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M을 높이는 건 힘들어요
https://brunch.co.kr/@bicco/21
1896년 4월 7일,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신문 독립신문이 창간됐다.
여기서 '독립'은 일본이 아닌 청나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했고, 한글로 쓰인 이 신문은 근대화와 자주 독립의 상징이었다.
독립신문 창간을 주도한 서재필은 미국 유학 시절 광고 수입 없이는 신문이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독립신문 창간호는 3면 지면 전체를 광고로 채웠고, 심지어 1면 첫 기사도 광고로 시작했다.
그는 영문판 사설에서 "광고하기 원하는 분에게 지면이 부족해서 더 많은 지면이 필요하다.
이렇게 재정을 보충하지 않고서는 신문이 오래 갈 수 없다"고 밝혔다.
1897년에는 광고 크기별 요금표까지 만들었고, 1899년에는 "신문 광고는 화륜선(기선)이 바다를 오가고 화륜거(기차)가 육지를 왕래하는 것처럼 강력한 힘이 있다"며 광고의 효과를 홍보했다.
문제는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광고 수익이 신통치 않았다는 점이다.
처음 300부로 시작한 독립신문은 이내 3,000부가 넘는 신문으로 성장했지만, 정작 광고주는 많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당시 사람들이 '광고가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독자들 중에는 신문사에 돈을 보내며 자기 고을 이야기를 실어달라고 요청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것이 광고인지 기사인지조차 구분이 안 되던 시대였다.
서재필이 진짜 알고 싶었던 것은 따로 있었을 것이다.
"내가 실은 이 광고, 과연 누가 봤을까?"
"광고를 보고 실제로 물건을 산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1896년 당시에는 이런 질문에 답할 방법이 전혀 없었다.
신문 부수조차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웠고, 광고를 보고 구매한 사람이 몇 명인지 알 수 없었다. 광고의 '성과'를 측정한다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던 시대였다.
사실 마케팅의 성과라는 건 결국 전환(매출)으로 말할 수밖에 없기도 하다.
인지도가 아무리 올라가고, 브랜드 가치가 올라갔다고 증명해봐야 결과적으로 전환이 없다면 인정받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지도, 브랜드 충성도, 검색량, 유입, 체류시간과 같은 중간 과정 지표들을 성과로 이야기하고 중요시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런 과정 지표가 안 좋은데 최종 전환이 좋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앞서 TV 광고의 성과 측정 방법은 GRPs(총 시청률)를 중심으로 가이드라인을 잡아본 바 있다.
앞으로 이야기해 볼 부분은 TV 광고 외에 라디오, 신문, 잡지와 같은 ATL 기타 매체와 BTL(오프라인 행사와 같은 기타 매체)의 성과 측정 방법이다.
라디오는 화면이 있고 없고의 차이라서 시청률을 대체하는 청취율이라는 지표가 있으므로 TV 광고와 기본적으로 메커니즘이 유사하다.
신문과 잡지는 판매 부수와 타겟 독자를 고려해서 노출량과 성과를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오프라인 행사나 옥외 광고는 어떨까?
먼저 오프라인 행사와 옥외 광고는 매체의 속성 측면에서는 차이가 많아 보이지만, 성과를 측정하는 측면에서는 비슷한 부분이 많다.
행사의 경우 참여하는 고객에게 우리 제품을 홍보하고 노출하는 것이고, 옥외 광고의 경우에는 해당 지역이나 건물 근처에 있는 사람에게 제품을 홍보하고 노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적극적인 참여"와 "단순 광고 노출"이라는 차이점이 있을 뿐, 성과 측정의 맥락은 비슷해진다.
오프라인 행사는 직접적으로 행사 참여자 수를 기반으로 성과를 추정할 수 있다.
다만, 해당 행사에서 바로 전환(매출)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흔치 않기에 참여자에게 기업 SNS 계정의 팔로우를 요청한다거나, 회원가입을 유도하는 경우가 많다.
또 쿠폰을 뿌려서 해당 쿠폰 번호가 얼마나 입력되는지 보기도 하고 QR코드 입간판 같은 것들을 설치해서 웹사이트로 유입을 도모하는 경우도 많다.
옥외 광고는 행사에 비해 훨씬 더 광고 성과를 측정하기 힘들어서, 제한적으로 QR코드 같은 것들을 노출해서 유입을 측정하거나 Call to Action을 유도하는 전화번호를 삽입하는 정도의 방법밖에는 없다.
그래도 아무데나 광고를 집행할 수는 없기에, 광고를 보는 지역의 인구수(OTS, Opportunity To See)나 광고가 실제 보이는 지역의 가시권 내에 위치한 인구수(LTS, Likely To See)를 참고하기도 한다.
이때는 모바일 위치 데이터(통신사 데이터, GPS)나 광고 매체 주변에 실제 존재한 인원 수, 체류 시간, 중복 노출 빈도 등을 실시간으로 정량 측정하여 실제 노출 및 도달을 분석할 수 있다.
또 국가데이터포털의 통계 데이터, 교통 정보 등을 기반으로 차량 및 보행자의 유동인구를 추정하여 노출 수를 예측하기도 한다.
심지어 최근에는 디지털 옥외 광고(DOOH)의 경우, 센서나 카메라를 활용하여 시청자 수와 시청 시간을 측정하기도 한다.
중장기적인 관점의 성과 측정을 위해서는 ATL, BTL에 관계없이 설문 조사를 활용하는 기업도 많다. BPI(Brand Power Index), BHT(Brand Health Tracking) 등 이름은 다양하지만 성격은 유사하며, 모두 브랜드의 인지도와 충성도를 알아보는 조사이다.
인지도 조사에서는 무조건 3가지 질문을 한다.
처음 생각나는 브랜드는? 그다음은? (최대 5개까지) 그리고 로고를 보여주며 본 적 있는 브랜드를 고르시오. 하는 질문이다.
첫 번째로 생각나는 브랜드를 최초 상기(TOMA, Top of Mind Awareness),
그 이후 떠오르는 브랜드들은 비보조 상기(UR, Unaided Recall),
로고를 보고 나서야 알겠는 브랜드는 보조 상기(AR, Aided Recall)이라고 각각 칭한다.
"비"라는 글자가 주는 "아님(not)"의 이미지 때문에 비보조 상기가 보조 상기에 비해 안 좋은 것으로 착각할 수 있으나 말 그대로 보조하는 것 없이 생각나는 브랜드로 이해하면 편하다.
성공적인 광고 캠페인은 비보조 상기와 보조 상기 모두 높은 수치를 기록해야 하고, 보조 상기는 높으나 비보조 상기가 낮다면 광고 노출은 충분했으나 광고 메시지나 크리에이티브가 소비자의 기억에 깊이 남을 만큼 독창적이거나 강력하지 못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특히 최초 상기는 시장 점유율과 대체로 비례하지만,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기술이나 혁신적인 마케팅으로 일시적인 최초 상기를 확보했지만, 유통망 부족이나 품질 문제로 실제 시장 점유율이 낮을 수 있고, 고가 제품군(고관여)처럼 구매 결정에 오랜 고민이 필요한 경우(자동차, 가전제품 같은)는 최초 상기 외에도 가격, 품질, 기능, 후기 등 다른 요인들이 시장 점유율에 더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휴대폰 통신 3사의 시장 점유율은 S사 5 : K사 3 : L사 2의 비율이 오래전부터 유지되고 있지만, 최초 상기를 물어보면 S사가 거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마케팅의 성과 측정에 대해 여러 편에 걸쳐서 이야기한 이유는 공식이나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용어나 접근 방법은 대동소이하지만 산업이나 회사의 특징에 따라 최종 전환을 중요시하는 회사도 있고, 기본적인 브랜드 인지도 정도로 마케팅 성과를 갈음하는 회사도 있다.
중요한 것은 고객이 브랜드를 처음 알고 고민을 거쳐 전환으로 이어지기까지의 경험 여정(Customer Decision Journey, Customer Experience Journey) 속에서 어떤 인사이트를 발견하고 그것을 잘 측정해서 더 발전시켜나갈 수 있느냐가 아닌가 싶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