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둘 다 자퇴한 교육학 전공자의 개인적이며 전문적 칼럼
내 브런치는 상당히 일일 조회수의 등락이 심하다. 조회수가 적을 때와 많을 때의 차이가 10배도 넘게 난다. 가끔씩 브런치의 조회수가 너무 많이 나오기에 고민해 보면 보통 '개학 전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는 고등학교 자퇴는 학기 중에 했다. 학교와 마찰을 빚고, 더 이상 학교를 다니지 못하겠다는 명확한 결심이 선 상태였기에 더 이상 자퇴를 미룰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중학교 자퇴는 조금 달랐다. 중학교 자퇴는 중학교 2학년 첫날 결심하고, 당장 그다음 날부터 학교를 나가지 않았다.
내 중학교 자퇴 사유는 친구들과의 관계 때문이었다. 1학년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폭력이 시작되었고, 매일 학교를 가는 것이 두렵고 괴로웠다. 하지만 학생에게 있어 학교를 다니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학교에 꾸역꾸역 등교했다.
하지만 괴로웠던 한 해를 마치고 마지한 긴 겨울방학은 너무 행복했다. 보기 싫은 친구들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이유만으로도 특별한 것을 하지 않아도 매일이 기쁜 마음이었다. 그러다 겨울방학의 끝이 다가왔다.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다시 학교에 가서, 괴로운 일상을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이 두려움으로 엄습했다. 그때부터 집에는 자퇴를 하게 해 달라는 말을 했다. 학교폭력을 당하고 있다는 말은 못 하고, 학교에 가는 것이 너무 의미가 없고, 자퇴를 하고 하고 싶은 컴퓨터 분야의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 검정고시를 통과할 수준의 공부를 따로 하는 것이 나의 미래에 더 좋을 것이라는... 부모님이 합리적으로 느낄 만한 이유를 들어서 말이다.
하지만 그런 사유를 듣고 자퇴를 허락하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자퇴를 위해 꾸며진 중학생의 핑계가 성인에게 타당하게 들리기 어렵다는 점, 정말로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정규교육을 다 받는 것이 대체적으로 학생에게 이롭다는 점, 대한민국에서 정규교육을 받는 것이 여로모로 경제적이라는 점 등을 고려하면 자퇴를 허락해 줄 부모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나의 부모님도 똑같았다. 자퇴를 쉽게 허락해주지 않았다. 특히 내가 자퇴를 해달라고 요구하는 사유는 지금 내가 생각해 봐도 딱히 타당하지 않으니 허락해 줄 리가 없다. 아마 그때의 부모님의 시선으로 나는 그저 방학이 끝나가자 학교를 가기 싫은 중학생의 투정으로 보였을 듯하다.
결국에 나는 자퇴를 쟁취해내지 못하고 중학교 2학년의 첫날에 등원했다. 근데 정말로 운이 없었다. 그날에 처음 알게 된 우리 담임선생님은 우리 학교에서 가장 무섭기로 소문난 여자 선생님이었다. 그에 더해 나를 가장 많이 괴롭히던 친구 하나도 같은 반에 배정되었다. 그때 정말로 학교를 다닐 수 없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날 집에 와서 농성이 시작되었다. 나는 자퇴를 꼭 해야만 했고, 부모님은 내가 말하는 이유로는 절대 자퇴를 시켜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 집은 열린 집이었고, 자퇴를 하고자 했던 나의 의지가 매우 강력했기에 결국은 자퇴를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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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우리 부모님은 나의 자퇴를 '충동적'이라고 생각했을 듯하다. 부모님이 받아들이기에 타당하다고 생각되는 근거 없이 자퇴를 하려고 했으니 말이다. 특히 그 시점 또한 방학이 끝나기 직전/직후였으니 말이다.
충동적인 결정이라고 하면 다시 한번 잡아주는 것 또한 보호자와 교육자의 역할이다. 일반적으로 미숙함에서 촉발된 충동적인 결정은 후회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기적 특성만을 갖고 자퇴를 향한 결정을 '충동적'이라고 단정 짓지 않는 태도는 필요하다. 개학 직전과 직후는 학교 생활에 있어서 매우 많은 변화가 발생하는 시기이다. 나의 경우와 같이 학교를 다니면서 힘들었던 일이 늘 있었지만 방학 기간 잠시 잊고 살았다가 마주해야 할 시기에 스트레스를 느끼고 자퇴를 결정하는 경우도 있고, 학교에 개학하면서 변화된 선생님과 친구 및 학습적 환경에 적응하기 어려운 요소들이 있어 자퇴를 결정하게 될 수도 있다.
개학 전후에 자퇴를 말한다고, 그 사실만으로 단순히 학생이 충동적이라고 단정 짓는 경우가 상담에서 많이 보인다. 하지만 그런 단정적인 태도를 지양하고, 열린 마음으로 자퇴에 대한 사유를 공유해 보도록 노력해 보자.
처음부터 충동적이라는 시선을 깔고 대화를 시작한다면 시야가 좁아져 학생의 진정한 자퇴 이유를 놓칠 가능성이 높아지고, 학생과 대화가 겉돌면서 자퇴에 대한 논의가 합리로 가는 것이 아닌 학생과 학부모간의 갈등으로 갈 수도 있다. 모든 칼럼에서 말하지만 자퇴에 대한 논의는 언제나 상호 이해 속에 합리적으로 이루어져야 하지, 좋은 프레임을 잃으면 자퇴에 대한 논의는 극한의 갈등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인간적인 관계 속 모든 대화의 기본이 이해라는 점은, 자퇴라는 막연한 상황 속에서도 여전하다. 가령 그 시기가 조금은 의심이 되더라도 말이다. 오늘 제공한 개학 전후의 자퇴에 대한 이해를 단초로, 서로 이해하는 대화를 통해 좋은 결론을 도출해 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