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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비단 Mar 12. 2024

쑥밭과 완두콩

이유 없이 좋아하게 된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버릇처럼 좋아한다.


 밥솥이 칙칙 코골이를 하며 김을 내뿜었다. 나는 부엌 의자를 끌고 와 올라갔다. 밥솥 손잡이를 돌리니 삐리릭 소리가 났다. 버튼을 꾹 눌렀다. 보물상자가 서서히 열리며 뜨끈한 훈김이 얼굴을 덮쳤다. 그 안에는 흰쌀밥 위에 초록색 쑥떡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유치원생 때 나는 빌라에 살았다. 주황색 시멘트벽에 빌라 이름 받침 하나가 떨어져 나간 4층짜리 빌라였다. 농협은행에서 큰 도로를 따라 걷다가 왼쪽 내리막길로 빠지면 빌라가 나타났다. 가운데 떡하니 빌라가 서 있고, 오른쪽에 주차장, 왼쪽에 밭이 펼쳐진다. 오래된 단층 기와집들 사이에 우뚝 서 있는 빌라는 어쩐지 주변 풍경과 전혀 어울리지 않아 돌연변이처럼 보였다.


 나는 이곳에서 2년 정도 살았다. 집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왼편에 화장실이 있고, 좀 더 들어가면 거실과 방이 나왔다. 조그맣고 다감한 집이었다. 거실 수납장 위에 올려진 뚱뚱한 검은색 티비는 마치 성주신 같았다. 나는 성주신의 옆얼굴에 크레파스로 온갖 화장을 해주었다. 노란색 분홍색 코스모스를 그려주니 칙칙한 놈이 훨씬 화사해 보여 마음에 들었다.


대충 이렇게 생긴 브라운관 티비였다




 빌라 뒤쪽에 밭이 펼쳐져 있었다. 주인이 있는 밭인지, 아니면 그냥 야생밭인지는 모르겠다. 관리가 전혀 안 되고, 빌라 주민들이 아무렇게나 나물을 캤던 것을 보면 야생밭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그 밭을 쑥밭이라고 불렀다. 내가 손수 캔 나물이 쑥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나를 데리고 흙밭에 쭈그려 앉아 “이건 ㅇㅇ고, 저건 ㅇㅇ야.”라고 알려주었긴 한데, 내 기억에 남은 건 쑥밖에 없다. 흙 위에 앙증맞게 백우선처럼 갈라진 초록잎을 보면 “엄마, 저기 쑥”하며 가리켰다. 그리고 쪼르르 다가가 쑥을 캤다.


 빨간색 손잡이가 달린 모종삽과 비닐봉투를 들고 쑥밭에 나간다. 쬥하게 고즈넉한 햇빛이 정수리를 달구었다. 나는 쭈그려 앉아서 초록색 무더기를 삽으로 팠다. 손에 집고 허공에 들어 탁탁 턴 다음에 비닐봉투에 넣었다. 이 짓을 20분 정도 하면 비닐봉투가 가득 찼다.


쑥개떡


 엄마는 그 쑥으로 쑥떡을 만들어주었다. 전기밥솥이 칙칙 소리를 내며 운다. 뚜껑을 여니 쌉싸름한 향이 거실을 가득 메꾼다. 손으로 쑥떡을 집어 꿀을 푹 찍고 입에 넣는다. 달콤쌉쌀한 맛이 났다.


 이때의 기억 덕분일까, 나는 지금도 쑥을 좋아한다. 쑥을 잔뜩 넣은 된장국에 밥을 말아먹거나, 쑥개떡을 밥솥에 집어넣고 10분 뒤 꺼내먹으면 어릴 때 그 맛이 난다. ‘풀떼기는 뭘 해도 풀떼기에 불과하다.’라는 신조를 가진 나지만, 쑥만큼은 예외다.




 작은 빌라여서 그런지, 주민들은 서로서로 친하게 지냈다. 아침에 유치원 봉고차를 기다리다 옆집 아주머니를 만나면 허리를 푹 숙여 인사했다. 그때는 땅에 박힐 정도로 허리를 접어야 예절이 바르다고 생각했다. 아주머니는 착하다고 칭찬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이름도, 나이도, 그 무엇도 모르는 사람인데 그저 같은 빌라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된다니 참 신기하다. 지금은 아파트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전혀 모르고,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도 휴대폰 화면만 쳐다보는데.


 윗집에는 나와 나이가 같은 남자아이가 살았다. 편의상 승민이라고 부르자. 승민이와 나는 유치원도 같고, 빌라도 같아서 빠르게 친해졌다. 승민이 집에는 게임기가 있었다. 티비에 선을 연결하고, 버튼이 2개뿐인 패드로 플레이하는 게임기였다. 나는 심심하면 승민이 집에 놀러 가서 같이 게임을 했다. 꽤 친했지만, 내가 이사를 가고 초등학생이 되자 더이상 소식을 들을 길이 없었다. 초등학교는 어디로 갔는지, 잘 살고 있는지, 전혀 궁금하지도 않았다. 지금은 그때 그런 친구가 있었지, 하는 싱거운 감상뿐이다.


 언제는 윗집에 빌라 아이들이 다 같이 모여 짜장면을 시켜 먹기도 했다. 목 위에 헬멧이 달린 배달아저씨가 빨간색 상자를 열고 짜장면을 차곡차곡 꺼냈다. 우리는 네모난 테이블에 둘러앉아 짜장면 비닐을 깠다. 나무젓가락을 뜯고, 손바닥에 바스락바스락 비빈 다음, 양손에 하나씩 들어 짜장면을 들었다 놨다 하며 섞는다.


짜장면. 오이 올라가 있으면 식약처에 신고한다.


 그 짜장면에는 완두콩이 들어 있었다. 자그맣고 똘망똘망한 연두색 완두가 어째선지 애착이 갔다. 나는 짜장면을 먹기 전 젓가락으로 완두콩을 쏙쏙 골라먹었다. 어금니에 와작 거리며 아스러지는 완두콩은 아무 맛도 안 났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우리는 짜장면을 먹고, 마지막 남은 군만두를 두고 싸우며 시절을 보냈다.




 나는 지금도 짜장면을 좋아한다. 중국집에 가면 고민도 없이 짜장면을 시킨다. 10분 정도 지나 짜장면이 나왔는데 완두콩이 없으면 실망하고, 다시는 그 집에 가지 않는다.


 왜 하필 완두콩을 좋아했을까? 곰곰이 고민했지만 답을 찾지 못했다. 어쩌면 5살짜리 꼬마가 무언가를 좋아하는데 거창한 이유 따위 필요 없는 걸지도 모르겠다. 이유 없이 좋아하게 된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버릇처럼 좋아한다. 그것이 내가 아직도 마트에서 쑥개떡을 사 먹고, 짜장면에 완두콩을 고집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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