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버틴 자리들 [10장]
초등학교 3학년.
나는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집이라는 것은 벽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으로 지탱되는 곳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마음이 무너지면
집도 함께 무너진다는 사실을.
우리 집은 소리 없이 기울어 갔다.
아버지의 술과 무기력,
하루에도 몇 번씩 바닥으로 가라앉던 우울과
이유 없이 숨이 막혀 오던 공황의 순간들.
젊은 부부의 끝을 향해 가던 다툼은
눈에 보이지 않는 균열처럼
집 안을 조용히, 그러나 집요하게 잠식했다.
공기는 쇳덩이처럼 무거웠고 숨을 쉬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도
몸이 먼저 반응하던 시절이었다.
나는 그 시간을 ‘두근거림’으로 기억한다.
설렘이 아니라,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불안이
가슴 안에서 쉼 없이 진동하던 소리였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혼란의 한가운데서
아주 조용히, 그러나 오래 품어온 결심을 꺼내 놓았다.
더는 버티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엄마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제는 떠나야겠다.”
그 말은 도망이 아니라
이별이었고,
아버지와의 결혼을
끝내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렇게 아버지를 뒤로한 채
엄마는 우리 삼 남매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서던 날의 공기는
이상하리만큼 맑았다.
무너진 집을 떠나는 날이었는데
하늘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너무도 푸르렀다.
엄마는 짐을 많이 챙기지 않았다.
필요한 것과
지금 당장 버릴 수 없는 것들만
조용히 골랐다.
마치 오래전부터
이 순간을 연습해 온 사람처럼.
우리는 말이 없었다.
울지도 않았고
질문도 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그런 순간에
어른보다 먼저
상황을 이해한다는 걸
그때 알았다.
집 문을 닫는 소리는
생각보다 작았다.
쾅, 하고 무너질 줄 알았는데
문은 끝까지 얌전히 닫혔다.
그 소리가
이별의 전부였다.
계단을 내려 오며 나는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뒤를 보면
다시 안으로 끌려갈 것 같았다.
어둠 속에 남아 있을
숨 가쁜 침묵까지
함께 따라올 것 같아서.
집을 떠났지만
집은 한동안
내 안에 남아 있었다.
밤이면 문득
발소리 없는 불안이 따라왔고
잠결에 숨을 크게 들이쉬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날 이후
우리는 집이 아닌 상태로
살기 시작했다.
이 글은 제가 초등학교 3학년이던 해,
‘집을 떠난 날’의 기억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집이 무너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공기의 무게와 어른들의 침묵,
문소리에 먼저 반응하던 몸을 통해
이미 끝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먼저 감각하고 있었습니다.
이 글에서 쓰고 싶었던 것은
이별의 장면보다도
이별 이전에 이미 시작되고 있었던 균열,
그리고 집을 나선 뒤에도 오래 남아 있던
‘집의 잔상’이었습니다.
짐을 싸는 엄마의 모습,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아이들의 태도,
생각보다 작게 닫히던 문소리는
극적인 장면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조용해서 더 오래 남은 기억들이었습니다.
저는 이 글을 통해
집이란 공간이 아니라 상태이며,
사람의 마음으로 유지되고
그 마음이 무너지면 함께 사라진다는 사실을
어린 시절의 눈으로 다시 바라보고자 했습니다.
또한 이 글은
떠남의 기록이기보다,
그날 이후 한동안 ‘집이 아닌 상태’로 살아가야 했던
아이의 몸과 감각에 대한 기록입니다.
이 글을 쓰는 일은
이미 끝난 사건을 재현하는 일이 아니라,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어떤 두근거림의 정체를
조용히 불러내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두근거림이 불안이었음을,
어린 내가 차마 말하지 못했던 그 두려움을
이제야 문장으로 옮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