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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별 May 01. 2022

4월 31일 어느 봄밤


사월은 끝이 났지만


오월이 되면 곧 따뜻한 햇살이 퍼부울 거라 생각했지만


여전히 바람이 불었고


마음은 따뜻하지 못했다.


다행스런 마음이 들 수밖에.


나의 우울한 녀석은 언제나 그늘을 찾아 헤매기 때문이다.




봄밤



머릿속에선 어느 OST가 재생되고 있다.


종영한 지도 꽤 지난 '봄밤'이라는 드라마의 주제곡.


왜 이제야 알게 되었지ㅡ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좀처럼 그럴 일 없던 내가 MBC드라마넷 다시보기를 결제하려다가,


정신 차렷ㅡ을 외치며 제자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짤막한 클립 영상들만 봐도 그저 두둥실,


마음이 보름달처럼 차올라버린다.





사실 드라마의 줄거리는 그리 아름답지 못하다.


어느 누구는 여자 주인공이 바람난 이야기를 미화시켰다고도 말한다.


남자 주인공의 슬픔을 합리화하기 위해 전 여자 친구가 무책임하게 떠나버렸다는 설정은 그 자체로 무책임하고,


알고 보니 누가 누구의 후배고 알고 보니 친구의 이웃집이라는 둥,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엉성한 개연성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노래를 들으면 드라마가 말도 안 된다는 말이 차마 나오지 않는 건


그 어떤 재료를 넣어도 맛있어지는 마법의 수프 같은 음악들이 뿌려져서 그런 거랄까.





정인과 지호, 그들이 사랑하게 된 데에는 OST가 깔리는 드라마 주인공이라는 이유가 가장 크다.


둘의 사랑은 배경음악이 없었더라면 그렇게 아름답지 않았을 거다.


그런데 어쩌면, 드라마가 아닌 이 세상 모두에게도 사랑은 찾아온다.


설사 그게 드라마처럼 피엔딩은 아니더라도,


백색소음으로 가득 찬 거리의 모습 그대로


못생긴 말들로 가득한 메신저 대화가 다일뿐이더라도,


적어도 사랑이라 말하고 싶은 그런 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봄밤은 그런 날들을 떠올리게 한다.






어느 영화나 드라마를 보더라도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해버리는 몹쓸 병 때문에


나는 정인이 되어 버린 것 같았다.


옛날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그 누군가에게 이미 아이가 있었더라는


실낱같은 연결고리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를 이해하고자, 이해하려 했던 노력이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음은


시간이 매우 흘러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때 했던 그 노력이란 건 현실을 자각하지 못하는 몽유병과 비슷했다.


그런 점에서는 오히려 정인의 모습이 배울 점이 많아 보인다.


환상이라는 벽을 끊임없이 두드리며 계란을 깨고 나오려는 병아리의 모습이 언뜻언뜻 보였기 때문이다.


미완의, 불완전한, 그 모습 그대로.


어쩌면 그것이 온전한 모습일지언데ㅡ


어느 영화 속 주인공의 모습을 투영하며 내가 그와 같기를 바랐던 건 아닐까.


사랑과 희생 운운하며 전셋집 가격 따윈 신경 쓸 겨를이 없었으니까.


현실 속에 있으나 환상 속 주인공만도 못한 현실감각이라니.


그 옛날을 추억하는 건 씁쓸하다 못해 탄 맛이 맴도는 커피의 마지막 한 모금, 들이키는 것도 같다.




사랑에 빠지는 날, 4월 31일



차가운 봄밤이 이렇게 스러져 간다.


예고 없이 닥치는 불행처럼 종잡을 수 없는 바람이 불어닥치던 날.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불행이 가득했을 오늘 같은 날.


이기적이게도 이러한 날을 더 이상 마주할 수 없을 거라는 게 더 안달 나고 불안한 마음이 드는 거였다.


이 밤의 끝을 붙잡으면서도 다시는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동시에 존재하는 ㅡ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절박한 어떤 느낌.


종종 사랑을 '다시는 오지 않을 것만 같은 느낌' 때문에 확신하곤 하기에,


이것 또한 사랑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오늘 같은 날에도 누군가는 사랑에 빠진다는 게 문제다.







에필로그.



연인들이 자주 물어보고 누구나 확인하고 싶어 하는 말이 있다.


"내가 왜 좋아?" 라는 물음.


거기에 따라오는 대답은 종종 싱겁기 짝이 없기도 하다.


"그냥..."


그냥...이라고?


사람들은 너무 볼품없는 이유라는 이유로 여러 가지 말을 덧대곤 하지만


그냥이라는 말 외에 그 어떤 말이 이토록 사랑에 빠진 어느 이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줄 수 있을까.


사랑에 빠지는 데에는 이유가 없다.


라고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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