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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별 Feb 05. 2017

나의 이름은

<1> 키르기스어 이름을 지었다



내 이름은 신벼리. 언제 어디서든 나는 신벼리이고 싶다. 아버지께서 지어주신, 내가 사랑하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곧잘 이름으로 나를 소개하곤 한다. '저는 000예요'라고 말이다. 이름을 소개하는 것이라면 '제 이름은 000예요'라고 말해야 하는데, 왜 그럴까. 우리가 스스로를 소개할 때 '저는 신벼리예요'라고 말하는 게 익숙한 이유는 이름은 우리 존재 그 자체를 말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를 소개할 때 이름으로 내가 기억되는 것은 즐거웠다. 내 이름은 말하기에 쉽고 보기에 예쁘고 기억하기에 좋은 뜻을 가지고 있다. 한글 단어인 '벼리'는 어떤 일이나 글의 뼈대가 되는 줄거리라는 뜻이다. 이 단어의 뜻을 가지고 있는 한자는 '벼리 紀(기)', '벼리 綱(강)' 자가 있다. 고로 '기강'이라는 한자어는 '벼리벼리'라는 뜻이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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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이름으로 내가 기억된다면, 그 이름이 어려울 땐 내가 어렵게 기억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외국에서는 내 이름이 발음하기 상당히 어려운 말이다. 내가 아는 한, 모음 'ㅕ'를 이렇게 한 음소로 나타내는 언어가 별로 없다. (일본어는 아예 발음할 수 있는 문자가 없고, 영어도 몇 개의 음소 문자를 더해야 겨우 'ㅕ' 발음이 난다. young 등.) 


키르기스어에도 역시 마찬가지다. 키르기스어는 끼얄문자를 쓰는데, 여기서도 'ㅕ' 음소를 표현하는 문자가 없으니 '벼리'를 발음하기 쉽지 않다. (듣고 새로운 발음을 외우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외국인에게 '벼리'라는 이름을 말할 때 난감했기 때문에 나는 새로운 이름이 필요했다. 이곳에서 발음하기 쉬운 이름을 짓고 싶었다. 벼리, 비록 내가 정말 아끼는 이름이지만 말이다.


똑같이 끼얄문자를 쓰는 러시아어를 잠깐 배웠다. 그때 쓰던 이름이  '나타샤'였다. 그 이름을 그대로 쓸까 고민했다. 백석 시인에 대한 오마주로 간직하고 싶었던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키르기스 이름과 러시아식 이름은 너무 다른 느낌이라고 했다. 이름을 새로 짓는 이유는 발음하기 쉽도록 하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이왕 이곳에 온 거 키르기스 옆집 친구같이 기억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타샤는 아쉽지만 마음속에 고이 간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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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기스어를 막 배우기 시작할 땐  어떤 이름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내 이름 뜻을 담아 '일이나 글의 뼈대가 되는 줄거리'에 관한 단어를 찾아볼까 했는데, 바얀(이야기), 스켈렛(뼈), 네기즈기(중요한)... 낯설다... 나에게 키르기스어 발음이 너무 낯설기도 하지만, 이건 이 나라에서도 이름 같지 않은 이름이기도 했다. 


그렇게 이곳에 와서도 한동안 키르기스어 이름을 짓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었다. 그런데 12월 초, 처음으로 이곳 탈라스에 오게 되었다. 정식으로 파견되기 전 내가 근무할 학교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방문한 것이다. 학교에는 내 업무를 도와주시는 코 워커가 있는데 그분이 일주일간 홈스테이 할 집을 소개해 주셨다. 


홈스테이집 내 방의 모습


나는 홈스테이 집에 방문해서 아주머니께 인사를 드렸다. 으레 하듯 '저는 신벼리입니다'라고 나를 소개했다. 으레 그렇듯 주인아주머니는 "뵤리? 피오리?'라며 내 이름을 정확히 발음하지 못하셨다. 


"벼리 벼리" 이렇게 반복해드렸다. 아직 키르기스 이름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갑자기 아주머니는 "아이뻬리, 아이뻬리"를 말했다. '벼리'랑 발음이 비슷하다며, 이 이름이 어떠냐고 묻는 것이었다. 옆에 계시던 코 워커 선생님도 "아이뻬리, 좍시(좋다)"라며 거들어주셨다. 얼떨결에 나는 그 자리에서 '아이뻬리'가 됐다. 그렇게 새로운 키르기스어 이름이 생겼다.


집주인 아주머니께선 '아이뻬리'에게 실내화를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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