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아서, 이도 저도 안 된 학생들의 이야기
고등학교 선택의 시기이다.
대학은 가능한 높은 곳으로 실력이 받쳐주는 대로 가면 되기 때문에 비교적 심플한 느낌이다.
하지만 고등학교는 가는 것 자체는 특별한 어려움을 따르지 않지만 선택에 따라 대학 진학의 유불리가 생기기 때문에 또 다른 어려움과 고민의 요소들이 많다.
고입을 유난히 어렵게 만드는 또 한 가지 이유는 '데이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입은 어떤 대학은 어느 정도의 성적이 되면 합격 가능성이 몇 프로 정도 된다는 정략적 데이터를 추출할 수 있다.
하지만 고입은 학교 차원에서 그 어떠한 정량적 데이터를 제공하지도 않기 때문에 판단할 수 있는 근거의 양도 매우 부족하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학부모님과 학생들은 '주변의 사례'를 결정의 근거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전문가의 입장으로서 너무 소수의 사례를 중심으로 결정을 내리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
주관적 편견의 개입과 확대해석의 여지가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특히 주변에서 '사례'를 들려줄 때 절대 건조하게 들려주지 않고, 꼭 관찰자의 사견이 개입된다는 점은 올바른 판단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학군지 중학교에서 비학군지 고등학교로 진학했으나, 기대한 성적이 나오지 않아 후회하는 사례'는 매우 흔하고, 또 그만큼 많은 학부모님이 지나친 걱정으로 잘못된 고등학교를 선택하게 하는 사례이다.
이는 나 또한 매우 많이 접해본 제법 흔한 사례이나, 유난히 곡해가 많이 이루어지는 사례인 듯하여 다뤄보려 한다.
해당 사례에 대한 전문가의 의견을 바탕으로, 곡해 없이 객관적으로 사례를 바라보고, 자녀에게 대입해 보길 바란다.
학군지에서 비학군지로 진학했으나, 생각보다 성적이 안 나오는 경우 학부모님과 학생의 일반적인 감상은 아래와 같다.
(1) 이번에 학군지에서 내신을 따러 온 학생들이 너무 많아서
(2) 학군지에서 너무 어려운 내신에 적응했으나, 갑자기 내신이 너무 쉬워져서 적응이 안 되어서
(3) 갑자기 나빠진 분위기 탓에 학습 환경이 무너져서
(4) 학교 선생님들이 공정하게 시험을 내지 않아서
기타 등등...
물론 다들 조금씩은 맞는 말이지만 근본적이지는 않다
내 경험에 따르면
학군지의 격전지 중학교에서 내신을 상위 20% 정도 하던 학생이라면
직선거리로 한 5KM 정도 차이가 나는 다른 학군의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10% 정도는 해야 한다.
(각 고등학교의 주요 교과 모의고사 평균 성적을 비교해 보면 그렇다)
하지만 '잘못 진학했다'라고 느끼는 분들은 중학교 당시 내신인 20% 정도를 받거나, 혹은 그것보다 조금 못 받기도 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 학생들은 어째서 기대했던 성적을 받지 못하고 후회하게 되는 것일까.
보통 기대했던 만큼 비학군지 진학 이후 성적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은
'자기주도학습 능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학군지 특성상 어릴 때부터 학원 교육을 철저하게 시키는 경우가 많고,
중학교 내신도 지대하게 어렵기 때문에 학원의 고난도 학습에 학생과 학부모 모두 많이 의존을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학원에서 시키는 것은 성실하게 하고, 그 양이 많아서 고난도 문제집을 곧잘 풀어내긴 하지만 한 번도 본인이 꼼꼼하게 시험 범위를 체크하고 고득점을 받기 위해 노력해 본 적은 없는 경우가 많다.
학군지의 매우 어려운 중학교 내신 시험 자체가 100점을 맞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경우가 있어서, 학생들이 '100점에 대한 집착'과 '꼼꼼함'은 매우 결여되고, 고난도 문제를 풀어내기 위한 학원 의존이 증가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
하지만 비학군지의 내신의 본질은 그렇지 않다.
9등급제 기준으로 1등급을 맞기 위해서 비학군지에서는 통상 중간과 기말 평균이 90점대는 나와야 한다.
조금 어려운 학교는 중간과 기말고사를 통틀어서 1~2개 문제가 1등급 커트라인인 경우도 상당히 흔하다.
반면에 학교 학습에 성실하게 임하는 아이들에게 좋은 점수를 주고 싶은 마음이 있기에, 고도의 학원 학습이 없으면 풀지 못하는 고난도 문제의 출제도 드물다.(학군지 고등학교는 변별력을 위해 고난도 출제가 상당히 있다)
비학군지에서 상위권(9등급제 기준 2등급, 5등급제 기준 1등급)을 받기 위해서는 그렇기 때문에 '꼼꼼함'이 가장 중요하다.
필자는 그 태도로서 '탑다운 학습'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100점을 맞기 위한 전체의 그림을 그려두고, 그중에서 특별히 중요하게 생각되는 내용들을 선정하고, 해당 내용들을 완벽하게 채워가며 학습하려는 태도이다. 비학군지라도 중학교 내신 시험에서 전 과목 5개 미만을 틀려본 학생들을 통상 이 학습 방법을 잘 알고 이용한다.
하지만 '자기주도학습 능력'이 떨어지는, 학원에서 잘 만들어진 아이들은 통상 '바텀업 학습'을 한다.
100점을 맞기 위한 전체의 그림은 없는 상태로, 그저 학원에서 내주는 것들을 부분 부분 완성한다. 이를 통해 고난도 문제를 풀고, 좋은 모의고사 성적을 받을 수는 있다. 하지만 전체 그림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암기가 중심이 되는 과목에서 1~2문제를 틀릴 가능성이 훨씬 높다.
100점을 목표로 해야 하고, 문제의 난도가 높지 않은 비학군지 내신에서는 '탑다운 학습'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나, 학군지 중상위권 아이들은 '바텀업 학습'을 한느 경우가 아주 많다.
비학군지 고등학교 내신을 보면 A 학생이 B 학생에 비해 내신은 압도적으로 높은데, 모의고사는 되려 낮은 경우도 있다. A학생이 자기 주도 중심의 '탑다운 학습'을 하는 학생이고, B학생이 학원 중심의 '바텀업 학습'을 하는 경우에 그렇다.
거기다 비학군지 고등학교의 최상위권들은 통상 중학생 때부터 '100점'에 집착했던 경우가 많다. '탑다운 학습'의 방법론에 매우 훌륭한 완성도를 갖고 있고, 경험 덕분에 학습을 해나가는 속도도 매우 빠르다.
거기다 이 학생들이 매우 강한 것이 '시험 마지막 10분에 틀린 풀이를 찾아내는 능력'이다. 수학으로 말하면 '검산'이다.
보통 비학군지의 시험은 시간이 남는다. 특히 암기를 성실하게 한 학생이라면 보자마자 답이 보이는 문제가 대부분이라 20분 이상 남는 경우도 흔하다. 이때 중학생 때부터 100점을 목표로 학습했던 친구들은 검산을 비롯한 철저한 점검 과정을 통해서 실수를 훌륭하게 잡아낸다. 이것도 실력이라, 자신의 실수를 잡아내본 경험이 많을수록 실수가 줄어들고, 본인이 실수를 하는 구간을 잘 포착하여 짧은 시간 효율적으로 검토를 진행할 수 있다.
'선행' 또한 뒤늦게 따라잡을 수 없는 학습 분야의 격차이듯, 이런 '100점을 향한 실전 경험'들도 쉽게 따라잡을 수 없는 격차이다.
학군지 학부모님과 학생은 '선행' 그리고 '모의고사', 그리고 '퍼센티지' 만이 학습의 역량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비학군지의 내신은 그런 것들이 결정하는 부분이 매우 적다. 물론 학군지의 뛰어난 학원 교육과, 필자가 말했던 비학군지의 100점 지향/탑다운 학습이 만들어주는 습관까지 함양하고 있는 학생이라면 최고의 시나리오겠지만 말이다.
학군지 중학교에서 비학군지 고등학교에 진학했으나, 기대한 만큼 성적이 안 나왔다면 80%가 필자가 위에서 말한 상황들 때문이다.
(1) 위에 상황들은 이제는 알았으니 만약 비학군지로 고등학교를 진학시킬 것이라면 지금부터 비학군지의 특성에 맞는 학습을 준비시켜야 한다.
(2) 만약 위와 같은 내용이 절대 준비가 안 될 거 같다면, 비학군지로 가서 성적을 더 잘 받는 욕심을 내려놓고 학군지에 남아있는 것도 방법이다. 차라리 적응하기 쉬울 수 있다.
학군을 옮긴 고등학교 진학. 물론 매우 열심히 고민해야 할 주제이다.
무작정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너무 만만하게 생각해서도 안 된다.
주변의 여러 현상들을 살펴보고, 객관적으로 분석하여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하길 간곡히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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