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일지
며칠 전 우간다 한글학교 2학기가 시작됐다. 그래서 아이들이 매주 토요일마다 그곳에서 국어교과과정을 배운다. 물론 아이들은 한국인 친구들을 만나는 데 온 마음이 가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 마음을 따르지 못하는 일이 첫 개강 일부터 생기고야 말았는데 아이들 사이에서의 다툼이 그랬다.
쉬는 시간, 눈을 감고 다른 친구들이 내는 소리로만 찾아내는 놀이를 했던 모양이다. 그러다 한 친구가 “너 눈 떴지? 그런데 왜 그렇게 잘해?”라며 술래 맡은 친구를 다그쳤고, 당사자보다 오히려 주변 친구들이 “아니야. 넌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냐!”며 말을 꺼낸 친구를 몰아세웠던 거다. 친구들이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자 속상했던 아이는 엄마에게 안겨 마음을 달래야만 했다.
한 가지 에피소드지만 이런 일이 생기면 엄마의 무서운 촉! 내 자식에 대한 안테나가 어느새 켜지고는 한다. ‘우리 애 잘못인가? 혹시 우리 애가 사건의 중심은 아니었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짧은 시간에 스쳐 지나가면서 중심이 흔들거리게 된다.
이번 일은 직접 본 것도 아니고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들었기에 그나마 그 흔들림의 강도는 약했다. 그렇다 해도 ‘그래서? 그다음은? 너는 어떻게 했는데?’식의 취조를 끊임없이 하고 있는 내 모습과 마주해야 했다. 그러자 딸이 “엄마, 잘 해결됐고 잘 정리됐어. 그러니까 그만 좀 물어봐!”
그 말에 문득 ‘난 왜 사건의 전후 사정을 꼭 알아야 하는 것인가?’ 싶었고, 그제야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아 속상해했다던 아이가 보이기 시작했으며, 내 아이만은 아니기를 바랐던 민낯도 봐야했다. 그리고 “얘들아, 그 친구… 정말로 속상했겠다.” 이 말에 두 아이는 “그랬을 것 같아.”라며 “다음에는 한 번쯤 생각하고 믿어줘야겠어.”라고 대답했다.
그날 밤, 지혜를 가르치는 성경 말씀을 읽다 ‘르무엘 왕을 훈계한 어머니’에 대한 부분을 읽었다. 잠언 마지막 장을 읽을 때면 항상 ‘현숙한 여인’에 대해서만 묵상하고는 했는데, 그날따라 아들을 훈계한 어머니에 대해 두고두고 생각하게 된 거다.
르무엘 왕이 말씀한 바 곧 그의 어머니가 그를 훈계한 잠언이라 내 아들아 내가 무엇을 말하랴 내 태에서 난 아들아 내가 무엇을 말하랴 서원대로 얻은 아들아 내가 무엇을 말하랴 네 힘을 여자들에게 쓰지 말며 왕들을 멸망시키는 일을 행하지 말지어다
르무엘아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왕들에게 마땅하지 아니하고 왕들에게 마땅하지 아니하며 독주를 찾는 것이 주권자들에게 마땅하지 않도다 술을 마시다가 법을 잊어버리고 모든 곤고한 자들의 송사를 굽게 할까 두려우니라 독주는 죽게 된 자에게, 포도주는 마음에 근심하는 자에게 줄지어다 그는 마시고 자기의 빈궁한 것을 잊어버리겠고 다시 자기의 고통을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너는 말 못 하는 자와 모든 고독한 자의 송사를 위하여 입을 열지니라 너는 입을 열어 공의로 재판하여 곤고한 자와 궁핍한 자를 신원할지니라_잠언 31장 1~9절
그러면서 두 아이가 남들보다 귀한 존재로 크기만을 바라는 마음이 아니라, “너는 말 못 하는 자와 모든 고독한 자의 송사를 위하여 입을 열지니라 너는 입을 열어 공의로 재판하여 곤고한 자와 궁핍한 자를 신원할지니라”처럼 공의와 공생을 배우기를 기도하게 됐고, 이 말씀이 양육자인 나에게 먼저 뿌리내리기를, 가벼운 바람에도 쉬이 흔들리지 않게 견고해져 가기를 바라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