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통해 '에너지 지정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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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3학년이 되면서 일본 정치 / 일본 경제 / 일본 사회 과목뿐만 아니라, 정치학을 복수 전공하면서 '국제정치' 수업을 더욱 많이 들을 수 있었다. 국제정치 수업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내가 주로 들은 수업은 '분쟁', '에너지'와 관련한 것이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일본 정치 / 일본 경제 / 일본 사회 등을 다룰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국가가 어디인지 그리고 국제정치 수업에서도 많이 등장하는 국가가 어디인지를... 사실 정답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바로 '미국'이다.
대학교 3학년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내 인생에 처음으로 깊숙이 들어온 시기였다. 내가 관심 있는 모든 곳에 미국이 존재했다. 내 전공은 일본이란 나라를 공부하는 것임에도 그 속에는 미국이 꼭 등장했고 미국이 빠지면 절대 성립하지 않는 것들 투성이었다. 미국을 알아야만 했다.
여기서 미국과 일본의 관계를 대략 정리하려고 한다.
지금의 일본은 미국이 없었다면 현재의 경제력과 국가 경쟁력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세계 2차 대전은 미국이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 2발을 떨어트리면서 막을 내렸다. 당시에 미국과 일본은 전쟁에서 서로를 적으로 둔 사이였다. 그러나 2차 대전 이후 두 나라의 관계는 급격히 변한다. 2차 대전이 끝나면서 세계는 다시 총성 없는 전쟁으로 돌입한다. 바로 냉전이다.
미국 vs 소련
2차 대전 이후는 미국과 소련 중 누가 더 '자기편'을 많이 만들고 누가 더 오래 '체제 유지'를 하는지가 관건이었다. 미국이 '마셜 플랜'으로 2차 대전으로 폐허가 된 유럽을 지원해준 이유도 냉전이었고, 적대국이었던 일본을 지원해준 것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일본이 항복한 후 미국이 제일 먼저 한 일은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전범 기업'을 해체한 일이다. 전쟁 물자를 공급하고 간접적으로 미국에 피해를 준 것에 대한 조치이자 다시 일본이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중국 본토가 공산화되면서 미국의 전략에 차질이 생겼다. (당시 미국의 전략에는 중국 본토가 공산화될 것이라는 계산이 없었다는 후문이 있다) 그리고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미국은 해체했던 일본의 재벌을 다시 살리는 정책을 펼친다. 일본 재벌들의 생산력을 통해 한국전쟁에 필요한 물자를 공급하려는 조치였다. 동북아시아에서 일본을 미국의 전략적 기지로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제의 적은 오늘의 동료'라는 말이 이보다 더 어울릴 수 없었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에서 미국은 결국 승리했다. '자본주의'의 승리이자 '민주주의'의 승리였다. 소련의 몰락으로 많은 나라가 자본주의를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아시아 등지에서 민주화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경제는 끊임없이 성장했고, 사람들 마음속에는 절대 세계 전쟁은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자리 잡았다.
그러나 미국은 내부적으로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고민은 무엇이었을까?
외부의 적이 없다! 새로운 적을 만들어야 한다!
2차 대전 시기에는 일본이 미국의 적이었고, 냉전 시기에는 소련과 그의 동맹국들이 미국의 적이었다. 그러나 냉전이 끝나면서 공식적인 미국의 적국이 지구 상에서 사라졌다. 북한, 중국, 러시아를 언급할 수 있으나, 사실 북한은 미국의 적국으로서 규모나 국제적 영향력이 미미한 국가이다.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는 내부가 아주 혼란스러운 상황이었고, 두 국가 모두 지금처럼 성장하기 전이었다.
미국은 고민에 빠졌고, 새로운 전략을 짜야만 했다. 그 결과 눈을 돌린 곳이 '중동'이었다. 때마침 세계적으로 경제 호황이 지속되면서 '에너지 수급'이 중요한 상황이었고 미국 내부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냉전 이후 '세계 평화', '인권 문제' 등이 쟁점이 된 상황인데 중동의 이라크 등에서 대량 학살과 같은 사건 / 사고가 발생했다.
미국은 대외적으로 '중동 정세 안정화'라고 내세웠지만, 내부적으로는 '미국 국내로 에너지의 안정적 수급'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동맹국들과 함께 중동에 군대를 파견했다. 이런 흐름이 2003년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전쟁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세계 2차 대전 이후 미국의 이런 모습은 일어일본학을 전공하던 나를 자연스럽게 '에너지 지정학', '에너지 패권'에 관심을 가지게 만들었다. 이전에 나에게 미국은 단지 세계 최강국이라는 이미지와 할리우드, 영어, 아이비리그 대학교 이런 키워드들을 연상시키는 나라였다. 그러나 일본지역학과 국제정치를 공부하면서 미국은 나에게 새롭게 다가왔고, 에너지 자원(석유, 천연가스 등)을 둘러싼 지정학에 관심을 두게 만들었다. 또한, 대학원에 진학하여 미국을 더 깊이 공부하고 싶다는 결심이 서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