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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시 일기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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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비단 Aug 11. 2024

밀레니엄 베이비

나는 언제 자랑스러운 어른 되나


나 노오란 버스 타고 미끄럼틀 달린 유치원 다닐 때
어른들이 나보고 밀레니엄 베이비라고 부르더라
베이비는 알겠는데 대체 밀레니엄은 뭔지 모르겠더라고
화가 나서 따졌지 나는 밀레니엄이 아닌데 왜 날 밀레니엄이라고 부르냐고
그랬더니 어른들이 푸핫 웃으며 이렇게 말하더래
그건 바로 네가 온 세상 축복 모두 받으며 태어난 아가이기 때문이란다
그러니 너는 꼭 자랑스러운 어른으로 자라야 한단다
끝까지 밀레니엄이 뭔지는 안 알려줬지 내 머리 쓰다듬기만 하고

그래서 스물하나 먹은 지금까지도 밀레니엄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했나봐
축복 받으며 태어난 밀레니엄 베이비 자랑스러운 우리 아가
그치만 밀레니엄이고 나발이고 나는 그런 거 하나도 모르겠는데
자랑스럽긴커녕 자랑할 건덕지 하나 없는 한심한 어른인데
자장자장 우리 아가 잘도 잔다 우리 아가
새천년에 백룡 난 듯 자랑스런 우리 아가


나는 이십일 세기 동 틀 무렵 태어난 축복 받은 즈믄둥이
나는 어떤 자랑스러운 어른 될까
나는 언제 자랑스러운 어른 되나



<밀레니엄 베이비>, 2020.6


<탄생>, painted by MS Image Creator




 나는 2000년에 태어났다. 영어로는 밀레니엄 베이비, 순우리말로 즈믄둥이라고 한다. '즈믄'이 1000이라는 뜻이다. 말 그대로 천 년에 태어난 아기. 그만큼 축복과 기대와 희망을 받으며 탄생했겠지.


 우리는 모두 축복을 받으며 자랐다. 어린 시절 어른들의 온갖 사랑과 기대를 먹으며 자랐다. 어른들은 우리한테 꿈을 가지라 했고, 꿈을 키우라고 했다. 우리는 그 꿈이 대체 뭔지, 꿈이 왜 가치 있는 것인지 모른 채로 적당해 보이는 꿈을 장래희망란에 적었다.


 하지만 어른 되고 보니 어릴 적 받은 축복은 온데간데없었다. 우리는 어른들과 똑같은 어른이 되어 있었다. 그것은 일종의 저주였다. 우리는 어른들보다 더 뛰어나고 훌륭한 어른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어른들이 분명 너희는 자기들보다 더 똑똑하고 더 풍족하니 더 대단한 어른이 될 거라고 그랬는데. 거울 앞에 서 있는 것은 당신과 똑 닮은 슬픈 어른이었다.




 자랑스러운 어른이 되는 것. 그것은 어른으로부터 부여받은 우리의 사명이자, 불가능한 목표였다. 이제 와 생각하니 우리도, 당신도 '자랑스러운 어른'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 같다. 그래서 모두들 슬픈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언제 자랑스러운 어른이 될 수 있을까. 평생 모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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