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작고 어린 것을 귀여워한다. 맹수조차 새끼는 귀엽게 보인다.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들도 새끼는 잘 건들지 않는다. 동물도 귀여움을 느끼는 것이다. 진화학적 관점에서, 귀여움이라는 감정은 새끼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한 똑똑한 전략이다.
어릴 때 나는 귀여운 것도 언젠가 죽음을 맞이한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다.
센터 다목적실에 피아노가 있었다. 검은색 피아노가 3대 정도 다목적실 가장자리에 놓여 있었다. 공부 시간에 우리는 두세 명씩 다목적실에 가서 20분 정도 피아노를 배웠다. 젊은 대학생이 가르쳤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 봉사활동을 왔던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그때 나는 피아노를 좋아했다. 옛날에 피아노 학원을 다닌 경험도 있어서 빠르게 배울 수 있었다. 피아노 위에 체르니를 펼치고, 나는 열심히 캉캉과 엘리제를 위하여를 연주했다. 나는 금방 센터의 상위권 실력자가 되었다. 단지 피아노를 두드리는 게 기분 좋았던 것뿐인데. 어른들은 피아노 천재라며 괜히 호들갑을 떨었다. 이런 어른들의 기대가 부담스럽기도 했다.
교재 이름 뒤에 붙어 있던 숫자는 아직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피아노 수업은 센터에서만 국한되지 않았다. 우리는 2-3주에 한 번씩 버스를 타고 대학교에 갔다. 버스가 산길을 빙글빙글 돌아 올라가더니 산 한가운데에 회색 건물들이 뜬금없이 나타난다. 왜 대학교를 그런 곳에 지었는지, 대체 이 학교 학생들은 통학을 어떻게 하는 건지 궁금했다.
대학교 교실에 앉아 멍하니 창문 너머 첩첩산중을 바라보다 보면 선생님이 왔다. 센터에서 가르치던 대학생이랑 같은 사람 아니었을까. 나중에 찾아보니 그 대학에 피아노 관련 학과는 없었다. 그러니 아마도 사회복지과나 유아교육과 학생이었을 것이다.
검은색 가디건을 입은 선생님을 따라 피아노실에 갔다. 사방이 흰 벽이었고, 문은 유리로 되어 쭉 뻗은 복도가 보였다. 피아노 하나로 가득 찬 좁은 공간에서 선생님과 나 단둘이 피아노를 쳤다.
선생님은 열정적으로 나를 가르쳤다. 교재를 펼치고 내 손을 잡으며 피아노 파지를 하나하나 봐줄 정도였다. 젊은 대학생이 초등학생을 데리고 피아노를 가르치는 게 꽤나 흥분되는 일이었나 보다. 나로서는 빨리 선생님이 나가서 내 맘대로 피아노를 치고 싶은 마음뿐이었지만.
그렇게 피아노를 열심히 배운 나는 어느 순간부터 피아노를 치지 않았다. 센터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행사에 내가 피아노 공연을 하기로 했었는데 멋대로 취소당했기 때문이다. 그 일에 맘이 상해서 더이상 피아노를 칠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도 아직까지 캉캉은 안 까먹었다는 게 다행일 따름이다.
피아노 하면 이젠 노다메 칸타빌레밖에 떠오르는 게 없다
풀잎반에는 햄스터가 살았다. 대체 어떤 이유로 햄스터가 그곳에 살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흐릿하지만, 아마 초등학교 앞에 가끔 출몰하는 아저씨가 싼값에 파는 녀석을 누군가 데려온 게 아닌가 싶다.
병아리나 햄스터를 팔았었는데
우리는 다 같이 풀잎이가 살 집을 만들었다. 책이 쌓여 있던 플라스틱 수납통을 비우고, 그곳에 톱밥을 깔고, 쳇바퀴를 넣고, 사료 그릇을 넣고, 급수기를 달았다. 풀잎이는 코를 킁킁대며 새 집을 구경하더니, 곧바로 쳇바퀴에 올라타 바퀴를 굴렸다. 우리는 풀잎이를 관리하고 구경하고 갖고 노는 게 일상이 되었다.
우리는 정성스럽게 풀잎이를 돌봤다. 다 같이 마트에 쳐들어가 풀잎이가 먹을 사료를 사 왔다. 매일매일 사료 그릇을 채우고, 물을 갈아주었다. 풀잎이가 잘 때는 모두가 입을 다물고 조용히 풀잎이를 관찰하고 쓰다듬었다. 풀잎이를 두 손으로 들면 다리를 쩍 벌리고 조그마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어린 아이는 작은 생명에게 쉽게 마음을 뺏긴다.
언젠가 한 번은 풀잎이 놀이터를 만들어주자며 아이들이 다 같이 하드보드지를 사 왔다. 가위로 하드지를 싹둑싹둑 자르고, 테이프로 이어 붙였다. 책상을 한쪽에 밀어두고, 바닥에 하드지를 세워 미로를 완성했다. 미로 곳곳에 간식을 두고, 한구석에 풀잎이를 살포시 내려놓았다. 풀잎이가 두리번거리며 킁킁대더니, 이내 재빠르게 달려가 간식을 집어먹었다. 우리는 휴대폰으로 풀잎이 사진을 찍으며 꺄르륵댔다.
사료 하나만 먹어볼걸. 맛있어 보이던데
오후 4-5시쯤 되면 우리는 풀잎이 집을 들고 산책을 나갔다. 실내에만 처박혀 있는 풀잎이가 불쌍하다는 이유였다. 내가 두 손으로 풀잎이 집을 안고 앞장서서 하천을 따라 걸었다. 열댓 명의 아이들이 플라스틱 박스를 안고 다니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했을까. 우리는 다른 사람 시선은 신경 쓰지 않았다.
풀잎이를 양손으로 번쩍 들어서 풀잎이가 경치를 구경하도록 했다. 혹여나 풀잎이를 놓칠까 온 주의를 집중했다. 녀석의 눈에는 이 세상이 어떻게 보였을까. 평생 플라스틱 케이스 안에서 나고 자란 녀석의 눈에는, 이 세상이 거대한 쳇바퀴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겨울이 찾아오자 우리는 고민에 빠졌다. 센터는 밤이 되면 문을 닫는다. 당연히 난방도 틀지 않는다.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으면 풀잎이는 얼어 죽을 게 당연했다. 고민 끝에 우리는 마트에 가서 핫팩을 무더기로 사왔다. 핫팩은 10시간 정도 지속되니, 선생님이 출근할 때까지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우리는 풀잎이 집에 담요를 세 겹으로 접어 넣고, 그 안에 온 힘을 다해 흔든 핫팩을 집어넣었다. 풀잎이는 핫팩에 몸을 기대더니 사근사근 잠에 들었다. 다행히 풀잎이의 싸늘한 시체를 발견하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풀잎이는 겨울에도 살아남았다.
몇 년이 지났다. 누나는 센터 선생님과 계속 연락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풀잎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선생님은 숨이 멎어가는 풀잎이를 병원에 데려갔으나, 풀잎이는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나는 그 소식을 듣고 슬픔을 느꼈다. 햄스터의 평균 수명이 몇 년밖에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어째서인지 나는 풀잎이가 영원히 살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나는 내 두 손에서 사르르 눈을 감고 꿈을 꾸던 풀잎이를 영원히 떠나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