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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비단 Sep 17. 2021

떡볶이

기억 속 최초의 떡볶이는 초등학생 때였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평범한 초등학교였다. 평범한 초등학교, 특별한 초등학교 따로 있냐 싶긴 하지만, 정말 무어라 설명할 특징이 전혀 없는 학교였다. 근처에 사는 동네 애들이 다니는, 같은 학년이면 거의 대부분 이름 정도는 아는 사이인 작은 학교였다. 그런 학교가 다 그렇듯 학교 앞 상가에 문방구가 있었다. 천장에 이상한 공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아침에 학교 가기 전 준비물을 사가는 작은 문방구였다. 이곳은 몇백 원짜리 불량식품을 사거나, 오백 원짜리 뽑기를 하는 아이들로 늘 가득했다. 나는 그 뽑기에 여러 번 도전했으나, 당첨된 적이 한 번도 없다. 한 번은 오천 원을 들고 개를 한꺼번에 뽑았지만 공책 한 권이 뽑힌 걸로 끝이었다. 나중에 확률 조작을 통한 소비자 기만으로 소비자원에 신고할 예정이다.


문방구 옆에 분식집이 있었다. 이름은 ‘에덴분식’. 그 당시 나는 에덴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사실 지금도 모른다. 에덴동산이라는 말만 들어봤지, 설명을 찾아본 적은 없다. ‘에덴’은 나한테 있어 걍 떡볶이집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식당 가운데에 큰 철판과 도마가 떡하니 놓여 있다. 철판 위에는 항상 빨간색 떡볶이가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피카츄가 층층이 쌓여 있었다. 입구 측면에는 슬러쉬 기계가 돌아가고 있었다. 단 오백 원. 오백 원짜리 동전 하나만 있으면 그곳의 음식을 맛볼 수 있었다. 오백 원이라고 하니 굉장히 하찮은 가격 같지만, 그때는 버스요금이 오백 원이었다. 버스비라는 거금을 들여야만 떡볶이를 먹을 수 있었다.


쭈뼛쭈뼛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줌마가 인사한다. 오백 원짜리 동전 하나를 꺼내 아줌마에게 건넨다. 아줌마는 앞치마 주머니에 동전을 넣고, 국자로 한가득 떡볶이를 퍼서 스티로품 그릇에 담는다. 그리고는 이쑤시개 하나를 가장 위에 얹힌 떡에 꽂는다. 지금은 컵볶이라고 부르는 그것이다. 왼손으로 바닥을 받치고, 오른손으로 이쑤시개를 집는다. 이제 집까지 걸어가면서 떡볶이를 야금야금 먹으면 된다. 어쩌다 자금이 천 원이나 있을 경우, 김밥 반 줄을 썰어 떡볶이 위에 올리거나, 피카츄를 먼저 먹어버린 후 이쑤시개 대신 피카츄 막대기로 떡볶이를 찍어 먹는다.


집에서 학교까지 거리는 버스 두세 정거장 정도였다. 버스를 타기에는 짧고, 걸어가기에는 길다. 대부분의 학생은 걸어 다녔다. 학교 앞 사거리에서 아파트 사거리까지 쭉 직선도로가 나 있다. 집과 학교를 오갈 때마다 그 길을 따라 걷는다. 어느 시간에 가도 학교 애들이 한둘은 있었다. 열 살도 안 된 것들이 그 긴 길을 걸으면서 무엇을 했을까. 당연히 에덴분식의 떡볶이, 김밥, 피카츄, 슬러쉬가 그들의 손에 들려 있었다. 이십 분, 초등학생한텐 억겁과도 같은 시간, 에덴분식의 음식은 신이 인간을 먹여 살리신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와 같았다. ‘에덴분식’이라는 이름에 담긴 그 깊은 뜻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아아! 할렐루야! 아멘! 지저스 크라이스트! 홀리슅!


말은 이렇게 했지만, 정작 나는 에덴분식에서 음식을 사 먹은 적은 손에 꼽다. 어렸을 때 나는 무척이나 소심했다. 그래서 학교 친구들이 북적거리는 분식집에 들어가기가 겁났다. 군것질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어서(불량식품도 저학년 때나 몇 번 사 먹은 게 전부일 정도다) 그다지 에덴분식에 들어갈 용기를 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차라리 돈을 모아서 마트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 게 더 나았다.


때문에 내가 에덴분식에 가는 건 정말 가끔이었다. 하지만 에덴분식에 가는 날이면 항상 떡볶이를 샀다. 피카츄는 싸구려 튀김 맛이 강했고, 김밥은 칼로 똑 잘라 반만 주는 게 괘씸했다. 무엇보다 걍 떡볶이가 제일 맛있었다. 떡의 쫄깃쫄깃한 식감, 어묵의 자극적이고 짜릿한 맛, 즉석에서 떡볶이를 국자로 퍼주고, 그릇을 손으로 들고 이쑤시개로 콕콕 꽂아 먹는다는 특별한 경험까지. 아마도 내가 최초로 접한 떡볶이가 이런 컵볶이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떡볶이 사랑도 덜했으리라 믿는다. 바로 옆에 논밭이 펼쳐져 있고, 땅바닥에 떨어진 은행을 피해 이리저리 깡총거리면서, 떡 하나를 콕 찔러 입에 넣는 그때의 감각은 어른이 된 지금은 기억 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고등학생이 되고 우연히 초등학교 앞을 지나갔을 때 에덴분식은 사라지고 정체 모를 가게가 들어서 있었다. 이젠 오백 원짜리 동전 들고 다닐 일 영영 없게 되어버렸다.


2020년 11월 8일, 떡볶이와 김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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