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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별 Jul 21. 2024

더위에 지친 날 토마토 냉파스타

우당탕탕 집밥 일기


한여름 어느 날


토마토 마리네이드를 만들어서 친구를 만난 날, 사실 친구네 집만 다녀온 것은 아니고 어린이 대공원도 들렀다. 아이가 어린이대공원에 가자고 했단다. 그날은 장마가 시작되기 전 찜통 같은 날씨였다. 무덥게 습기는 가득 차 있는데 강렬한 햇살이 창살을 내리꽂듯 내리쬐었다. 원래 야외 정자에 앉아있으려 했는데 도무지 바깥에 나와 있을 수가 없어 실내공간인 상상마루로 피신했다.


상상마루에서 신나게 놀고 나서, 아이는 펭귄을 보러 가자고 했다. 난 어린이대공원이 처음이라 동물원이 있는 줄도 몰랐다. 이런 날씨에 펭귄이 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더운 날이었다. 비록 펭귄은 실내에 있었지만, 지친 펭귄들은 옹기종기 모여 멍하게 물가에 나와 있었다. 바깥에는 코끼리가 있었는데 몸통에 흙이 굳어서 쩍쩍 갈라져 있었다. 미어캣도 고개를 내밀지 않고 그늘 밑에 숨어 있었다.


친구랑 아이랑, 어린이대공원도 와 보고, 한여름다운 오후의 한낮이었다. 무더위에 지쳐 땀이 나고 정수리가 뜨끈뜨끈해지는 것도 여름의 낭만이라고 생각하니 견딜 만했다. 그렇게 더위를 몸소 겪는 것도 좋았지만 한편으론 남편이 걱정 됐다. 사실 요즘 남편의 건강이 좋지 못했기 때문에 하루종일 나와 있으려니 신경이 많이 쓰였다.


게다가 남편은 밥을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라, 점심도 분명 배달음식으로 먹었을 게 뻔했다. 남편이 저녁밥까지 그렇게 대충 먹게 할 수는 없어서 저녁이 되기 전에 집에 돌아가기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랑 함께 있는 시간은 너무 행복해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여섯 시가 다 돼서 출발했다.



간단하게 시원하게!


저녁 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지만 내 나름 믿는 구석이 있었던 건, 어제 만들어 두었던 토마토 마리네이드 덕분이다. 파스타면에 토마토 마리네이드를 그냥 넣기만 하면 맛있는 토마토 파스타가 된다고 한다. 게다가 차갑게 먹을 수 있는 냉 파스타(콜드 파스타)라서 오늘같이 무더운 날씨에 제격인 것 같았다. 집에 가는 길, 남편한테 "맛있는 거 해 줄게요!"라며 기대 반 설렘 반, 나의 첫 냉 파스타를 만들 작정으로 설렜다.


<참고 레시피>


 <나의 토마토 냉파스타 레시피>

1. 토마토 마리네이드 준비 - 이전 글 <친구집 갈 땐 토마토 마리네이드> 참고

2. 파스타 면 삶기 - 면에 따라 삶는 시간 조절하기

3. 파스타 버무리기

...............................정말 끝인가??



생각지도 못한 복병, 파르펠레


사실 이건 토마토 마리네이드만 있으면 너무 쉽고 간단한 레시피다. 그런데 문제는 파스타 면이었다. 일반적인 스파게티면은 다 떨어졌고, 그 대신 예전에 세트로 사 두었던 리본 모양의 '파르펠레'라는 파스타 면이 있었다. 나는 별생각 없이 이걸로 콜드파스타를 만드려고 했다.


일반적인 스파게티면 기준 8~9분 정도로 타이머를 맞춰놨는데, 파르펠레, 넌 왜... 익지를 못하니?! 생각보다 두꺼운 면 때문에 한참 동안 삶은 것 같다. 이미 첫 번째 타이머를 끝내고 나서부터는 몇 분인지 의미가 없어졌다. 익기를 바라며 계속 모서리를 잘라먹어보길 여러 번... 양이 너무 많았나? 계속 삶다 보니 나중에는 너무 익었는지 면의 리본이 풀어지는 것이다. 이 파스타는 리본 모양이 생명인데... 급하게 건져내서 찬물에 헹궜다.


차가운 토마토 마리네이드와 섞어서 파스타를 버무렸는데, 또 한 번의 위기. 어우러지는 맛이 부족하다! 파르펠레는 면이 두꺼워서 그런지, 아니면 아직도 덜 익은 건지, 맛이 조화롭게 느껴지지 않고 방울토마토와 따로 노는 느낌이었다. 급히 올리브오일을 추가하고 약간의 소금을 더해 간을 맞추었더니 그제야 조금은 파스타 같은 맛이 났다.



오 나의 구원자


사실 파스타랑 샐러드로 그냥 간단하게 차릴 심산이었는데, 아무래도 파스타 맛이 신통치 않았다. 남편한테 "기대하시라"라고 말해 놓고, 이걸로 때울 거면 약간 민망해질 법도 하다. 오늘 저녁 밥상에 급히 심폐소생술이 필요했다. 그건 바로 '고기'다.


다행히, 예전에 사둔 오리고기 팩이 있었다. 햄이나 스팸은 사기가 싫지만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즉석 고기류로 훈제오리를 추천한다. 간단하게 2분 정도 전자레인지에 돌려 그냥 먹어도 되지만, 야채를 추가하기 위해 프라이팬에 구웠다. 그렇게 오리고기반찬을 추가하고 나서야 그나마 밥상이 밥상같이 보이는 것 같았다.


< 내돈내산 상비용 고기 추천 >


< 나의 오리고기 볶음 레시피>

1. 재료 준비 - 훈제오리 1팩(전자레인지에서 익히기), 통마늘 조금, 쪽파 2줄

2. 팬에 볶기 - 기름 두르고 마늘 먼저 볶기 > 오리고기 넣기 > 쪽파 뿌리기

왼쪽은 시어머님이 주신 열무김치!





남편) 파스타가... 왜 이래요?
나) 좀 덜 익었죠?
남편) 음... 좀?
나) 고기랑 같이 먹어요!!
남편) 응, 오리고기 맛있다.
나) 에구 다행이다... 많이 먹어요, 남편~


추신. 토마토 냉파스타에게

안녕, 너를 만들기 위해 나는 토마토 마리네드를 만들고, 하루종일 숙성하고... 무척이나 기대했는데. 맛있게 만들어 주지 못해 미안해. 다음엔 좀 더 얇은 면으로 만들어줄게. 한여름 무더위를 식혀줄 콜드 파스타! 다음엔 남편 입맛에 꼭 맞는 냉파스타로 돌아와줘 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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