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서울에 살지만 동생을 만나보긴 참 어렵다. 나와 동생은 둘 다 상경하면서 대부분의 시절을 (주소지 상) 함께 살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동생은 공사다망한 녀석이라 함께 살 때도 우린 서로 약속을 해야만 밥을 같이 먹을 수 있었다. 내가 결혼해 분가한 이후로는 더 이상 물리적으로 만나기 어려워졌고, 최근엔 동생이 이사를 가는 바람에 우리의 거리는 두 배로 멀어졌다.
부부 사이를 이어주는 접착제가 자식이라면, 형제(자매) 간 간극을 메워주는 역할을 하는 건 부모일 것이다. 우리의 거리는 엄마가 올라오실 때마다 좁혀지곤 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엄마는 엊그제 갑자기 올라오시게 됐다. 동생의 남은 이삿짐 정리를 위해 화물 짐을 부치자마자 당일 입던 옷 그대로 황급히 오신 것이다. 마침 연말연시다. 엄마가 올라오셨단 사실은 갑작스레 닥친 새해만큼이나 갑작스러운 기쁨이었다. 오랜만에 서울 하늘 아래 우리 세 모녀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충만해지는 기분이랄까. 원래 특별한 계획이 없었는데, 오랜만에 엄마와 동생과 함께 새해를 보내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동생은 1월 1일부터 약속이 두 건이나 있었다.
“근데 나 내일 이른 점심은 가능해!”
“아니 이른 점심이 언젠데?”
이대로 세 모녀 상봉은 어려운 것일까. 나의 실망스러움을 눈치챈 동생은 오후 1시 반 이전까지 시간이 가능하다고 한다. 덕분에 떡국을 끓여 엄마와 동생을 초대하려던 나의 계획은 물거품 되었지만, 내가 동생네 집으로 가면 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마침 떡국 떡을 1kg이나 사놓았다. 끓여서 함께 먹으면 되는 것인데, 그럼 거기 가서 끓이면 되지! 떡국 재료를 준비해 가겠다고 하니 엄마께서는 동생 집에는 다시 국물 낼 재료도 없다며 먼 걸음 하지 말라고 하셨다. 아니, 그럼 제가 멸치랑 다시마까지 다 가져갈게요!
그래서 ‘언니 표 떡국 밀키트’가 탄생했다.
< 구성 재료 > 우리 쌀 떡국 떡 1kg, 비비고 사골곰탕 500g, 다시 국물용 멸치&다시마, 표고버섯 2개, 대파 2대, 고명용 소고기 200g, 반찬용 LA갈비 양념팩 500g
아침부터 바리바리 싸들고 엄마가 계신 동생 집에 가는 발걸음은 무척이나 가벼웠다. 예전엔 연말연시에 항상 고향 본가에 내려가곤 했는데, 마치 그때 같다는 생각도 났다. 어느새 그러지 못한 죄송스러움이 스쳤지만 먼 길 올라오신 엄마를 어서 보고픈 반가운 마음이 더 컸다.
늦어도 12시에는 떡국을 먹기 위해, 10시 반에 배송 출발 후 밀키트(를 들고 간 언니)는 11시 25분에 도착했다. 엄마는 내가 도착하자마자 혹시 파를 들고 왔냐고 여쭤보셨다. 당연하죠! 생각지도 못한 파와 버섯을 보고 너무나 반가워하시는 엄마를 보며 나는 또 어찌나 뿌듯했는지.
떡국 밀키트는 엄마 찬스를 빌려 다시 국물을 정성스레 내고 만두까지 넣은 아주 그럴듯한 모습으로 재탄생했다. 사실 난 떡국을 한 번도 제대로 끓여본 적이 없는데, 그래서 이번에 한번 끓여보려고 재료를 사놓았더랬다. 그런데 이번에 엄마랑 함께 떡국을 끓인 덕분에 떡을 1인분에 한주먹만큼만 넣어야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하마터면 신랑이랑 둘이서 먹을 떡국을 끓이는데 떡 500g을 넣고 연초부터 떡 잔치를 벌일 뻔했던 것이다.)
2025년을 맞이한 첫날에 우리 가족이 함께 모여 떡국을 먹다니. 물론 우리 집은 음력설을 쇠어 양력설을 쇤 적은 별로 없었지만, 근래 통 본가에 내려가지 못했기 때문에 이렇게 다 같이 모여 떡국을 먹으니 마치 설 명절 같은 분위기였다.
동생은 엄마 덕분에 연말에 모든 이사를 마무리하고 새 출발을 시작했다. 떡국으로 배를 채우자마자 부리나케 나서는 동생이었지만, 그래도 얼굴을 보아서 다행스러웠다. 나 또한 엄마 덕분에 함께 새해를 보내며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부디 올해도 부지런히 좋은 일들이 생기길 바라며,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또 한 해를 시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