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타게팅의 맥락

정조 어찰첩이 고객을 설득했던 방법

by 초월김

2009년, 역사학계는 흥미로운 발견 앞에서 술렁였다.

정조가 노론 벽파의 영수 심환지에게 보낸 비밀 간찰 3백여 통이 세상에 공개된 것이다.

1796년부터 1800년까지 약 4년간 주고받은 이 편지들은 공식 기록이 아닌 철저히 사적인 서찰이었다.

정조는 심환지에게 읽은 후 즉시 폐기하라고 거듭 당부했지만, 심환지는 이를 지키지 않았다.

아마도 훗날을 대비한 일종의 '보험'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심환지가 단순한 신하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는 노론 벽파의 영수, 즉 정조와 정치적으로 대립하는 세력의 우두머리였다.

오늘날로 치면 대통령이 야당의 대표와 은밀히 편지를 주고받은 셈이다.

이 편지가 공개되기 전까지 역사학계는 정조와 심환지를 평면적인 정적 관계로 이해했다.

그러나 편지의 내용은 전혀 달랐다.

이 편지에서 정조는 자신을 "사류(士流)의 두목"으로, 심환지를 "사류의 전형"으로 불렀다.

쉽게 말해 자신은 정국을 주도하는 감독이 되고, 심환지를 주연 배우로 삼아 정국을 끌고 가겠다는 의미였다. 그러면서도 정조는 심환지가 받을 상처를 누구보다 걱정했고, 그를 생각하는 마음이 열 배가 넘는다고 고백했다.

감독인 자신이 의도한 대로 심환지가 움직이도록 여러 주의사항을 각별히 당부하며, 중진으로서 '준엄한 기상'으로 위엄을 보이고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때로는 자신의 아픔과 고민을 여과 없이 토로했고, 때로는 심환지의 잘못된 행동을 통렬히 꾸짖기도 했다.

이 편지들이 공개되자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다.

심환지는 단순한 정적이 아니라 협력과 대립을 오가는 복잡한 위치에 있었고, 정조는 그런 심환지와 끊임없이 소통하며 협력을 이끌어내려 노력한 것이다.

의지 강한 개혁 군주로만 알려졌던 정조가 실제로는 독설과 막말도 구사하는 다혈질 면모를 가진 인간이었음도 드러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조는 심환지라는 '고객'의 맥락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의 성향, 그가 처한 정치적 상황, 그가 받을 상처, 그가 보여야 할 모습까지.

정조는 이 모든 맥락을 파악한 채로 심환지를 설득하고 움직였다.


마케팅(marketing)은 시장(market)과 움직임 또는 진행형을 뜻하는 ing의 합성어다.

많은 사람들이 마케터를 광고나 캠페인 기획자와 동일시하곤 한다.

실제로 업무의 상당 부분이 광고와 캠페인 기획으로 채워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마케팅의 본질적 정의를 들여다보면, 마케터의 업무 영역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다.

정조가 심환지를 대했던 방식처럼, 시장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의 핵심에는 '맥락(context)'이라는 개념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마케팅의 목적을 '구매(buying)'라는 행위로 좁혀서 생각해보면, 맥락이 왜 중요한지 더욱 명확해진다. 이유 없는 구매는 없다.

모든 구매에는 반드시 사는 이유가 존재한다.

"충동 구매는 어떤가요?"라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그 '충동' 또한 구매의 한 가지 이유일 뿐이다.

구매 이유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구매가 일어나는 전후 사정, 즉 맥락을 들여다봐야 한다.

우리의 일상을 살펴보자.

배가 고프면 식당에 가거나 음식을 사고, 기름이 떨어지면 주유소에 간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트리를 검색하고, 지인의 집들이에 갈 때는 선물을 준비한다.

이 모든 행동 뒤에는 명확한 맥락이 있다.

만약 마케터가 소비자의 맥락을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다면, 그 사업은 분명히 성공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수많은 소비자의 맥락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충족시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마케팅개론에서 STP를 배운다.

소비자를 최대한 그룹으로 묶어 구분하고(Segmentation), 그중에서 우리 상품이 잘 팔릴 것 같은 소비자를 선정하며(Targeting), 그들에게 어떤 메시지와 제품으로 다가갈지 결정하는(Positioning) 과정 말이다.

어쩌면 STP는 마케팅의 기본이자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 STP의 전 과정을 관통하는 핵심 개념이 바로 '맥락'이다.

고객이 처한 상황, 고객의 필요, 고객의 욕망, 고객의 이상향 등 다양한 관점에서 맥락을 설명할 수 있다.

특히 디지털 마케팅 영역에서는 다양한 애드테크(ad tech)를 활용해 고객의 맥락을 파악하고 타겟팅에 적용한다.


이 중 가장 확실한 타겟팅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리타게팅(retargeting)이다.

한 번 방문했던 홈페이지, 구매 버튼을 눌렀던 쇼핑몰의 상품이 그 이후로 계속 따라다니는 경험,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리타게팅 기술은 갈수록 정교해지고 있다.

검색만 해봐도 비슷한 상품이 노출되고, PC로 방문했는데 휴대폰에서도 같은 광고가 따라다닌다.

특정 플랫폼에서는 물량 공세를 퍼부어 '인질극'이라는 밈이 생길 정도로, 한 번 본 상품을 실제로 구매할 때까지 끈질기게 노출한다.

리타게팅은 가장 확실하게 고객의 맥락을 파악하여 상품을 추천하는 방법이다.

한 번 본 상품만큼 확실한 구매 의향의 지표가 또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리타게팅 광고는 노출당 단가(CPM)가 다른 애드테크에 비해 대부분 비싸다.

그럼에도 많은 퍼포먼스 마케터들은 리타게팅 광고가 보여주는 성과에 매료되어 오늘도 많은 예산을 투입한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숫자가 리타게팅만큼 확실한 것도 없기 때문이다.

특히 취급 상품 수가 매우 많은 커머스 업종의 경우, 소비자가 봤던 상품을 계속 바꿔가며 광고를 노출한다. 하지만 여기에 문제가 있다.


이제 소비자들도 잘 알고 있다.

자신이 본 상품의 광고가 자신을 따라다닌다는 것을.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 상품을 봤는데도 사지 않은 이유를 소비자 자신이 가장 잘 기억하고 있다는 점이다.

소비자들이 점점 리타게팅 광고에 익숙해질수록, 쇼핑몰들은 의미 없는 노출만 반복하게 된다. 광고비만 쓰고 전환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적당한 지점과 시점을 찾는 것이다.

단순히 방문했다는 이유만으로 상품 광고를 따라다니게 할 것이 아니라, 어떤 상품인지, 얼마짜리 상품인지, 가격 경쟁력은 있는지, 몇 번이나 고민했는지, 대체재는 존재하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리타게팅 횟수와 시점을 전략적으로 조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크리스마스 트리를 구경하고 간 소비자에게 12월 26일에 크리스마스 트리 리타게팅 광고를 노출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가격이 낮은 저관여 제품이나 식품류의 경우는 특히 리타게팅 횟수를 한두 번 정도로 제한해야 한다.

대체재가 많기 때문이다.

반면 고관여 제품의 경우에는 가격이나 혜택의 변경 사항을 살펴보고 리타게팅의 횟수와 주기를 결정해야 한다.

소위 '무지성'으로 계속 따라다녀봐야 소비자들은 거추장스럽다고 느낄 뿐이고, 브랜드 이미지만 나빠진다. 특히 애드테크로 네트워크 배너들을 자동 광고 노출로 설정해놓고 맥락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면, 같은 광고가 한 화면에 그야말로 덕지덕지 붙은 민망한 상황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결국 리타게팅도, 더 나아가 모든 마케팅 활동도 맥락에 대한 깊은 이해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정조가 심환지의 맥락을 읽고 그를 움직였듯이,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소비자를 단순한 데이터 포인트가 아닌 맥락 속의 인간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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