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메가 드빌
돌이켜보면 변변한 시계를 가진 적이 없었다. 기억 속에 있는 내 첫 시계는 입대 전에 훈련소 앞에서 산 정체불명의 전자시계였는데 6주 간의 훈련소 생활이 끝나기도 전에 수명을 다하고 말았다.
당시에도 좋은 시계들은 있었다. 스위스 시계를 대표하는 롤렉스와 오메가는 그 명성만 알고 있었을 뿐 감히 가지고 싶다는 생각도 하지 못할 존재였다. 현실적으로 학생들이 소유할 수 있는 시계 중에서는 카시오가 그나마 고급품이었는데 지샥이 당시에도 있었는지까지는 기억하지 못하겠다. 일본제 수입품인 카시오의 대용품으로는 돌핀스라는 국산 브랜드가 있었다. 시계를 미처 준비하지 못한 젊은이들은 훈련소 앞의 가판에서 카시오와 철자가 살짝 다른 시계를 하나씩 집어 들었다. 시계 가격은 훈련소의 정문이 가까워질수록 비싸졌는데 위병소 바로 앞의 짝퉁 시계는 돌핀스의 가격과 별 차이가 나지 않았다.
시계다운 시계를 구입한 것은 제대 후 일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을 때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시계에는 큰 관심이 없어 그럴듯한 시계를 차고 싶다거나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어머니의 환갑 선물로 무언가를 사야 했고 그 무언가가 우연히 시계가 되었을 뿐이다. 백화점의 시계 매장에 들어가서 시계를 들고나오까지의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가 살 수 있는 금액대의 시계가 많지 않았고 여러 시계를 비교해가며 선택할 안목도 부족했다.
이것이 거의 삼십 년 전의 일이다. 어머니는 차던 시계를 벗어두고 자신의 노년을 이 시계와 함께 했다. 큰 굴곡이 없고 대단한 기쁨도 없는 잔잔한 시간이 이어졌다. 마지막 몇 년, 어머니는 고요한 시간 속에서 길을 잃었다. 시침이 분침을 앞지르고 초침이 분침보다 뒤처지는 시간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시계는 돌고 돌아 얼마 전 나에게 왔다. 자잘한 상처들이 나 있는 시계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시계라는 것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이 무렵이다. 시계를 멈춘 상태 그대로 서랍에 처박아두고 싶지는 않았다. 이걸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을까 벼락공부를 시작했고 조금씩 시계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시계는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배터리가 필요한 시계와 필요 없는 시계. 더 정확히는 시계를 구동하는 무브먼트의 차이다. 배터리를 사용하는 무브먼트는 쿼츠, 배터리가 필요 없는 무브먼트에는 오토매틱이나 셀프 와인딩 등이 있지만 보통 오토매틱이라 부른다. 쿼츠는 석영을 의미하는 단어지만 그냥 전자식 시계라 받아들여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반면 오토매틱은 기계식 시계가 된다. 내가 구입했던 오메가 시계가 쿼츠다. 이런 시계의 무브먼트는 소모품이라 주기적으로 무브먼트를 교체하며 이것을 통상 쿼츠 시계의 오버홀이라고 부른다.
기계식 시계의 오버홀은 조금 다르다. 시계를 완전 분해해 부품들을 세척한 후 마모된 부품을 수리하거나 교체하고 오일링을 하면 원래의 컨디션을 되찾는다.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를 잇고 또 대를 잇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원래의 가격이 비싸고 유지 비용도 많이 들지만 환경적인 측면에서는 더 이상 완벽할 수가 없다.
손목시계의 지름은 일반적으로 44밀리미터를 넘지 않는다. 이 작은 원 안에 수많은 나사와 톱니가 들어있다. 눈으로는 분간되지 않는 작은 조각들을 고배율의 루페로 보며 핀셋을 이용해 작업하는 워치메이커들의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거기에 기계식 무브먼트의 모습은 내가 본 어떤 스테인리스 제품보다 아름답다. 오죽하면 무브먼트를 노출하는 시스루 백까지 생겼을까.
물건은 물건이다. 물건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지만 대를 잇는 물건이 하나쯤은 있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스테인리스 냄비나 밧드보다는 더 폼나보이기도 한다. 시계 세상의 지존인 파텍 필립이나 롤렉스, 오메가 같은 브랜드 외에도 파레나이, 예거, 튜더 , 오리스, IWC, 해밀턴 등 준수한 시계 메이커들을 비교하며 고르는 재미도 쏠쏠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