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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지예 변지혜 Jan 12. 2023

아프니까 결혼 못하지 않을까? 2

별 일 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아…. 여기가 어디지…? 수술이 끝났나?”


눈을 떠보니 하얀 천장이 보인다. 2인실 침대에 누워있었다. 

나의 인기척에 놀라 나를 바라보는 동생이 내 앞에 앉아있다.



나중에 찍은 그때 당시 바라보는 일상. 천장뷰



동생: 괜찮나?

나: 아.. 좀 아프긴 한데 괜찮아. 근데 수술 어떻게 됐대?


동생: 수술 들어가기 전에 말한 대로, 크게 쨀 수도 있다고 했잖아. 역시나 수술 도중에 엄마한테 동의받아서 길게 칼로 째서 크게 들어냈대. 


나: 엥? 그럼 작은 구멍이 배에 세 군데 있는 게 아니라.. 큰 구멍도 있다고?


당장 나의 배를 까보았다. 


수술 바로 직후라 큰 반창고와 작은 반창고 덕지덕지 붙여져 있어 몸의 칼자국을 자세히 볼 수는 없었다. 수술 전까지 그 검은 덩어리의 정체를 완벽하게 알 수는 없었다. 그래도 제거가 잘 됐다는 소식에 기뻤지만, 내 몸에 큰 흉터가 남아있다는 사실이 날 슬픈 감정으로 한 발짝씩 내몰고 있었다. 



그리고 충격적일 사실 하나 더.


“아 그리고, 난소 하나 제거 됐대.”


응? 뭐라고?..?


그렇다. 


자고로.. 난소라는 장기는 

꽃다운 나이 20대 후반. 결혼을 일찍 했다면,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도왔을 것이고, 

결혼을 안 했다 하더라도 뭔가 쌩쌩한 채로 있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의 장기이다.  


하지만 그 쌩쌩이는 갑자기 화산이 폭발해서 용암에 덮어버린 정지된 화석처럼 커다란 돌덩어리가 되어 나를 아프게 했었고, 지금은 제거되었다는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사실에 가히 충격적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무서웠다. 이런 것이 바로 장기 털렸다는 것일까. 자고 일어났는데, 아무도 말해주지 않으면, X-ray나 정밀 검사를 해보지 않는 이상, (목숨에 지장이 없는 한) 장기가 몇 개가 사라졌는지 모르니 말이다. 






“그래도, 두 개 중에 하나라도 있으니 다행이다.” 


그래도 그때 당시에는 그래 두 개 중에 하나라도 있으니 다행이다라는 긍정마인드로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도 했다. 새해에 액땜했다 치고, 이제! 나에게는 좋은 일들만 가득할 거라는 희망과 건강을 더욱 챙겨야겠다는 의지만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침실에서 화장실 가는 것조차 힘을 주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수술 직후에서 며칠 동안은 정말 나무늘보처럼 속력을 내지만, 그때만큼은 내가 낼 수 있는 최대 에너지만큼 쥐어짜서 힘주고 걸어 다녔다. 


병원에 있는 동안에는 더욱 건강해지기 위해, 아침, 점심, 저녁 식후 병동 10바퀴를 돌았다. 아기가 천천히 걸음마를 떼듯이 나도, 다시 갓 돌 지난 아기들처럼 걸음마를 시작한 기분이었다. 정말 힘들었지만, 걸으면 걸을수록, 빨리 좋아질 수 있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철썩 같이 믿고 행한 행동 했다.


산부인과 병동이라서 그런지 새롭게 태어난 새 생명들을 돌보는 곳도 지나다닐 수 있었다. 새 생명의 탄생과 죽음, 아픔..  혼자 걸으면서 생로병사에 대한 심오한 사색들을 하기도 했다. 아파도 계속해서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계속 내디뎠다. 


지하실 바닥을 찍고 다시 힘겹게 올라가는 기분이었으며, 계속해서 올라갈 일만 남았다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사로잡았다. 건강이 큰 재산이라는 것을 더욱 몸소 느끼며 그렇게 퇴원 전까지 나의 도전은 계속되었다. 1cm씩 한 발짝 내딛을 때마다 닿는 고통이 조금씩 사라지는 만큼, 퍼렇게 멍들어있던 마음도 점점 회복되는 듯했다. 



미스터리한 자궁 쪽 아파보니... 나중에 나머지 하나마저도 아프게 되면…?


이것이 내가 결혼하고 싶다고 마음 딱 서고, 결혼 준비를 시작했을 때, 상대방 측에서는 반대할 수 있는 사유의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나의 본모습.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지 않고, 여자의 구실을 못한다는 자체만의 이유로 결혼을 못하지 않을까… 


이런 걱정은 수술 후 2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씩 하게 된다. 


하지만, 미래의 걱정을 사서 할 필요가 없다는 걸 느끼는 요즘이다. 나에겐 그래도 그 한쪽이 있고, 그나마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하며 살아가기에도 부족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는 별 일 일수도 있고, 누구에게는 별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렇게 이때 사건은 아프면서도 나의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자리 잡아있다.

멍하게 영화의 파노라마처럼 과거의 장면들이 허공에서 지나갔고, 잠시나마 요동쳤던 파도는 어느새 잔잔하게 바뀌었다.



(그 당시 활동하던 인스타에서 20대 청춘으로 돌아가자라며 춤챌린지 릴스 영상을 보았고, 나도 참여했었다. 그때의 영상 다시 보니 열정 뿜뿜 하지만, 어색함이 느껴지면서 웃기다. 혹시라도 지나가다 이 글을 본 독자들은 춤 영상으로 잠시 피식 웃음의 시간을 갖기를 바란다.)



열심히 1cm씩 내딛던 시절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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