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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별 Mar 19. 2017

우리가 함께했다는 사실, 그것은 사랑일까

내 머릿 속의 앨범, 3월의 흔한 기억

공교롭게도 그랬다. 3월엔 만남과 헤어짐의 기억이 존재한다.


어느 옛날 3월에는 그와 처음으로 데이트를 한 날이었고 그와 함께 추운 밤공기를 걸으며 손을 잡았다. 1년 뒤 3월에는 그와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기 시작했고, 또다시 1년 뒤 그를 그리워하며 나는 무척 외로워했다. 그리고 다시 1년 뒤... 3월에는 가끔 기억을 되새기곤 한다. 꼭 그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떤 흔한 설레고 가슴 아픈 기억을.


이젠 그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그와 어떠한 SNS 계정도 연결돼 있지 않으며, 그와 찍은 사진은 삭제하진 않았지만 더 이상 꺼내보지도 않는다. 내 친구들 중 어느 누구도 그를 얘기하는 사람이 없고, 내가 떠올리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는 사람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와 찍은 사진은 앨범을 만들어 일부러 딱 한 권을 만들었다. 수많은 사진들을 보고 또 보면서 고심 끝에 사진을 고르고 레이아웃을 짜고... 고생해서 만든 앨범이지만 고민 없이 그에게만 주고 싶었다. 앨범을 만들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것 같다. 그에게 앨범을 주고난 뒤 며칠 안 돼서 우린 두 번째로 헤어졌다. 다시는 그 사진들을 볼 수도 없었고 보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솔직히 그렇게 추억을 정리하는 것으로 다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3월의 기억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달력만 보았을 뿐인데도, 점점 선명해지는 어떤 느낌이 있었다. 분명한 건 그는 내 기억 속의 일부라는 것이다. 몇 년 전의 날짜와 시간과 장소 모두 기억나는 몇 안 되는 내 인생의 어느 한 부분이 떡하니 그와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의 추억은 그 한 권의 앨범으로 정리된 게 아니었다. 내 머릿속은 이미 차곡차곡 그날의 공기, 그날의 냄새까지 기억나는, 어느 날 불현듯 펼쳐지는 앨범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그냥 함께 수많은 날들을 보냈던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게 사랑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모르겠다. 추상적인 단어로 마무리하기에는 너무 아쉽다. 더 확실한 사실이 있기 때문에, 그것은 바로 우리가 존재했다는 사실, 그리고 기억 속에는 지금까지도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처음 만난 날 대림동 어느 창고 미술관에 가던 길에 커다란 개를 만나 쫓겨가기도 했고, 어느 날은 명동에서 삼겹살을 먹으며 계산하는 걸로 처음으로 옥신각신했다. 이른 봄 매우 추웠던 날 한강에서는 우리는 따뜻한 데자와를 사서 그걸 함께 꼭 쥐었고, 나는 며칠 동안 그 데자와를 먹지 못하고 모셔두었다. 그리고 벚꽃이 피던 이른 봄날, 그 아래에서 헤어지고도 아쉬운 나머지 그 잔상을 사진으로 기억하고 싶어 찍었던 것까지, 기억한다. 

 

떠올리면 입가에 웃음이 맺히기도 하고 또 금세 슬퍼지기도 한다. 우리는 노력했고, 그 흔한 말로 '좋은 기억을 남겨주고 싶어서' 애썼는지도 모른다.


3월, 우리는 행복했다. 그 기억은 사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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