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엔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난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몸이 약해져서 그런지 몰라도 최근에는 6시 기상이 다소 힘들다. 쉽지 않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한 6시 알람 소리에 맞춰 일어날까, 더 잘까, 어쩌지, 가까스로 일어난다. 예전 프랑스계 화장품회사에 재직할 때도 6시에 일어나서 7시면 코엑스몰에 주차를 했었다. 남들이 깨기도 전에 코엑스몰에 있는 맥도날드에서 이른바 모닝 커피를 마셨다. 그땐 6시 기상이 지금보다 덜 힘들었다. 뭐 대충 10~20년은 더 늙었으니 당연하지. 그렇게 대략 10년을 보냈었다.
아내가 깨지 않도록 안방 문을 조심스럽게 닫은 후(집이 좁아서) 샤워를 한다. 아이 방 문은 닫지 않는다. 깨워도깨워도 안 일어나는 애가 샤워 소리에 깰 리 만무하다. 굳이 아침에 샤워할 필요는 없는데 소가 핥은 듯한 밤송이 같은 머리로 나갈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배가 나온 후로는 쪼그려 앉아 머리 감는 게 너무 힘들다. 숨이 막힌다. 허리를 숙이고 머리를 감는 것 역시 만만치 않다. 굳이 머리 감는 데 목숨을 걸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고민 끝에 샤워를 하기로 한 것이다. (지금 고백하는 거지만 사실 발톱 깎을 때가 가장 힘들다. 말도 못한다.)
애경 2080 치약으로 양치 먼저 하고, 도브 샤워 워시로 전신을 씻고, 엘지 리엔 한방 샴푸로 머리를 감고, SNP 폼클렌징으로(전에는 시세이도 센카만 썼지만 요즘 상황에서는 도저히 못쓰겠다.) 세수를 하면 대략 15분 정도 걸린다. 아침 시간 아끼려고 면도는 전날 저녁에 한다. 이 순서는 늘 똑같다. 마찬가지로 전날 자기 전에 미리 정리해 둔 Targus 백팩을 메고 집을 나서면 7시 30분 전에 선릉역에 있는, 삼성동 소재 외국계 회사를 9년 전에 관두고 옮긴, 사무실 주차장에 도착한다. 그 시간 테헤란로는 지나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마치 내가 주인처럼 느껴진다. 여름엔 그 시간에도 날이 밝아서 덜 그렇지만 겨울엔 아침이 늦게 와서 채 어둠이 가시기 전이라 더욱 그렇다. 그 기분을, 카타르시스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매일 그 시간에 가능한 한 도착한다.
주차 후 사무실 인근 투썸플레이스(외국어표기법에 의하면 ‘투썸'이 아니라 ‘투섬'이 맞다. 그래서 난 늘 ‘투썸'이 거슬린다. 고유명사를 만들 때는 제발 신경좀 썼으면 좋겠다.)로 이동, 테헤란로에서 이른 시간에 모닝 커피를 마신다. 몇분 동안이지만 세상이 내 것 같다. 이 역시 강한 카타르시스를 준다.
오랫동안 그 시간에 투썸플레이스 제일 구석진, 늘 같은 자리에서 독서를 하는 아저씨가 있었는데 언제부터 보이질 않는다. 이른 시간에 아무도 없는 카페에서 매일 한결같이 독서를 하던 그 아저씨는 어디로 갔을까? 책 속으로 들어갔을까, 책을 찾아 날아갔을까? 참 멋진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안 보여서 아쉽다. 사실 8시 정도만 되면 너무 시끄러워지기 때문에 독서할 분위기는 아니다.
술을 입에도 안 된 지 몇 달은 된 것 같은데 오늘 유난히 술이 땡겼다. 담배를 한 대도 안 핀 지(간접흡연은 빼고) 최소 5년은 지났다. 어느 날 갑자기 담배가 싫어졌고 하루아침에 담배를 끊었다. 요즘 술도 그렇다. 전혀 땡기지 않는다. 땡기지 않으니 마시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아시다시피 좀 땡겼단 뜻이다.
퇴근 후 집에 오니 아이는 학원에 가서 없고, 집사람도 없고(어디 갔는지 모름), 밥은 먹어야겠고, 홀로 축하주를 마시기로 했다. 맥북 프로(프로가 중요하다. 맥북이나 맥북에어가 아닌 맥북 프로다.)를 책상으로 옮기고(난 매일 맥북 프로를 가지고 다니기 때문에 집에 오면 다시 책상에 풀어야 함.)옷을 갈아 입고 홈플러스 중계점을 향해 걸었다. 집에서 5분 거리다. 대목인데도 사람이 없다. 이커머스로 대세가 바뀐 지 오래다. 모르긴 해도 오프라인 할인점 명줄은 얼마 남지 않았으리라. 이태리산 와인 한 병, 문배술 한 병(23도), 화랑(청주) 한 병, 맥주 네 캔을 샀다(만 원에 네 캔. 내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Blue Moon 두 캔, 내가 아주아주 좋아하는 1664 Blanc 두 캔) 참고로 난 국산 맥주는 절대 안 마신다. 차라리 오줌을 마시지. 앗! 오줌을 실제 마셔본 적 없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우럭회를 주문했다. 아파트 상가 횟집인데 맛있고 싸다. 금세 배달이 왔다. 사장님이 늘 반겨주신다. 주문을 자주 했더니 서비스를 조금씩 넣어주신다. 오늘 서비스는 전어! 가을이 오는구나. 지난번엔 멍게를 서비스로 주셨다.
전어, 이 얼마나 예의 바른 어류인가. '전 생선입니다.'
와인을 마실까!
아님 문배술!(홈플러스에서 돌아온 후 즉시 냉동실에 넣어서 冬死시킴)
화랑도 좋은데
1664 블랑?
아니야 블루문?
갈등, 고민 작렬 끝에 문배주를 땄다. 난 국산 맥주뿐 아니라 사실 소주도 안 마신다. 참이슬, 처음처럼. 웩~~
상추를 왼손에 놓고 우럭회 두 점을 초장에 찍어 얹었다. 서비스로 온, 예의 바르고 운 나쁜 전엇살에 된장을 바르고(예의 바르고, 된장 바르고 나름 rhyme임) 덮어 얹었다. 마늘, 고추냉이(일명 와사비)도 올렸다. 다보탑보다 위대한 건축물이 되었다. 디자인 미학이 아주 뛰어난(내 생각!) 문배술 병을 옆으로 뉘어 술을 따랐다. 투명한 술이 자르르 또르르 샤르르 잔 속으로 흐른다. 어찌나 투명한지 눈이 부실 지경이다. 내가 아는 술병 중에 미학적으로 가장 완성도가 높다. 물론 내 취향이지만. 캬~~ 마시기도 전에 전율이 흐른다. 쌈 세 번에 문배술 석 잔을 게눈 감추듯 없앤다. 만약 옆에 라스콜 니코프가 있었더라면 날 도끼로 찍었을지도 모른다. 너무 빨리 먹는다고. 도스토예프스키에게 감사한 마음이다.(시베리아로 유배를 보내줘서) 슬슬 술기운이 파리처럼 몸을 간지럽힌다.
오늘 드디어 조국 법무부장관이 탄생했다. 약 한 달 동안 내가 후보자였던 것 같다. 온 신경이 거기에 쏠려 있었다. 정의는 곧 상식이며 기준이고 잣대다. 세상이(특히 검찰, 법원이) 정의로워야 하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언젠가 피해자 혹은 가해자 또는 범법자가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게 누구든 공평무사한 정의로운 법과 국가와 사회의 심판과 도움 그리고 위로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기억이 없는데 유시민 작가가 쓴 책에서 이와 유사한 글을 본 것 같다. 살짝 카피한 것 자백!
의견이 다를 수 있지만 현 시점에서 누구보다 정의로운 분이 법무부장관이 됐으니 과거보다 조금 더 정의롭게 바뀌지 않을까 싶다. 전술(前述)한 내 평범한 일상이 흔들리지 않고 앞으로도 그대로 이어지는 나라에 살고 싶다. 뭐 대단한 욕심은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술이 땡겼고, 혼자 축하주를 때렸다.
이 짧은 문장을 쓰고 싶어서 주저리주저리 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