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이 농작물’ 유통 전용 B2B 플랫폼
못생겼다는 이유로 팔리지 않던 식자재들을 구매하거나 그것들을 활용해 새로운 식품으로 탄생시키는 것을 ‘푸드 리퍼브(Food Refurb)’라고 합니다. 푸드 리퍼브는 현재 전세계적인 식품 트렌드로, 방대한 음식물 쓰레기에 의한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은 소비자들이 주목하고 있으며 최근 국내소비자들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이와 같이 푸드 리퍼브가 높은 관심을 받게 된 데에는 기업들의 마케팅 캠페인도 큰 몫을 하였는데요. 일례로, 2014년 프랑스의 슈퍼마켓 체인 인터마르셰(Intermarche)는 푸드 리퍼브 캠페인을 실시했고 이는 푸드 리퍼브가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데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인터마르셰는 “못생긴 당근, 수프에 들어가면 상관없잖아? (Ugly Carrot, In a Soup Who Cares?)” 라는 문구를 담은 포스터를 제작해 프랑스 국민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습니다. 이후 푸드 리퍼브 캠페인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고 북미 지역까지 빠른 속도로 퍼졌습니다. 한편 미국에선 이미 대형 유통회사 월마트(WalMart), 크로거(Kroger’s)도 못난이 농산물을 일반 농산물보다 30~50%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글에서 소개한 ‘국내1등 감자기업 록야’를 기억하시겠지요? 국내 감자농가들의 골칫거리였던 못난이 감자를 모아 유통하는 성공한 청년 스타트업의 이야기였습니다. 오늘은 못난이 야채와 과일을 가공해 유통하는 해외 스타트업을 만나볼까 합니다. 바로 풀 하베스트(Full Harvest)입니다.
풀 하베스트의 창업가 크리스틴 모슬리(Christine Moseley)는 유기농 주스 회사인 오가닉 애비뉴(Organic Avenue)의 사업 개발 책임자였습니다. 오가닉 애비뉴는 고품질의 신선한 과일과 채소 주스로 유명했지만, 높은 매입 가격으로 원가 역시 비싼 편이어서 유기농 주스의 판매가는 개당 10달러(한화 약 1만원)를 넘기 일쑤였습니다. 이를 지켜본 모슬리는 한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어차피 믹서기에 갈릴 과일인데, 식료품점에 진열된 상품처럼 매끄럽고 예쁜 상품일 필요가 있을까?’ 이러한 마음 속 질문을 품고 오가닉 애비뉴에서의 경력을 쌓는 동안, 그녀는 유기농 식품을 보다 저렴한 가격에 확보할 수는 없는지 항상 고민하곤 했습니다.
어느 날 모슬리는 로메인 상추 농장에 출장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녀는 상태가 온전한 상추를 제외하고, 나머지 다른 작물들이 모두 버려지는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농부들은 소비자들이 상처가 있거나 크기가 작은 못난이 상품을 구매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보관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모슬리가 보기에 이는 로메인 농작물만 낭비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곰곰이 살펴보면, 로메인 상추가 생산되기까지 사용되었던 물, 토양, 살충제, 농부의 노동력 등 여러 자원들도 한꺼번에 버려지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모슬리는 바로 이점에 착안해 못난이 농산물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15년 그녀는 샌프란시스코에 풀 하베스트(Full Harvest)를 설립하였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풀 하베스트(Full harvest)는 현재 못생긴 과일과 채소를 식료품 제조업자에게 연결해주는 B2B 사업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농장과 업체들을 연결해주는 플랫폼을 구축해 못생긴 농산물을 유통하고 있는 것이지요. B2B 플랫폼인 만큼 대량 구매 식품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풀 하베스트의 플랫폼과 계약할 수 있는 농장은 야채 농장의 경우 최소 1,000에이커(4,046m2, 1,224,000평) 이상, 과일 농장의 경우 100에이커(404.6m2, 122,400평) 이상의 규모를 갖춰야 합니다. 또한 자체적인 품질 기준을 만들어 못난이 작물들의 맛과 영양분에 대한 관리 감독도 수행하고 있습니다.
풀 하베스트의 비즈니스 모델은 농민 입장에서는 못난이 농작물을 판매해 새로운 수익을 창출해낼 수 있으며, 식음료 생산 업체는 저렴한 가격에 음식 재료를 공급받을 수 있는 윈윈(Win-Win)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농민(생산자)이 보유한 못난이 식품을 판매 상품에 등록하면, 기업(구매자)이 해당 상품을 구매하면 되는 간편한 온라인 쇼핑몰 형태를 구현해낸 것입니다.
풀 하베스트는 설립 후 2년뒤인 2017년 4월 7개 투자 기관으로부터 ‘Seed Round’, 즉 시드 머니 200만 달러(한화 약 22억원)를 펀딩 받은 뒤 2018년 추가로 100만 달러(한화 약 11억원)를 받으며 본격적인 출발을 알렸습니다. 같은 해 8월에는 BBG벤처, 샌드박스 인더스트리(Sandbox Industries), 와이어프레임벤처(WireFrame Ventures)등 9개 기관으로부터 850만 달러(한화 약 92억원) 규모의 Series A 펀딩에 성공하며 설립 이후 현재까지 약 1,150만 달러(한화 약 125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습니다. 오늘날 풀 하베스트의 연매출은 650만 달러(한화 약 70억원)로 추정되고 있으며, 2018년 기준 1,000만~5,000만 달러(한화 약 540억원)수준의 가치를 지닌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물리적으로 농산물을 다루기보다는,
트럭들과 구매자(기업)를 조율합니다.”
"We don’t physically touch the produce,
but we coordinate the trucks and buyers.”
-Christine Moseley-
혹시 여러분은 지난해 12월, SBS ‘맛남의 광장’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백종원 더본 코리아 대표가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에게 강원도 못난이 감자 판매를 부탁하면서 이마트에서 판매된 에피소드를 알고 계신가요? 이마트에 진열된 못난이 감자는 900g당 780원 가격에 판매되기 시작했고, 사흘 만에 30톤 물량이 완판 되었던 그 진기록은 푸드 리퍼브의 전형적인 사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시장에서 재고 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떨이 상품으로 전락했던 못난이 농작물이 점차 합리적인 소비 상품으로 자리잡은 것입니다. 못난이 감자 완판 이후, 못난이 상품의 가능성을 내다 본 이마트는 못난이 왕고구마, 못난이 왕양파, 못난이 홍로 사과 등 못난이 상품을 확대해 소비자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올해 4월, 국내 온라인 쇼핑몰 11번가는 못난이 농산물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브랜드 ‘어글리러블리(Ugly Lovely)’를 런칭했습니다. 11번가는 상품의 질에는 문제 없지만 외관상 못생겼다는 이유로 출하되지 못하는 제철 농산물을 20~30%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으며, 수산물로 품목을 확대할 예정입니다. 어글리 러블리의 가장 큰 특징은 제품 상세 페이지에 농산물의 흠집과 갈변 이유, 그리고 실제 상태를 대놓고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일부러 상처 난 사진을 공개하고 상처가 어떻게 생겼는지, 왜 못생기게 자랐는지 설명하기 위함입니다.
푸드 리퍼브의 또 다른 좋은 사례가 있습니다. 바로 ‘라스트 오더(Last Order)’의 이야기입니다. 이 서비스는 가까운 음식점, 편의점, 마트, 백화점 등의 유통기한 임박 상품과 마감 세일을 알려주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기반으로 제공됩니다. 동네 식당, 카페, 대형마트, 백화점, 편의점 등 식품을 구매할 수 있는 경로가 다양해지면서 직장생활 때문에 음식 조리 시간이 부족한 1인 가구로부터 특히 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라스트 오더 이용자 수는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이후 2.5배, 판매량은 6배, 다운로드 건수는 4배나 증가했다고 합니다. 라스트오더의 문치웅 사업운영총괄은 “마감 세일로 구매하는 음식이 정가 상품에 비해 맛이 떨어진다는 편견이 있었는데 실제 구매해 보니 맛과 질의 차이가 없어서 재 구매로 이어지고 마감 세일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자리 잡았다”고 언급하며, 푸드 리퍼브 트렌드가 코로나 시대와 맞물려 합리적인 소비 트렌드로 자리잡을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풀하베스트와 다양한 국내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식재료 재고 처리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은 대체로 긍정적이며 그들의 구매 행동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식재료 재고를 활용할 수 있다면 식재료 자체의 낭비뿐만 아니라,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자원 소모 역시, 더 이상 낭비로 남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음식물 낭비를 줄이고 농장의 자립을 돕는다는 목표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가운데,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 가능한 못난이 농산물의 가치는 앞으로도 많은 소비자들의 관심을 받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Where? 미국, 샌프란시스코
When? 2015년
What? 못난이 농산물 B2B 온라인 유통 플랫폼
Who? 크리스틴 모슬리 (Christine Moseley)
Why? 못난이 작물 활용으로 음식물 쓰레기를 절감하면서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How? 대형 과일, 야채 농장과 식료품 업체를 연결해주는 B2B 플랫폼 구축
“과일 외모지상주의 타파”…못생겨도 맛은 좋은 ‘어글리 러블리’아시나요, 글로벌이코노미, 2020/08/05
11번가 십일절 축제, 지역농가와 함께 라이브방송으로, 라이선스뉴스, 2020/11/05
마감할인 앱 라스트오더 오경석 대표, 환경부장관 표창, 플래텀, 2020/06/24
못 생긴 농산물을 판매해 대박을 터트린 회사 '풀 하베스트', BIZION, 2020/03/23
버려진 못생긴 과일·채소를 금맥으로, 벤처스퀘어, 2017/04/17
'훼손된 못생김' 맛남의 저렴이 푸드 리퍼브, 이슈에디코, 2019/12/17
2019 AgFunder AgriFood Tech Innovation Awards Winners Announced, AgFunderNews, 2019/03/21
Fighting Food Waste, The Digital Marketplace Way, PSMNTS, 2019/08/28
Fighting food waste, Full Harvest raises $8.5m to bring excess produce to commercial buyers, TechCrunch, 2018/08/15
Fixing the Covid Food Disaster Can Slash Climate Emissions, Bloomberh Green, 2020/08/13
Full Harvest, Crunchbase
Full Harvest Raises $8.5m Series A for Food Waste Marketplace, AgFunderNews, 2018/08/15
How Full Harvest is Using Technology to Connect the Dots in the B2B Food Waste Space, AFN, 2019/06/04
We're leaving so mch food on farms to just rot in the fields, FastCompany, 2019/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