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세대의 끝자락, 2000년생
‘컴퓨터실’이란 장소는 초등학교 남자 아이들의 가슴을 떨리게 하는 마법이 있다. 그때 컴퓨터실은 남자애들의 보물섬이자 유토피아였다. 선생님의 눈을 피해 게임을 하는 스릴 넘치는 모험은 그곳 아니면 경험할 수 없다.
초등학생 때 컴퓨터 수업을 받았다. 한창 학교에 컴퓨터가 보급될 때쯤 교육과정에 새로 편성된 수업이었다. 처음 컴퓨터실에 들어갔을 때, 그 크기에 놀랐다. 교실 두어 개쯤 합친 정도로 큰 공간에 무수한 컴퓨터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하철 의자처럼 쿠션이 달린 의자를 당겨 앉고, 손가락으로 전원 버튼을 누르니, 본체에서 위잉 엔진 소리를 내며 모니터가 켜졌다. 화면 너머로 파란 바다가 펼쳐졌다.
컴퓨터 시간에는 보통 한컴타자연습을 했다. 보라색 글씨로 ‘한컴’이라 적힌 아이콘을 따닥 클릭하면 프로그램이 실행되었다. 처음에는 자리 연습을 했고, 며칠이 지나고 키보드가 손에 익자 낱말 연습과 짧은 글 연습을 시작했다. 선생님은 짧은 글 연습에서 타자 300이 넘으면 자유시간을 준다고 했다. 아이들은 손등에 불똥이 떨어진 것처럼 빠르게 손가락을 움직였다. 하지만 10살도 안 된 애기들에게 타자 300은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혹시나 겨우 자유시간을 얻어도 남은 수업 시간은 10분도 채 안 될 때가 많았다.
몇몇 남자애들은 타자 300을 통과하지 않고 몰래 게임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게임을 켜는 족족 검거당했다. 컴퓨터실 뒤쪽 벽에 커다란 거울이 설치되어 있었다. 선생님 자리에서 거울을 보면 아이들의 모니터가 한눈에 들어왔다. 선생님은 자리에 앉아 우리가 타자연습을 하고 있는지, 수상한 화면이 띄어져 있는지 감시했다. 나는 그 거울의 용도를 본능적으로 파악했기에 수업 시간에 게임을 하는 모험은 거의 하지 않았다. 그때 알트탭의 존재를 알았다면....
그 대신 나는 방과후 컴퓨터 교실에 들어갔다. 타자연습이나 학교 홈페이지 탐방만 시키던 학교 수업과 달리, 방과후 수업에서는 한컴오피스를 가르쳐주었다. 최종 목표는 ITQ 자격증이었다. ITQ는 한국생산성본부(KPC)가 주관하는 국가 공인 민간 자격증이다. 그 당시 컴퓨터 좀 한다 하는 초중고 학생들이 주로 따는 자격증이었다.
이론 수업은 종이 몇 장 분량밖에 안 되었다. 어려운 내용은 없었다. 그때 배운 내용이 아직도 생각난다. 밀리 마이크로 나노 피코 펨토…… 비트 바이트 킬로 메가 기가 테라 페타……. 어렸을 때 배운 내용이 평생이 지나도록 잊히지 않는 건 정말 신기하다. 치매 환자도 최근 기억부터 잊지 옛날 기억은 계속 기억한다고 하지 않은가. 어쩌면 과거를 추억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일지도 모르겠다.
실기 수업은 선생님이 A4 문서 3-4장 정도 나눠주면, 그 문서를 똑같이 따라 만들면 됐다. 한글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기능을 써먹어야 했다. 딱히 어렵진 않았다. 시간을 재면 항상 40분 만에 끝냈다.
실기 수업을 통과하고 나면 그때부터 몇 시간의 자유가 주어진다. 우리는 삼삼오오 모여 게임을 했다. 이 방과후 컴퓨터 교실은 내 게임 인생의 시작점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다양한 게임을 배웠다.
컴퓨터 교실의 리더 격인 형이 있었다. 이 형을 성재형이라고 부르자. 성재형은 나보다 한 살 위였다. 성재형은 다양한 게임을 알고 있었다. 게임 전문가라고 할까. 컴퓨터 교실에서 게임에 능숙하다는 것은 곧 권위를 의미한다. 성재형은 어린 양들에게 게임이란 문물을 친히 전수했다. 성재형은 그 당시 나에게 가장 대단하고 존경스러운 인물이었다.
‘스타크래프트’는 블리자드에서 발매한 RTS 게임으로, 우리나라에서 엄청난 히트를 쳐서 우스갯소리로 ‘민속놀이’라고 불린다. 나는 2000년생이 스타 세대의 끝자락이라고 생각한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직전의 세대가 2000년생이다. 스마트폰이 있었다면 방과후 교실에 성재형에게 스타크래프트를 배우는 일 따위 없었을 것이다. 차라리 그 시간에 팔라독을 하지.
네이버 검색창에 ‘스타크래프트 1.16.1 립버전’을 검색해 게임을 다운 받는다. 저작권 따위 개나 줘버린 무법의 시대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SCV로 미네랄과 가스를 캐고, 배럭을 지어 마린을 생산하고, 아카데미를 클릭해서 비명소리를 감상하고, 적진에 어택땅을 해서 괴물을 무찔렀다. 마린을 더블 클릭한 뒤 T를 연타하면 어느새 아군 부대가 다 죽었다. 성재형은 스팀팩 쓰는 법만 알려주고 메딕을 뽑는 법은 알려주지 않았다.
대신 성재형은 엔터를 치고 ‘show me the money’를 쳤다. 그러자 미네랄과 가스가 99999가 되었다. 형은 영어 몇 개를 더 쳤다. 파워오버 어쩌구, 블랙쉽 저쩌구…. 내 마린 부대는 무적이 되어 있었다. 손쉽게 저그 군단을 괴멸시켰다.
우리는 주로 유즈맵을 했다. 빠른무한, 랜덤유닛디펜스, 톰과 제리, 혈압마라톤, 데저트 스트라이크…. 내가 가장 좋아했던 유즈맵은 블러드다. 사이언스 배슬을 움직이면, 랜덤한 유닛이 무더기로 나와 배슬을 따라다닌다. 이 유닛들을 가지고 최대한 적을 많이 죽이면 된다. 보통 연합을 맺어서 한 명만 죽도록 패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유닛을 컨트롤할 필요가 없어서 이 맵을 제일 좋아했던 것 같다.
컴퓨터실 하면 ‘레바의 모험’도 빼놓을 수 없다. 레바의 모험은 만화가 레바의 캐릭터를 따서 만든 던전앤파이터 2차창작 팬게임이다. 내 또래 남자라면 레바의 모험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레바의 모험은 출시되자마자 전국의 초등학교 컴퓨터실을 점령했다. 그때 아이들은 던파는 몰라도 레바의 모험은 다 알았다. 나조차도 레바의 모험으로 던파를 알게 되었으니.
직업은 4개 있었다. 스핏파이어, 레인저, 버서커, 웨펀마스터. 성재형은 레인저를 주로 했다. 총을 부메랑처럼 던지고, 주위에 총을 난사하고, 니킥을 날려 공중에 띄운 다음 미니건을 쏴재꼈다. 흠, 분명 화려하긴 한데, 내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멀리서 총만 피융피융 쏘다니. 얍삽하지 않은가.
나는 웨펀마스터를 했다. 그 이유는 광선검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광선검! 남자 아이의 가슴을 울리는 무기 아닌가. 웨펀마스터를 질리도록 연습했다. 몇 달의 노력 끝에 나는 무한 콤보를 쓸 수 있게 되었고, 교실 내에서 실력자로 통했다. 생각보다 게임 난이도가 높아서 마지막 스테이지까지 깰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나고 고등학생이 되자 레바의 모험 파이널 버전이 나왔다. 컴퓨터에 설치해서 오랜만에 해보았지만, 더이상 무한 콤보를 쓸 수 없었다. 나는 그대로 게임을 껐다. 내게 플래시 게임 하나에 몇 달이란 시간을 쏟을 순수한 열정은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검은 화면을 오랫동안 쳐다봤다. 스타크래프트, 레바의 모험, 고군분투, 건물 부수기, 로스트사가……. 컴퓨터 교실에서 했던 게임들을 이제 더는 하지 못할 것이다. 그 사실에 괜히 씁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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