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장난이 아니다
누가 날 건드렸나
낮에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갔다. 음식을 고르고 계산하려고 기다리고 있는데(선불식이다) 밥 다 먹은 어떤 남자들이 우르르 나간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내 뺨을 살짝 (꼬)집었다. 깜짝 놀라서 ㅡ설마, 어쩌면 나를 아는 누군가인 줄 알고ㅡ 그 누군가를 돌아보았다. 뭐지, 누가 내 뺨을 만지고 간 거야? 범인을 찾아 헤맸는데, 그는 사람들 틈에 쌩하니 나가버렸다. 이유 없이 모르는 사람이 내게 이런 짓을 하고 유유자적하게 나가버린 것이다. 뭐 이런... 뭐 같은 경우가 다 있나... 너무 황당해서 나는 정말이지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얼음이 돼 버렸다. 동행한 현지인 친구도 당황해 함께 놀라워할 뿐이었다. 친구의 말로는 남자들 여러명이 있을 때 저런 장난을 친다고 한다. 외국인이라서 관심을 표현한 것 같다고 애써 나를 진정시킨다. 하지만 이미 너무 불쾌해서 짜증이 나 있는 나에게 이 상황은 장난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어이 없는 '성희롱'을 당한 것일 뿐이었다.
이것 뿐만이 아니다.
수도 비쉬켁에서 있었던 일. 아침에 학교갈 때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갑자기 빨간불 정지한 차가 시끄럽게 마구 경적을 울렸다. 획 돌아보니 어떤 남자 둘이 차 안에서 낄낄거리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찌나 불쾌하던지, 하지만 고작 맞대응을 한다는 게 온 힘을 다해 째려보는 것 밖에 없었다. 안그래도 차도를 건너는 보행자의 입장에서 운전자가 위협적일 수 밖에 없는데, 심지어 그들은 나를 훓어보며 웃고 떠들고 있다. 지금도 충분히, 그리고 만약 밤이었다면 공포심마저 느낄 법한 저 눈들, 저 비웃음.
얼마전 탈라스에서는 시장을 걸어가는데 멀리 저기서부터 남자 무리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가까이 가자 쑥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대충 무슨 말인지는 알아듣겠다. 중국인인가, 아니다 코리언인가, 어쩌구저쩌구. 대충 쳐다도 보지 않고 무시하면서 지나가려는데, 갑자기 나를 툭 건드리며 (거의 팔을 잡는 수준으로) "키르기즈어 할 줄 아니?"하고 묻는 것이다. 깜짝 놀랐다. 확 뿌리치고 대꾸를 하지 않고 재빠른 걸음으로 빠져나왔다. 말을 거는 것도 모자라 신체적인 접촉을 하다니, 개인의 심리적 신체적 안전거리를 침해하는 아주 무례한 행동이다. 이런 상황은 나아가 해코지를 상상하게 한다. 내가 무시하고 지나가더라도 그로인해 앙심을 품거나, 나를 지켜보거나 따라오거나 나를 기억할까봐, 잔뜩 온몸이 긴장하도록 무서워지는 것이다.
장난이라고?이건 장난이 아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았지만 이는 겉으로 보면 아주 일상적인 모습으로 비쳐질 지도 모른다. 누가 뺨을 툭 치고 지나간 것은 '단순한 장난'이었을 테고, 경적을 울린 것도 '관심의 표시'일 뿐이고, 지나가는 이 툭 치며 물어보는 것도 '그냥 말 거는 것'이라고 치부해버려도 그만일 지도 모른다. 그들은 여기서 더 나아간 심한 해코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충분히 불쾌했다. 그들은 내가 젊은 외국인 여성이라는 이유로 나에게 공포심과 수치심을 주었다. 이건 분명한 성희롱인 것이다.
유독 외국인 여성이 타깃이 되는 이유
어딜가나 만연한 문제이지만 특히 외국인에 대한 편견을 몸소 겪는 것이라는 점에서 많은 생각을 들게 한다. 유독 외국인 여성이 타깃이 되는 것은 단순한 성적인 면에 국한한 문제가 아니다. 낯선 외국에서 혼자 길을 걸어가는 외국인 여성, 단지 유독 튀는 매력의 소유자여서 그렇게 하는 것일까? 아니다. 그는 약자이기 때문이다. 말도 못하고 이곳 물정을 모르고 도와줄 이 하나 없는 약자, 고로 장난치고 말 걸고 함부로 무례하게 해도 되기 때문에 희롱과 폭력적 언행의 손쉬운 타깃이 되는 것이다.
나는 충분히 조심했다
대부분의 안전수칙은 어두운 밤에 나돌아다니는 것을 조심하라고 이른다. 나는 안전수칙을 정말 잘 지킨다. 저녁에 내가 혼자 집에 올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대한 점심약속을 잡고 저녁에는 반드시 친구에게 택시를 부탁하는 형편이다. 너무 짧은 거리도 택시로 데려다 달라고 하는 바람에 현지인 친구가 가끔 이해하지 못하기도 한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모든 상황은 안전수칙과 별개다. 해가 중천에 환하게 떠 있는 낮에, 그것도 모두 사람이 많은 식당에서, 도로에서, 시장에서 일어난 일들이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도 불쾌감은 오롯이 내 몫이 된다. 항상 조심해 왔음에도 이런 일을 겪고 (항상 조심한 것 자체도 억울한데) 그것도 모자라 대책없이 앞으로도 항상 조심해야만 하는 것이 분통이 터진다.
답이 없다. 외국인 젊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손쉽게 성희롱의 타깃이 되는 이 세상 자체가 문제다. 성적 희롱 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무례함도 포함해서다. 비단 키르기스스탄 이곳의 문제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예전에 한국에서 어떤 대학의 외국인 교수가 학생의 무례한 언사를 공론화한 적 있다는 기사를 본 적 있다. 그녀는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말을 거는 것이 불쾌하다고 느꼈으며 그에 비해 한국인 학생은 아무런 문제의 인식이 없고 사과의 기색도 없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고 말했다. )
또 하나 더 생각난 기억을 말해볼까. 비단 낯선 이들을 경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치 않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얼마 전, 친구네 집에 다른 친구와 함께 저녁을 초대받아 진수성찬을 대접받았다. 친구네 아버지께서 데려다주시겠다고 하셨다. 아버님는 우리를 데려다주시고 다른 곳에 가기 위해 아버님 친구가 동석하셨는데, 그러니까 차 안에는 나와 다른 친구, 아버님과 그 친구 넷이 함께 탄 상황이었다. 아버님 친구는 내 이름을 물어보고 나보고 예쁘다고 하셨다. 거기까지는 단순한 칭찬으로 오케이. 그런데 현지어로 뭐라뭐라 말 하자 두 분이서 웃으신다. 뭐라고 했냐고 다른 친구에게 물으니, 알고보니 나를 '보쌈하고 싶다'고 하셨다고 한다. (키르기즈에는 오래된 풍습으로 여자를 보쌈하는 악습이 있다. 현재는 법으로 금지되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경악했다. 내가 알아듣고 표정이 굳어진 걸 아버님께서 보시고 '농담'이라고 강조하셨다. 다른 친구도 번역해주며 농담이라고 재차 말해주었지만, 하필이면 그 친구가 먼저 집에 도착해 내리는 때였다. 그렇게 셋 밖에 남지 않았을 때 내게 든 생각은... 혹시나를 대비해 차 문을 열고 뛰어내려야겠다는 생각까지 드는 것이었다. 농담처럼 던진 한 마디는 나에게 엄청난 공포심을 불러 일으켰다. 야밤에 현지인 두 분과 차를 타고 가는데 나는 길도 모르고 보쌈이니 뭐니 말같지도 않은 무서운 말에 한 마디 대꾸도 못하고 앉아있어야만 했다. 택시타는 게 무서워 데려다주신다는 걸 고맙게 타고 왔는데, 참으로 모든 상황이 예상치 못하게 굴러가고, 순탄치만 않은 것이다.
이게 바로 현실이다.
아름다운 자연, 친절한 사람들도 물론 존재하지만, 봉사하러 왔다는 선의와는 상관없이 나를 이방인, 외국인, 젊은 여자로만 치부하고 약자로 간주해버리는 시선 또한 존재한다. 이 모든 것이 함께 현실로 공존하기에 이 모든 것을 감내해야 하는 것도 현실이다. 꿈과 이상은 이곳에 오면서 더이상 이상으로만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불행이면서도 다행히도 불행만은 아닌 이유는, 현실은 내가 강해져야 하는 이유를 몸소 체험하게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