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기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보스 나왔다!”
커다란 비행선이 우리 머리 위를 가렸다. 친구와 나는 긴장된 표정으로 비행선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비행선은 화면을 쭉 넘어가더니, 자리를 잡고 우뚝 멈췄다. 곧 수많은 미사일이 발사되었다.
“점프해! 점프! 아!”
우리는 마지막 단말마를 외치고 나가떨어졌다. 화면 중앙에 커다란 숫자가 뜨며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나는 오기가 생겨 백 원짜리 동전 하나를 구멍에 밀어 넣었다.
일곱 살 때 나는 옆동네 아파트로 이사했다. 처음에는 동과 호수를 외우는 게 힘들었다. 입구에 서서 빌라의 두 배는 되어 보이는 커다란 건물들을 멍하니 올려다봤다. 우리 집은 대체 어디인가. 건물이 하나뿐인 빌라에서 살다가, 건물이 셀 수도 없이 많은(어린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아파트에 오니 모든 게 낯설었다.
유치원은 원래 다니던 곳에 계속 다녔다. 덕분에 나는 몇 개월 동안 장거리 통학을 했다. 아침에 아파트 입구에서 유치원 봉고차를 기다렸다. 아파트 입구에 아파트 이름을 딴 마트가 있었는데, 그 마트 뒷문 옆에 오락기가 있었다. 오락기 5대가 번쩍번쩍 빛을 내며 유혹했다. 봉고차를 기다리는 짧은 시간, 나는 항상 오락기를 플레이했다.
기억에 남는 게임은 2개다. 하나는 턴테이블 원반이 달린 리듬게임이었다. 스테이지는 총 3개로, 마지막 스테이지에 가면 도저히 깰 수 없을 정도로 난이도가 높았다.
첫 번째 스테이지는 콜라캔과 사이다캔이 선글라스를 끼고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노래를 플레이했다. 귀를 강타하는 힙합 사운드에 절로 몸이 둥실거렸다. 두 번째 스테이지는 거북이가 기어다니는 노래를 플레이했다. 어떤 노래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2 스테이지 노래 중에 그게 가장 쉬워서 그 노래만 했던 것 같다.
대망의 세 번째 스테이지는 인조인간을 플레이했다. 스타크래프트 커맨드센터 초상화마냥 전선이 덕지덕지 달린 여자가 나오는 노래였다. 모든 아이들이 그 노래를 인조인간이라고 불렀다. 아파트 아이들 사이에서는 그 노래가 보스곡으로 통했다. 나는 그 노래를 수도 없이 도전했지만, 1분도 못 버티고 패배했다.
https://youtu.be/52Og03GvRAE?si=xTxIjnAY3f9wfc0T
다른 게임은 바로 ‘메탈슬러그 4’다. 메탈슬러그 시리즈는 SNK에서 제작한 런앤건 게임으로, 내 또래 남자라면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는 고전 명작 게임이다. 나는 꼭 ‘피오’를 골랐다. 빨간 머리에 캡모자를 쓰고 안경을 낀 여자 캐릭터였다. 어떤 점이 맘에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도트 그래픽으로 안경이 보였다면 나는 절대 피오를 고르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안경캐가 싫다.
레버를 오른쪽으로 기울여 무작정 돌진한다. 투-머씽건을 먹으면 더이상 앞길을 막을 적은 없다. 우두두 총을 쏘고 점프를 방방 뛰며 돌진하다가 마취총에 맞으면 원숭이로 변했다. 그러면 점프키를 눌러 천장에 매달려 적을 쏴 죽였다.
그때 내 실력으로 2 스테이지까지는 깰 수 있었지만, 그 뒤로는 동전을 수북이 쌓아서 도전해야만 깰 수 있었다. 만약 B키를 누르면 폭탄을 던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더 잘하지 않았을까.
아파트 아이들의 최대 관심사였던 오락기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코흘리개들의 동전 몇 개로는 도저히 전기세를 감당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가끔 오락실에 가면 옛날 생각에 메탈슬러그를 플레이하곤 하지만, 도저히 어릴 때 추운 아침 공기를 맞으며 꽁꽁 언 손으로 오락기 앞에 옹기종기 모여 플레이하던 메탈슬러그 4의 느낌은 나지 않는다. 아마 어떤 오락실에 가도 그 느낌은 평생 느끼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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