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랄 희(希)'가 아닌 '기쁠 희(喜)'로 쓰는 케이프타운(Cape Town) 희망봉. 그곳에 간 날 딸을 제외하고 우리 세 식구는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쓴맛을 톡톡히 봐야 했다.
희망봉서 케이프 포인트 등대까지 40여 분을 걸어 올라가기에는 자드락 비가 내리고 바람까지 불던 날씨였기에 나와 남편은 기념품 가게만 둘러보기로 했다. 아이들은 그마저도 싫다고 동행한 친구들과 관광버스에 남아있기로 약속한 터였다. 그런데 5분도 지나지 않아 딸아이가 주차장을 혼자 서성이고 있다고 하는 게 아닌가. 듣자마자 기념품 가게서 뛰쳐나와 아이를 찾는데 그 어디에도 아이는 없었다.
‘착각하고 다른 버스에 탄 건 아닐까, 바로 옆이 절벽인데 설마, 외국인도 많은데 납치라도 됐으면…’ 순간이었지만 오만가지 불안한 생각이 들기 시작해 마음을 가다듬기가 어려웠다. 그런 가운데 주안이는 하늘에 기도하자며, 타고 온 버스 관광 가이드에게 영어로 “동생이 없어졌어요. 동생이 올 때까지는 출발하지 말아 주세요.”라고 전했고, 만나는 어른들마다 “군인 색 옷을 입었어요. 꼭 찾아주세요.” 하고 비를 맞으며 부탁하는 것이 아닌가. 붙어 있기만 하면 싸우던 아이가 그날은 오빠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고, 한 번씩 “바다로 갔으면 어떡해.” 소리를 지르며 울부짖을 때는 동생을 잃은 책임마저도 떠안은 것 같아 안쓰럽기까지 했다.
이렇게 주차장서 초조함으로 첫째와 기다리던 사이, 남편은 등대로 올라갔을 거라고 예측하며 급히 뛰어올라갔다. 올라간 지 20분이 지났을까. 감사하게도 남편 품에는 딸아이가 안겨 있었다. 이유를 들어보니 버스 안 화장실에는 휴지가 없어 바깥 화장실을 이용하려 했고, 도로 버스를 타려니 심심할 것 같아 ‘엄마, 아빠가 등대로 갔을 거야.’는 확신으로 걸음을 옮겼다고 했다.
그렇게 한차례 해프닝이 지나고 저녁 식사 시간에 한 가정으로부터 딸아이 사진을 건네받았다. 케이프 포인트 등대 근처까지 올라가서는 다른 가정과 가족사진에 ‘브이’ 포즈까지 취했던 것이 아닌가. 왜 오빠가 울었는지, 엄마랑 아빠는 왜 놀란 표정이었는지 ‘why not??’ 해맑게 웃기만 하던 딸아이의 얼굴이 해석되는 찰나였다. 남은 식구들이 절망의 문턱에 있을 동안 딸아이는 등대 가까이서 마음껏 비를 맞으며 즐거웠던 거다. 이 녀석을 따끔하게 혼낼까도 했지만 바로 앞에 아이가 살아있다는 안도감과 아이가 가진 귀한 추억의 조각을 지우고 싶지 않아 그만뒀다.
'바랄 희(希)'가 아닌 '기쁠 희(喜)'로 쓰는 희망봉, 그래 그날 그곳은 우리에게 기쁨의 희망봉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