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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꽃 Oct 13. 2023

내년 명절은 한국에서 보내게 될까?!

시어머니는 참 좋으신 분이다. 우간다에서 전화는 아들인 남편이 주로 하지만 그럴 때마다 “손자, 손녀 아무것도 못해줘서 미안하다. 기도하마. 사랑한다.”며 전화를 끊으신다. 뭣 하나 더 주지 못해서 미안해하시는 좋은 시어머니임에도 신혼 초 시댁에 가면 바싹 긴장했던 것 같다. 부엌에 들어오지 말라고, 손에 물 묻히지 말라는 것은 물론이고, 과일 하나 깎는 것도 눈치 주는 법이 없는 분이셨는데, 그저 ‘시댁’이라는 단어가 나를 한없이 긴장하게 했고, 시댁에 간다고 계획을 세우기 전날부터 덜컥 겁부터 먹던 초짜 며느리였다.


사실 결혼을 하고 6개월 후부터는 해외로 나와 살았기 때문에 ‘시월드’가 어떻고, ‘명절의 고됨’이 어떤 것인지 경험해보질 못했다. “전날에 시댁 가서 음식 준비 같이 해야지, 그리고 친정에도 가야 하고…” 등의 친구들을 통해 종종 들었던 얘기가 전부였다. 그렇기에 명절음식 차리는 수고도 없고, 친정과 시댁 중 어디를 먼저 가야 하는지 눈치 볼 일없이 편한 명절을 보냈던 나는, 어쩌면 복이라면 복인-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닐지.


이렇듯 명절의 경험치가 없다 보니 솔직히 해외에서 명절을 맞는 내 자세도 아무런 느낌이 없고 딱히 기다려지지도, 아쉽지 않게 됐다. 이곳에서는 추석이라는 명절이 없을뿐더러 우간다 공휴일에나 휴일을 맛볼 수 있는 것이기에 누군가 ‘추석’이라고 말해주지 않는 한, 사실 잊고 지낼 때가 더 많다.


이번 추석도 추석 당일이 생일인 한 어르신의 초대가 없었다면 여느 때와 똑같은 평범한 일상을 보냈을 거다. 송편을 빚어 만들 만큼의 재료 구하기가 쉽지 않은 데다 재료가 준비되었다 해도 빚어낼 재주가 나에게는 없으니 평소 먹던 대로 밥, 국, 김치 정도로 끝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꼬치, 육전을 비롯해 무려 10가지 종류의 전을 맛볼 수 있었고, 여럿 한인 가정들도 함께한 탓에 잠시 한국에 방문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풍성하게 보냈다. 생각해 보니 한국에서 나고 자라 해외로 나오기 전까지는 언제나 북적하고도 꽤나 신나는 명절을 보냈던 것 같다.


여럿이 모여 함께 음식을 먹고 보니 한국에 두고 온 가족들이 생각났고, 그곳의 정서가 갑자기 그리워졌다. 양가 어머니들은 분명 양손 가득히 먹고 남은 명절 음식을 싸주셨을 거다. 드린 용돈은 다시금 손자, 손녀에게 쥐어주셨을 테고. 남들은 시댁에 먼저 갈까, 아니면 친정에서 자고 갈까를 고민하기도 한다던데, 내년 명절에는 한국에 갈 수 있을까를 두고 잠시 생각에 잠겨보기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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