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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비단 Mar 14. 2024

아동센터와 공익 선생님

살면서 처음으로 체벌을 겪은 곳


 “한 명의 잘못은 너희 모두의 잘못이야. 그게 공동체라는 거다.”


 몽둥이를 든 공익은 교실을 왔다 갔다 거리며 반복해서 소리 질렀다. 나는 허벅지와 팔뚝에 감각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속으로 온갖 쌍욕을 날렸다. 이미 시계는 30분을 지나고 있었다. 투명의자에서 일어나기까지 아직 멀었다.




 초등학생 2학년 때부터 위스타트 지역아동센터에 다녔다. 위스타트는 저소득층 가정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공부와 놀이를 가르치는 센터였다.


 처음 센터에 찾아간 날, 나는 혼자서 센터에 걸어갔다. 1학년과 2학년은 다른 학년보다 일찍 수업이 끝나서 누나랑 같이 갈 수가 없었다.


 길을 걷고, 횡단보도를 건너고, 건물에 들어서고, 계단을 올라, 마침내 문 앞에 섰다. 내 키보다 훨씬 큰 유리문이었다. 문을 열 수가 없었다. 가슴이 쿵쿵거리고 겁이 났다. 9살짜리 꼬마에게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장소의 문을 여는 건 너무나도 가혹한 시련이었다. 혹시나 누가 문을 열어주지 않을까 유리문 안쪽을 기웃거렸지만 아무도 지나가지 않았다.


 몇십 분 동안 멍청하게 문 앞에 서 있었다. 누나랑 누나 친구가 계단을 올라왔다. 누나가 뭐 하냐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누나는 가뿐하게 문을 열었다. 나는 그 뒤를 졸졸 따라갔다. 그렇게 현명한 지혜로 시련을 통과하였다.




 센터는 교실이 4개 있었다. 씨앗반, 새싹반, 풀잎반, 꽃잎반. 각각 유치원생, 1/2학년, 3/4학년, 5/6학년이 속했다.


새싹반은 유치원이랑 다른 게 없었다


 나는 새싹반에 배정되었다. 그곳에서 동요를 배우거나 덧셈 뺄셈을 풀거나 체조를 하는 등 시시한 짓거리만 했다. 여기서 학교보다 훨씬 더 많은 동요를 배웠다. 카시오페아를 부르며 그리스로마 신화 이야기를 듣던 기억은 아직도 남아 있다. 아, 카시오페아, 언제나 밝은 별이여!


 풀잎반에 올라와서 제대로 된 공부와 게임을 할 수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사칙연산 게임이다. 각 아이들에게 종이가 한 장씩 주어진다. 종이에는 11 x 11의 네모칸이 있다. 첫 열과 첫 행에 숫자가 쭉 적혀 있다. 이제 가로 세로가 교차하는 빈칸에 그 두 수를 계산한 값을 써넣는다. 맨 왼쪽 위 첫 번째 칸에 +가 있으면 두 수를 더하고, -가 있으면 빼고, x가 있으면 곱하는 식이었다. 시간을 재서 가장 빨리 푼 3등까지 사탕을 주었다. 나는 이 게임에서 1등을 놓친 적이 없다.


초등학생 문제집. 질리게도 풀었다.


 문제집을 풀었던 것도 기억난다. 사회나 과학 같은 문제집은 단원에 들어서면 첫 장에 개념정리가 되어 있다. 그것을 달달 외운 다음, 빈 종이에 똑같이 옮겨 적는 식이었다. 초등학생한테 백지 인출을 시킨 것이다. 굉장히 단순하지만 효과 좋은 공부법이다. 이것도 항상 1등이었다. 10분 만에 후딱 해치우고 끙끙 앓는 친구들을 놀리며 보드게임을 하는 게 인생의 낙이었다.




 이 센터는 내가 살면서 처음으로 체벌을 겪은 곳이기도 했다. 센터에 ‘공익 선생님’이라고 부르던 젊은 남자들이 있었다. '공익'이 무슨 뜻인지 한참 커서야 알게 되었다. 단지 아동센터에서 근무하던 사회복무요원이 아이들에게 ‘선생님’ 소리를 듣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자신보다 권위가 높은 어른이면 일단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본다. 그때 내가 그 새끼들의 정체를 알았다면 절대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빨간 패딩 조끼를 입은 공익은 신문지를 뭉쳐 노란 테이프로 칭칭 감은 몽둥이를 들고 다녔다. 아이들이 말을 안 들으면 그 몽둥이로 아이들을 툭툭 때리면서 위협했다. 말뽄새도 얼마나 싸가지 없던지. 뚱뚱해서 공익 된 주제에 진짜 선생님이라도 된 것마냥 온갖 훈수질을 해댔다.


내가 패딩을 싫어하는 이유가 이것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잘못이라도 하면 단체 기합을 했다. 벽에 아이들을 주르륵 세워서 투명의자를 시키거나, 땅바닥에 눕혀서 돛단배를 시키거나 하는 식이었다. 기합은 몇 시간이고 이어졌다. 빨간 조끼는 몽둥이를 어깨에 메들고서 공동체 생활이니, 다 너희 잘못이니 떠들었다.


돛단배. 하프 보트 자세, 아르다 나바아사나(Ardha Navasana)라고 불리는 요가 자세다. 목 뒤쪽이 굉장히 땡긴다.


 그때 나는 내가 체벌을 당하는 것에 불만을 가지지 못했다. ‘우리’가 잘못을 했으니 벌을 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일종의 가스라이팅이었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공동체 생활이라면서 어린 아이들에게 가혹 행위를 시키는 것이 얼마나 멍청하고 불합리한 일인지 그때는 몰랐다.


 빨간 조끼의 악행은 단체 기합에서 멈추지 않았다. 오후 3시는 간식 시간이었다. 빵이나 과자 같은 게 간식으로 나왔다. 빨간 조끼는 빵을 두 손으로 꽉꽉 눌러 떡을 만든 다음에 우리에게 억지로 먹였다. 내 손은 깨끗하다는 개소리와 함께.


 아무리 생각해도 교육적 효과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가혹행위다. 왜 군대에서나 하는 악기바리를 초등학생 애들한테, 그것도 공익 새끼가 하는 건지 지금도 이해할 수가 없다. 단체기합에는 불만 없었지만, 그 더러운 빵떡을 먹는 것만큼은 불결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공익에 대해 잘못된 편견을 갖고 싶지 않지만, 이때 기억 때문에 좋은 이미지를 가질 수가 없다. 그 빨간 조끼는 제발 길 걸어가다 킥보드에 부딪히고 병원에 실려갔으면 좋겠다. 내 눈에 띄면 내가 직접 한다. 운전면허 땄다.


다 때려 박아 범퍼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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