹고 입고 살기 살기 위해선, 언어가 필요했다.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서?
언어를 배우는 이유는 또 있다


그런데 요즘은 또다른 언어에 대한 충동이 막 솟구친다. '무언가 말하고 싶은' 충동이다. 단순히 인사를 하거나 물건을 사는 정도의 초면인 사람들 이외에, 이제는 자주 보고 친해진 사람들이 생겼다. 그 사람들에게 내 생각을 말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막 떠오른 생각, 너무 궁금한 것들, 말하고 싶은데 단어를 모르겠고 그래서 입이 쩍 벌어진 채로 정지하는 순간이 온다. 치밀어오르는 답답함에 '막 말하고 싶어 미치겠는' 순간이 온다.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서만 언어를 배우는 것이 아니다. 필요한 것은 빵과 우유 뿐만이 아녔다. 언어를 배우는 목적은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그런 욕구가 있다. 바로 사람들과 '교감'을 하기 위한 것이다.


"선생님, 왜 사람들이 키르기즈어를 안 쓸까요?"


키르기즈스탄이 특이하다고 느낀 건 한두가지가 아니다. 특히 의아했던 것은 정작 키르기즈 사람들이 키르기즈어를 잘 안 쓴다는 사실이다. 그 사실은 내게 사뭇 충격이었다. 나는 이곳에 와서 열심히 키르기즈어를 배우고 있는데, 정작 쓸 일이 별로 없는 게 아닌가. 가게에 가도, 택시를 타도, 설사 키르기즈어로 묻는다 하더라도 하나같이 러시아어로 대답한다. 아마 알아들었을 텐데도! 이 나라의 공식어가 키르기즈어이고 공용어가 러시아어이긴 해도, 이정도로 러시아어를 많이 쓸 줄은 몰랐다.


물론 러시아어를 더 많이 쓰는 건 수도 비쉬켁에서만이라고 한다. 지방에 가면 대부분 키르기즈어를 쓴다고 그런다. 그도 그럴 것이, 수도에는 정말 다양한 민족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수많은 민족들이 다 잘 아는 러시아어가 많이 사용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키르기즈인이냐고 먼저 묻고 확인을 받은 후에도, 인사말을 키르기즈어로 해도 난처한 표정을 짓는 키르기즈인들을 종종 봤다.


현지어 선생님께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다. '선생님, 가게에 가서 얼마냐고 물어봤는데 러시아어로 말해서 너무 헷갈려요. 왜 러시아어를 쓰는 거죠?' 실제로는 이랬다. "선생님, 가게에서, 나, 키르기즈어, 말했다. 그, 러시아어, 말했다. 어렵다. 왜?" 선생님의 놀라운 능력으로 의미는 대충 통했다. 선생님도 맞장구를 치신다. "예전에 소련 시대에 러시아 사람들이 정말 많이 살았다. 지금은 러시아 사람들이 다시 되돌아갔다. 아직도 비쉬켁에선 키르기즈 사람들은 러시아어를 쓴다. 키르기즈어를 많이 배워야 한다." (나 또한 놀라운 어림짐작으로 이렇게 대충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놀랍지 않은가.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재밌었다! 안 되는 단어를 찾아가며, 겨우 한 문장을 이야기하고 서로 이해했는지 확인한다. 더 궁금한 게 많다. 선생님의 고향은 어떤 곳인지, 키르기즈인들에게 소련은 어떤 의미인지, 곧 있을 헌법 개정은 많은 사람들이 찬성하는 것인지... 궁금증은 태산인데, 물어볼 수가 없다. 으아. 답답해서라도 키르기즈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단 생각이 드는 것이다.

현시어 수업을 했던 교실 모습.


친구를 위로해 주고 싶을 때


우연히 알게 된 현지인 친구가 있다. 지나가던 태권도장에서 만난 친구였는데, 우리가 한국말을 하는 걸 보고 말을 걸어오더랬다. 알고보니 그 친구는 '안사르'라는 한국학과 대학생이었다. 게다가 우리를 도와주는 현지인 친구 '알료나'의 친한 친구였다.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오며가며 네다섯 번을 우연히 만나게 되면서 밥 한번 먹지 않고도 많이 친해졌다. 그 친구는 태권도를 수준급으로 하는 친구였는데, 얼마 전에 중앙아시아 태권도대회에 참가했다고 한다.


문제는 안사르가 태권도 대회에서 3등을 한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알료나는 조심스레 그 소식을 전해주면서, 위로의 말 한 마디를 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그만큼 많이 상심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어제, 안사르를 만났지만 아, 차마 어떻게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랐다. 물론 한국어로 해도 좋지만 뭔가 현지어로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아는 단어-특히 형용사-는 '좋다', '싫다', '깨끗하다', '춥다' 이정도 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안사르, 마음이 많이 추워요? 라고 말...하려다가 그만. 좌절하기 일보 직전이지 뭔가.


나는 그를 위로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이건 말을 못한다는 또다른 차원의 문제다. 친한 사람에게, 나의 감정을 함께 전달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은 너무 내 단어지식으로는 부족했다. 무슨 말이든 해주고 싶은데.



고로, 현지어를 배워야 하는 이유


나는 앞으로 더 많은 현지인 친구를 사귀게 될 것이다. 친구 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학생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들과 대화하려면, 소통하려면, 언어가 필요하다.  결국 현지어를 배워야 하는 이유는 분명해졌다.


이곳 키르기즈스탄에서 먹고 자고 입고, 사람들과 함께 즐겁게 살기 위해서.


키르기즈어가 설사 한국에 돌아가면 쓸 일이 없더라도, 2년이란 시간 동안 이곳에서 살기 위해서라면 반드시 배워야 한다. 이건 단순히 쓸모가 있냐없냐의 문제가 아니라 절대절명의 나의 생존과 또 행복이 걸린 문제였다.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나의 삶을 통째로 언어에 내맡길 준비를 하는 것이다.


좀 뜬금없지만 떡볶이 가게의 어묵 국물이 생각난다. 무한정 국물을 떠먹어도 줄지 않는 어묵 국물. 모든 어묵이 어묵국물에서 포근히 익는다. 김밥을 먹어도, 떡볶이를 먹어도 국물을 내어 놓는다.

지금 나도 마찬가지다. 2년 동안 모든 말을 이해하고 모든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 '어묵 국물'을 끓이고 있다. 다름아닌 '현지어'를 배우는 것이다. 2년 동안 '장사가 잘 되려면' 국물을 잘 끓여내야 한다. 그래야 모든 음식이 다 맛있다.

나는 지금 키르기즈어라는 국물을 끓여내고 있다.


키르기즈어를 배운다는 것,
나의 삶을 통째로
이곳에 내맡길 준비를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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