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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온 Oct 19. 2018

'영알못'이 국제대학원에 입학하기

영어도 못하면서 국제대학원에 입학을 시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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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runch.co.kr/@big-thinking/9

    대학교 3학년 때 다양한 수업을 통해 '미국'이란 나라에 관심을 가졌다. 특히 에너지 지정학 차원에서 미국이란 나라는 빠져서는 아니 빠질 수도 없는 나라였다. 그래서 대학교에서 일본을 공부한 것처럼 대학원에서는 미국을 공부하고 싶었고, 대학교 4학년이 시작되면서 본격적으로 내가 가고 싶은 대학원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엄청난 문제가 있었다. 대부분 국제대학원이었고, 국제대학원의 수업은 거의 '영어'였다.



'영어' English.....


    내가 공부하고 싶은 나라는 미국이고 그 나라의 언어는 '영어'다. 그러나 4년간 '일어일본학'을 전공한 내가 영어를 할 수 있을 리는 없었다. 사실 핑계라면 핑계다. 대학원에서 미국을 공부하기로 결심한 학생이 그전부터 영어공부를 시작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대학교 4년간 '일단 부딪혀 보자!'는 마인드로 살아왔기 때문에 당시에도 똑같이 행동했다. 대학교 3학년 겨울방학이 시작되면서 우리나라 내에 '미국학'을 다루는 웬만한 대학원은 전부 알아보았다. 그리고 내가 관심 있는 '에너지 지정학'과 관련된 연구를 하는 교수님의 존재 유무로 1차 필터링을 한 후, 교수님의 최신 논문 등으로 2차 필터링을 했다. (최신 논문을 지속적으로 내는 교수님일수록 관련 분야 연구를 꾸준히 하고 계시다는 의미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예외인 경우도 있다.)


    그렇게 1차, 2차에 걸쳐 대학원 리스트를 정리한 후, 이제 교수님들께 메일을 보냈다. 간단한 소개, 관심 분야 그리고 지원 동기 등을 적었다. 메일 마지막에는 항상 '교수님께서 괜찮으시다면 만나 뵙고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습니다.'라는 문장을 추가했다. 메일을 보내면 답장이 오는 비율은 사실 절반 이하라고 본다. 심지어 답장을 받더라도 친절하고 자세하게 답장 주시는 교수님은 극히 적은 게 사실이다.


    그렇게 교수님들을 향한 꾸준한 '구애(?)'를 하던 중 내가 가장 입학하고 싶은 대학원 교수님께 '한번 연구실로 찾아와요.'라는 답장이 왔다. 정말 기쁜 순간이었다. 답장으로 교수님의 일정을 확인한 후, 미팅 날짜를 잡았다.


    교수님 연구실에서 교수님과 미팅을 하면서 많은 걸 여쭙고 대답을 들었다. 그러나 마지막에 교수님께서는 국제대학원에 지원하는 건데 영어점수가 없는 게 좀 걸리고, 졸업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당연히 대학원 2년간 수업은 영어로 진행될 것이고, 시험도 영어로 봐야 하고 졸업할 때 일정 수준 이상의 영어점수를 제출해야 했다. 그래서 교수님께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반드시 졸업하겠다.'는 선언 아닌 선언을 했다.




    교수님과 미팅 후, 나는 시기에 맞춰 대학원 입학 원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교수님께 선언했듯이 영어공부를 해야 했다. 수능 이후로 영어 공부는 손을 놓았기 때문에 내 영어 실력은 정말 바닥이었다. 4년간 일본어만 공부한지라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 왔다. 무작정 영어학원을 다니기 시작했고, 최대한 실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발버둥을 쳤으나 쉽지 않았다. 그때 나에게 마치 '구세주'처럼 다가온 것이 있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나에게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아주 어렸을 때 본 '인어공주', '신데렐라', '라이언 킹' 이 정도였고 크게 관심 갖지 않았었다. 그러나 '겨울왕국'을 우연히 본 후,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대한 기존 생각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사실 같은 배경과 개성 있는 캐릭터들 그리고 계속 듣게 되는 BGM까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래서 계속 듣고 받아썼다. 누군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순전히 겨울왕국이 너무 좋아서 한 행동이었다.

    

    내가 일본어를 조금이라도 하게 된 이유도 같았다. 우연히 본 일본드라마 하나에 빠져서 10화 분량인 그 드라마를 100번 넘게 반복해서 보기만 했다. 10화 분량을 최소 100번 넘게 봤으니 총 1,000회가 넘는 분량을 본 셈이었고 어느 순간 귀가 틔였다. 귀가 틔였다고 말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말하는 능력은 학교 수업과 다양한 대외활동으로 커버할 수 있었다.


    영어도 일본어처럼 똑같이 시작했다. 그냥 겨울왕국 오디오와 영상을 활용해 계속 듣고 받아썼다. 그러다 보니 귀가 조금씩 열리는 걸 스스로 느꼈다. 그러나 일본어와 마찬가지로 귀가 조금 틔였다고 회화도 가능하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대학원 서류에 통과를 했고, 면접이 다가왔다. 면접은 이전에 찾아뵌 한국인 교수님 면접과 외국인 교수님 면접으로 나뉘어 있었다. 모두 1:1 면접이었기 때문에, 외국인 교수님 면접도 교수님 연구실에서 1:1로 진행됐다. 나는 겨울왕국으로 그나마 끌어올린 실력과 대본처럼 외워간 예상 질문 답변을 계속 머릿속으로 되새겼다. 한국인 교수님 면접을 마친 후, 외국인 교수님 연구실로 들어갔다. 정말 지금도 그 순간은 잊을 수 없다.


    외국인 교수님께서는 웃으며 인사를 한 후, 자기소개를 해보라고 하셨고 외워간 대로 대답을 했다. 그 뒤에는 지원동기, 관심분야 등 예상 질문에서 벗어나지 않은 내용들이라 정말 '기계'처럼 대답을 했다. 분위기상 면접이 거의 다 끝났다고 생각할 즈음에 교수님께서 말씀을 하셨다.


All classes will be delivered in English. I'm concerned whether you are eligible for this course.


    내 기억엔 이런 내용이었다. (사실 위의 영어도 올바른 문장이 아닐 수도 있다.) 남들 다 있는 영어 점수도 없이 입학해서 모든 수업을 이수하고 졸업까지 할 수 있겠는지 나에게 던진 의문이자 걱정이었다. 질문은 이해했지만 기계처럼 외운 답변만 쏟아내던 나는 길게 말할 자신도 없었고, 정말 딱 한마디만 했다.


'I will study hard as much as I can. So, please believe me.'


    이 말을 들은 교수님은 웃으시며 'OK' 이렇게 인사를 하셨고 면접은 끝이 났다. 교수님 연구실을 나오면서 불안하긴 했지만, 그래도 면접은 끝났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그로부터 얼마 후, 대학원 합격 소식을 받았고 한국인 교수님께서 직접 전화로 '축하한다. 졸업 꼭 잘 해야 한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지리학을 시작으로 대학교에서 일본과 국제정치학을 공부한 후, 대학원에서는 미국을 공부하게 됐다. 전혀 연관성이 없는 것 같지만, 결국 지리학에서 시작된 것이라 생각한다. 지역학도 지리학의 한 갈래이고, 국제정치도 결국 '지정학'과 연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대학원 합격 소식과 함께 나의 대학교 4년은 끝이 났고, 대학원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경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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