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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비단 Mar 13. 2024

이사와 메탈슬러그

오락기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보스 나왔다!”


 커다란 비행선이 우리 머리 위를 가렸다. 친구와 나는 긴장된 표정으로 비행선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비행선은 화면을 쭉 넘어가더니, 자리를 잡고 우뚝 멈췄다. 곧 수많은 미사일이 발사되었다.


 “점프해! 점프! 아!”


 우리는 마지막 단말마를 외치고 나가떨어졌다. 화면 중앙에 커다란 숫자가 뜨며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나는 오기가 생겨 백 원짜리 동전 하나를 구멍에 밀어 넣었다.




 일곱 살 때 나는 옆동네 아파트로 이사했다. 처음에는 동과 호수를 외우는 게 힘들었다. 입구에 서서 빌라의 두 배는 되어 보이는 커다란 건물들을 멍하니 올려다봤다. 우리 집은 대체 어디인가. 건물이 하나뿐인 빌라에서 살다가, 건물이 셀 수도 없이 많은(어린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아파트에 오니 모든 게 낯설었다.


 유치원은 원래 다니던 곳에 계속 다녔다. 덕분에 나는 몇 개월 동안 장거리 통학을 했다. 아침에 아파트 입구에서 유치원 봉고차를 기다렸다. 아파트 입구에 아파트 이름을 딴 마트가 있었는데, 그 마트 뒷문 옆에 오락기가 있었다. 오락기 5대가 번쩍번쩍 빛을 내며 유혹했다. 봉고차를 기다리는 짧은 시간, 나는 항상 오락기를 플레이했다.


이젠 길거리 오락기가 보이지 않는다.




 기억에 남는 게임은 2개다. 하나는 턴테이블 원반이 달린 리듬게임이었다. 스테이지는 총 3개로, 마지막 스테이지에 가면 도저히 깰 수 없을 정도로 난이도가 높았다.


 첫 번째 스테이지는 콜라캔과 사이다캔이 선글라스를 끼고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노래를 플레이했다. 귀를 강타하는 힙합 사운드에 절로 몸이 둥실거렸다. 두 번째 스테이지는 거북이가 기어다니는 노래를 플레이했다. 어떤 노래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2 스테이지 노래 중에 그게 가장 쉬워서 그 노래만 했던 것 같다.


 대망의 세 번째 스테이지는 인조인간을 플레이했다. 스타크래프트 커맨드센터 초상화마냥 전선이 덕지덕지 달린 여자가 나오는 노래였다. 모든 아이들이 그 노래를 인조인간이라고 불렀다. 아파트 아이들 사이에서는 그 노래가 보스곡으로 통했다. 나는 그 노래를 수도 없이 도전했지만, 1분도 못 버티고 패배했다.


https://youtu.be/52Og03GvRAE?si=xTxIjnAY3f9wfc0T

'리듬게임 인조인간'이라고 검색하니깐 나왔다. 이거 맞는 것 같다




 다른 게임은 바로 ‘메탈슬러그 4’다. 메탈슬러그 시리즈는 SNK에서 제작한 런앤건 게임으로, 내 또래 남자라면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는 고전 명작 게임이다. 나는 꼭 ‘피오’를 골랐다. 빨간 머리에 캡모자를 쓰고 안경을 낀 여자 캐릭터였다. 어떤 점이 맘에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도트 그래픽으로 안경이 보였다면 나는 절대 피오를 고르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안경캐가 싫다.


'메탈슬러그 4'는 메탈슬러그 시리즈 중 가장 망작으로 평가받는다.


 레버를 오른쪽으로 기울여 무작정 돌진한다. 투-머씽건을 먹으면 더이상 앞길을 막을 적은 없다. 우두두 총을 쏘고 점프를 방방 뛰며 돌진하다가 마취총에 맞으면 원숭이로 변했다. 그러면 점프키를 눌러 천장에 매달려 적을 쏴 죽였다.


 그때 내 실력으로 2 스테이지까지는 깰 수 있었지만, 그 뒤로는 동전을 수북이 쌓아서 도전해야만 깰 수 있었다. 만약 B키를 누르면 폭탄을 던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더 잘하지 않았을까.




 아파트 아이들의 최대 관심사였던 오락기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코흘리개들의 동전 몇 개로는 도저히 전기세를 감당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가끔 오락실에 가면 옛날 생각에 메탈슬러그를 플레이하곤 하지만, 도저히 어릴 때 추운 아침 공기를 맞으며 꽁꽁 언 손으로 오락기 앞에 옹기종기 모여 플레이하던 메탈슬러그 4의 느낌은 나지 않는다. 아마 어떤 오락실에 가도 그 느낌은 평생 느끼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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