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이다.
다른 과일은 (깎기가 귀찮아서ㅎ) 있으면 먹고 없으면 안 먹는다.
내 손으로 나 먹자고 정성스럽게 씻고, 예쁘게 깎아서 먹는 과일이 바로 사과다.
이 행동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나의 귀차니즘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이해할 것이다. ㅋㅋㅋ
열흘 전 S 홈쇼핑에서 ENBY 사과 열 개짜리 두 박스를 샀다.
ENVY 사과는 새콤달콤하고 아삭한 식감의 특수 품종이다.
일반 마트에서는 잘 팔지 않아 내 애를 태우곤 했는데 홈쇼핑에서 박스로 팔다니!
반가운 마음에 바로 겟!
일반 사과에 비해 가격이 훨씬 비쌌지만
그건 내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총 4.4Kg(2.2Kg 2박스/박스당 10과)에 48900원!!
쇼호스트들은 연신 사과의 달콤하고 아삭한 맛을 강조했고
나도 그 맛을 익히 아는지라 군침을 삼키며 사과가 오길 손꼽아 기다렸다.
첫 번째 사과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사실 예상했던 것만큼은 아니라서 약간 실망ㅎ
아직 냉장이 잘 되지 않아서 그렇겠지 하고, 냉장고에 넣어뒀다가 시원해진 두 번째 사과를 꺼내먹었다.
응? 뭐지? 사과가 퍼석거린다
사실 방송에서 봤던 거보다 알이 작아서 내가 방송을 제대로 안 보고 주문했구나 했는데
퍼석거리는 맛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였다.
세 번째 사과는 그럭저럭 먹을 만했다.
네 번째 사과는 또 퍼석거린다! 게다가 속살에 멍까지 들어있다.
그렇게 50%의 확률로 식감이 스펀지 같은
8개의 사과를 먹고 12개가 남아있다.
전하! 아직 저에게는 12개의 사과가 남아있으니 맛있을 때 까지 더 먹어보겠나이다!
그냥 이랬어야 하는데 8번째 사과를 먹다가 오늘 아침 화가 폭발했다.
멍이 들고 퍼석거리는, 아기 주먹만 한 사과가 개당 2500원이라니!
홧김에 S쇼핑에 반품 신청을 하고 말았다.
한 박스만이라도 반품하겠다고 용감하게 고객센터에 문의를 남겼다.
무모했던 거 인정...
신선식품이고 썩거나 곰팡이가 핀 것도 아닌데 퍼석거림으로 반품 신청을 받아 줄 리가 없지.
아니나 다를까 반전은 없었다.
[오후 2:21] [Web발신]
안녕하세요, 고객님. ***TV 쇼핑 ***입니다.
주문하신 [[고당도]씻어나온 프리미엄 ENVY(엔비) 사과 총 4.4kg(2.2kg x 2박스/박스당 10과)] 상품으로 고객님께 만족을 드리지 못하여 죄송한 마음이 앞섭니다.
다만, 남겨주신 반품 사유는 개인 입맛에 따라 만족도가 다를 수 있으므로 상품 불량으로 보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언제나 고객님의 만족스러운 쇼핑을 위해, 저희 ***TV 쇼핑은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위와 같이 지극히 상투적인 고객 응대'문자를 받고 열폭해서 고객센터에 전화까지 했다.
퍼석거림이 어떻게 개인 입맛에 따른 만족도의 차이냐며 사과 한 두 번 먹어보냐며 나는 사과에 정말 진심이라며 나를 실망시킨 사과를 남은 열 개라도 반품을 해달라고 떼를 썼다.
상담원은 통화 직후부터 나를 블랙 컨슈머로 취급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내일 다시 연락을 주겠다며 푸석한 사과를 사진 찍어 보내라고 했다. ㅋㅋㅋ
나는 비닐을 벗겨서 잘라서 사진을 찍어도 푸석거리고 푸실거리는 질감을 표현할 자신이 없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브런치에 글을 쓰는 동안 마음이 가라앉고 이성이 돌아왔다.
글이 주는, 고백이 주는 카타르시스란 이런 것인가!!
바로 반품을 철회하고, 나의 행동을 반성해본다.
신선식품에 대해 반품을 신청해본 건 정말 처음이었다.
쇼호스트들은 원래 물건의 품질에 대해 일도 모르면서 물건을 팔기 위해 정말 맛있다! 품질을 자신한다!고 하는데 왜 번번이 그걸 믿고 이렇게 배신감을 느끼는 걸까.
팔 때는 자신들이 보증하고 팔고 나서는 판매자에게 확인해보겠다는 무책임함,
(물론 만족스러웠던 쇼핑도 많았다,,, )
그저 나는,
푸석거리는 맛없는 사과를 천상의 맛이라고 한 것에 대해
누군가에겐 진정성 있는 사과를 듣고 싶었던 바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