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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시 일기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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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비단 Aug 09. 2024

완전색맹(完全色盲)

그래서 우린 실컷 놀려댄다


나 버스 요금 오백 원 하던 시절 반에 색맹인 녀석 있었다
그 녀석 색이란 걸 몰랐다 그래서 우린 실컷 놀려댔다 낄낄대며 비웃었다
어버이날 부모님 얼굴 그리기 하면 그 새끼 불러다 색연필 갖고 와라 시켰다
빨강색 갖고 와라 하면 주황색 갖고 오고 파랑색 갖고 와라 하면 검정색 갖고 왔다
그 새끼 빨강을 보고도 빨강을 모르고 파랑을 보고도 파랑을 몰랐다
우린 박장대소하고 그 새끼 헤헤 웃었다 어느 날 그 녀석 말도 없이 전학 갔다


시간 흐르고 어른 되어 나 문득 궁금했다 그 녀석 왜 소식 하나 안 들리나
남은 시간마저 말라버리고 나 문득 깨달았다 그 새끼 색맹이 아니었구나
어른 되니 기쁨을 보고도 기쁨을 모르고 슬픔을 보고도 슬픔을 몰랐다
그 새끼 색맹이 아니라 우리보다 일찍 어른 되었던 거였구나
그 녀석 그래서 헤헤 웃기만 했구나 화 한 번 내지 않고
나 버스 요금 천사백오십 원 하는 지금 색맹인 녀석 있다
그 녀석 색이란 걸 이젠 모른다 그래서 우린 실컷 놀려댄다 이제야 어른 됐다고



<완전색맹(完全色盲)>, 2019.12





 초등학교 반마다 꼭 한 명씩 장애를 가진 친구가 있었다. 내 경우에는 지적장애 친구가 있었다. 굉장히 짜증 나는 놈이었다. 몇 번 도와주니 나한테 달싹 달라붙어서는 귀찮게, 아니 화나게 굴었다. 어눌한 발음으로 내 이름을 부르고, 질질 흐르는 콧물을 옷에 슥슥 문지르고는 내 손을 덥석 잡았을 때 기분이란... 장애 아동이 일반학교에서 지내면 사회성을 배울 수 있다고 하지만, 내 생각에는 아이들이 장애에 대한 불신과 혐오를 키우는 부작용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그때의 나와 내 친구들은 지적장애 친구들을 진심으로 싫어했으니.


 장애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놀림거리가 되었다. 더럽다, 불결하다, 짜증 난다, 변태 같다, 시끄럽다, 병신 같다 등등 다양한 욕이 날아갔다. 선생들은 장애 친구들을 보살피고 도와주고 친하게 지내라고 당부했지만, 코흘리개들에게 그것은 너무나 어려운 부탁이었다. 내게 민폐 끼치고 기분 나쁘게 만드는, 나와 매우 다른 존재와 친하게 지내라니. 그건 어른들도 하지 못하는 일 아닌가. 사람 하나 따돌리는 건 어른들이 더 잘하는 짓 아니었나.


 장애 친구들은 우리와 어울리려고 노력이었다. 욕설과 조롱을 들으면서도 무리에 끼어들려고 화 한 번 내지 않고 헤헤 웃기만 했다. 우리는 욕 처먹을 때마다 실실 쪼개는 그 녀석을 보면서 어이가 없었다. 뭐가 저렇게 신난다고 웃는 걸까. 지능이 떨어지는 거지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닐 텐데. 자신이 집단에서 배척받고 있음을 절실히 느끼고 있을 텐데. 어떻게 저렇게 웃을 수 있는 걸까. 그때는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중학생이 되자 장애 친구들은 사라졌다. 덕분에 길을 가다가 갑자기 머리에 공을 맞는 일도, 어떤 여자애의 엉덩이가 추행당하는 일도 사라졌다. 우리는 장애 친구들의 고난에서 벗어났다. 그 누구도 사라진 장애 친구들의 행방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어느새 어른이 된 우리는 장애를 얻었다. 기쁨을 보고도 기쁨을 모르고, 슬픔을 보고도 슬픔을 모르는, 치료가 불가능한 영구적인 장애다. 그래서 우리는 무리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 관심 없는 주제로 실없는 잡담을 하고, 인스타그램에 허무맹랑한 사진을 올리며, 친하지도 않은 사람과 술잔을 기울이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주고받는다. 그리고는 서로 놀려댄다. 이제야 어른 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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