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일가스의 등장으로 뒤바뀐 산유국들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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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에 입학한 후, 나는 학부 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미국의 대외전략에 집중하기로 했다. 특히 '에너지 자원'을 두고 미국과 산유국 간의 경쟁 그리고 그로 인한 세계정세의 변화를 바라보기로 했다. 당시에 미국의 셰일가스 개발로 인해 에너지 지정학이 크게 바뀌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비동맹국 중 산유국들을 큰 단위로 나누면 다음과 같다. (필자의 주관적인 기준으로 나눈 것임을 참고 바란다.)
러시아, 중동, 남아메리카
1) 러시아는 2000년대에 진입하며 흔히 알려진 '브릭스(BRICs)' 국가로 꼽히며 고도성장을 하기 시작했다. 막대한 지하자원, 특히 대량의 천연가스를 기반으로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리고 러시아는 긴 파이프 라인을 통해 우크라이나 - 동유럽 - 서유럽으로 천연가스를 공급하고 있었는데, 이를 활용해 천연가스 수급량을 조절하여 서유럽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자원으로 경쟁국들을 견제하고 내부적으로는 경제를 성장시켜 내정을 안정화하는 일거양득 효과를 보고 있었다.
2) 중동은 이미 오래전부터 막대한 양의 석유자원으로 세계 경제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고, '오펙(OPEC)'을 만들어 주요 산유국들의 생산량을 조절하고 있었다. 2003년 미국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전쟁도 말이 '전쟁'이지 사실은 지하자원을 목적으로 한 '침략', '침탈'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 수도 있었다. 중동은 미국이 탐내는 풍부한 지하자원 덕에 높은 경제성장률을 유지할 수 있었고, 사막에 두바이 같은 거대한 도시를 건설할 수 있었다.
3) 남아메리카에 있는 주요 산유국들도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 오일 머니를 바탕으로 높은 경제성장률을 유지할 수 있었다. 또한, 북미대륙과 멀지 않은 지역이라 미국의 입김이 더 크다고 볼 수 있으나, 베네수엘라를 대표로 하여 남아메리카의 산유국들은 미국에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남아메리카 국가지만 세계 5위 산유국이었던 베네수엘라는 오펙의 회원국으로서 세계 자원 생산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사실 위의 지역들 말고도 풍부한 지하자원을 가진 나라들은 더 많다. 그렇지만 당시에는 위의 세 지역이 세계 경제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 나는 그 이유가 궁금하여 다양한 뉴스와 서적을 통해 답을 찾기로 했고, 비슷한 내용이지만 두 가지 이유로 결론을 내렸다.
독재 국가와 왕정 국가
러시아, 중동 그리고 남아메리카의 산유국들은 모두 독재 국가와 왕정 국가 중 하나에 반드시 속했다. 러시아와 남아메리카 모두 푸틴 대통령을 비롯한 독재자들이 국가의 모든 기관을 통제하고 있었다. 중동은 예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왕실 가문이 국가를 통솔하고 있었다.
이는 다른 산유국들과 굉장히 다른 결과를 만들 수 있다. 땅 깊숙이 묻혀있는 지하자원을 채굴하는 데는 막대한 비용도 들지만, 그로 인한 환경파괴 등 사회적 이슈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독재 국가나 왕정 국가가 아니라면, 자원 채굴로 인한 환경오염 이슈가 발생하면 국내 여론이 안 좋아져 더는 정책을 진행하기가 쉽지 않다. 민주주의의 순기능이 작동하는 것이다. 야당, 시민단체 그리고 언론 등이 정부를 지속해서 감시하여 자원 채굴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채굴 과정에 문제가 없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그러나 독재 국가나 왕정 국가의 경우 모든 국가 기관을 통제하고 있으므로, 강하게 정책을 밀어붙일 수 있었다. 환경오염보다는 경제 성장이 그들에게는 중요했다. 반발 여론은 산유량을 끌어올려 돈을 벌면 차츰 수그러드는 모양이었다.
그들의 이런 모습을 미국이 절대 가만히 보고 있을 리 없었다. 위 지역들이 강제로 산유량을 조절하여 미국의 동맹국들에 위협을 주고 있었고, 더 나아가서는 미국 내 에너지 수급에도 영향을 줄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10년간 지속해왔기 때문에 더 이상의 군사행동은 국내 여론을 악화시킬뿐더러 재정 상황도 녹록지 않았다.
그래서 미국은 미국 안에 있는 에너지 자원 개발을 통해 그들을 견제하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것이 '셰일가스'이다. 미국은 세계 최초로 셰일가스 채굴 기술인 '프랙킹(Fracking)' 기술을 상용화시켰다.
그리고 미국발 '셰일 혁명'이 시작됐다.
혹자는 혁명이란 단어까지 써가며 셰일가스 개발을 띄울 필요 있느냐 의견을 전하기도 하지만, 나는 미국의 셰일가스 개발이 국제 정세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충분히 어울리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세 지역에 이전과 완전히 다른 상황을 안겨주었다.
미국의 셰일가스 개발 전까지 중동에서 생성된 석유와 천연가스 상당 부분은 미국으로 수출됐다. 에너지 자원은 국가 안보와 직결된다. 그래서 미국이 수에즈 운하와 홍해 주변에 '안정적인 에너지 자원 운반'을 위해 군사기지를 설치한 것이다. 그러나 셰일가스로 인해 모든 것이 변했다. 미국은 이전처럼 중동의 석유와 천연가스를 구매하지 않았고, 중동의 산유국들은 국가 재정 피해가 불가피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런 중동에 주요 유럽 국가들이 제안했다. 미국이 셰일가스 개발로 인해 줄어든 수출물량을 서유럽 국가들이 구매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위에서 언급했지만, 러시아는 천연가스 파이프 라인을 통해 서유럽 국가들을 협박(?)하고 있었다. 그래서 서유럽은 항상 에너지 수급이 불안정한 상황이었다. 중동은 미국에 팔지 못한 잉여물량을 서유럽에 팔아 국가 재정을 유지할 수 있었고, 서유럽은 러시아의 협박에서 멀어질 수 있었다.
러시아는 당연히 큰 타격을 입었다. 서유럽이 중동산 자원을 수입하기 시작하면서 지리적으로 가까운 단골 손님을 잃은 것이다. 이는 러시아 국가 재정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남아메리카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미국은 셰일가스를 개발하면서, 세계 에너지 지정학을 바꾸어 버렸고 주요 산유국의 국가 재정이 흔들리게 했다. 개인적으로 미국은 세 지역의 약점을 꿰뚫고 있었다고 본다.
러시아, 중동 그리고 남아메리카는 독재 국가 또는 왕정 국가라고 앞서 언급을 했다. 이런 체제의 장점은 강력한 정책 추진이다. 이들은 에너지 자원 수출 전략으로 국가 재정의 60% 이상을 채우고 있었다. 미국은 이 점을 간파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셰일가스 개발로 세계적으로 에너지 공급이 늘면 당연히 에너지 가격은 내려갈 것이고 세 지역은 경제적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경제적 타격은 국내 정치 타격으로 이어진다. 보통 독재 국가와 왕정 국가의 경우 표면적으로는 다당제라고 말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일당 체제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경제 악화로 인한 비난 여론은 하나의 정당이 말 그대로 '독박'을 써야 한다. 체제 불안정성이 증가하는 것이다.
미국의 전략은 맞아떨어졌다. 셰일가스로 인해 에너지 가격이 내려갔고, 러시아와 중동은 국가 재정에서 에너지 수출 비중을 점차 줄여 수출 품목 다각화 정책을 시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러시아와 중동보다 사회기반이 열악했던 남아메리카의 주요 산유국들은 지금까지 셰일혁명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학원 1년(1기, 2기) 동안 미국의 대외 전략을 통해 '에너지 지정학' 변환은 무척 재미있었고 흥미로웠다. 미국이란 나라가 총 한 발 쏘지 않고, 경쟁국들을 견제하는 모습이 놀랍기도 했으나 한편으로는 두려움도 느껴지는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