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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별 Jan 11. 2019

마지막처럼, 모든 순간이 마지막인 것처럼

항상 끝을 먼저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책도 목차를 훑어보고 맨 끝에 '옮긴이의 말'까지 다 훑어봐야 비로소 안심이 된다. 끝을 생각하는 버릇은 시험 준비를 하거나 일을 할 때에도 주어진 시간에 주어진 할당량을 나누어 계산하는 버릇으로 이어졌다. (물론 그것을 실천하는 건 두 번째 문제지만.) 끝에 대한 집착은 양배추 한 포기를 사도 과자 한 봉지를 사도 조금씩 먹고 남겨두기보단 한 번에 해치워버려야 직성이 풀리게 만들었다. 뭐든지 전체를 보아야, 끝까지 가야 속이 시원한 느낌이었다. 


사람을 만날 때에도 마찬가지인데, 지금 이렇게 친해도 나중엔 연락이 뜸해지겠지- 라는 말을 꺼내서 친구들을 서운하게 만들기도 했다. 특히 연애를 할 때 우리의 이별은 어떤 종류일까 불쑥불쑥 그런 생각들이 떠올라 습관처럼 되묻곤 해서- 상대는 왜 그런 생각을 하냐며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는 짜증 섞인 반응을 불러오곤 했다. 




끝을 생각하는 습관은 하지만 어떤 순간에 큰 동력이 된다.

 너무 좋은 순간에, 다시는 이런 순간이 오지 못할 거야- 결국 지금 이 순간을 미치도록 행복하게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선명하게 했던 순간들이 기억나는데, 친구와 밤새워 한강을 걸으면서 피곤함에 지쳐 쓰러질 것 같으면서도 걷기를 멈추지 못했던 그때, 첫 연애를 하면서 그와 밤에 벚꽃이 바람에 흐드러지게 떨어지는 풍경을 보던 그날 밤, 이식쿨 호수에서 평화로운 물결을 바라보며 모래알이 발가락 사이사이를 파고드는 간지럼을 느끼던 해 질 녘, 탈라스 집에서 내리쬐는 평온한 햇살과 집 앞 놀이터에서 조잘조잘 들리던 아이들 뛰노는 소리를 듣던 한낮의 어느 순간에, '참 좋다'라고 생각했던 게 유독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다.


너무 좋은 이 순간, 얼마 가서 머잖아 끝날 거라는 상상. 


이는 사실 굉장히 묘하고도 그로테스크한 느낌이다. 행복해서 미칠 것 같은 이 순간 뒤에는 휘몰아치는 불안감과 두려움이 아주 똑같은 비율로 공존하는 듯하다. 마치 모든 순간들을 모래시계처럼 상상하고, 행복함으로 순간을 써 버리는 동시에 그것은 모든 불행함으로 돌변하는 것 같았다. 좋으면 좋을수록 너무나 빨리 쑥쑥 빠져나가는 것 같았고 정지시킬 수 없는 시간의 속도감에 말없는 비명을 지르는 것이었다.


사실 요즘은 습관처럼 이 아니라, 매 순간 그런 상상을 한다.

지금이 바로 그 순간. 너무 좋아서,  도저히 멈출 수 없는 시간을 바라보면서 무기력하게 그대로 서서 영혼을 뺏겨버려도 좋다는 초월한 심정을, 바로 지금 느낀다. 


새벽에 눈을 뜰 때면 까만 공기 속 말똥말똥 뜬 눈으로 천장을 올려다볼 때, 아침에 커피포트에 커피가루를 세 스푼 넣고 탁탁 털며 뚜껑을 닫을 때, 찹찹한 바람을 온 뺨으로 맞으며 집을 나설 때 아침 공기의 차가움에 잠시 숨이 턱 막힐 때, 머리가 멍해지도록 책을 읽다가 잠시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 유독 새하얀 형광등에 눈이 부실 때,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해안도로에 차들이 쌩쌩거리며 달리는 소리와 낮게 풍기는 매연냄새까지 , 깨끗이 발을 씻고 보송보송한 발을 담요에 폭 감싸며 만지작만지작 거릴 때, 따뜻한 차를 홀짝홀짝 마지막까지 컵을 들어마시며 한 방울로 혀 끝을 살그머니 적실 때...


아무 생각 없이 일상을 보낼 수 있는 지금, 어쩌면 선물같이 펼쳐진 매일의 나날들이다. 어쩌면 사막을 거닐다가 비를 처음으로 만나는 황야의 짐승처럼, 나는 이 순간 펼쳐진 모든 순간들을 남김없이 흡수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맛보는 정도가 아니라 이 순간의 향연에 나를 온통 적시고 싶다. 마지막 남은 순간까지, 마지막 한 방울까지. 


차마 이런 심정을 다른 이들에게는 말할 수 없었다. 


가끔 경탄해 마지않는 그런 순간에, 터져 나오는 감탄사 외에는 '지금 이 순간이 꼭 마지막일 것만 같아'라고 말했을 때 공감해주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유독 민감하게 그런 순간의 기쁨에 전율을 느끼는 것이기도 했고, 나와 다른 매일을 살고 나와 다른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와닿지 않을 것이다.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 일상의 기쁨을 느낄 새도 없는데, 당신이란 사람은 너무 한가하게 이런 순간의 기쁨을 말하는 것이 아니냐고 되물을 수 있다. 누군가에겐 괴리감을 전해주고 때론 나의 행복이 사치처럼 느낄 것이기도 하겠다. 


맞다. 나는 지금 할 일이 없고 매일 출근하는 직장이 없고, 그래서 매일 이런 순간들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한다. 사실 그래서 더 무료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더 행복한 감정을 느끼는 게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놀라울 정도로 내가 느끼는 감정이 너무나 벅차서, 하지만 그래도 이런 감정이 존재한다는 것을 있는 힘껏 소리쳐 보고 싶었다. 대나무 숲에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것을 말하고 싶어 하는 모자장수처럼, 어딘가에는 어떻게 해서든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지금 이 순간,  느끼는 모든 황홀한 순간을 가슴 깊이 느낄 수 있기를! 가슴 벅차고 행복한 동시에 불행함을 느낄 수 있는... 허탈한 그 감정까지 모두 경험할 수 있기를! 

햇빛 속 빛과 같이 부스러지고 달빛 속 어둠과 같이 아스러지는 느낌으로,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나란 존재를 몸소 느끼게 되기를...!


마지막처럼, 이 순간이 마지막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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