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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빵 Oct 05. 2022

너희가 회 맛을 알아?

마사모토 야나기바


산골까지는 아니지만 내륙 지방에서 자란 나는 계절이 열아홉 번 변하는 동안에도 생선회라는 것을 접한 일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내륙의 분지에 자리 잡은 도시답게 그곳의 더위와 추위는 엄청났다. 더운 여름철 사람들은 근교의 강가로 피서 겸 나들이를 떠났는데 주변 음식점들이 주로 취급하는 메뉴는 민물 매운탕이었다. 간혹 매운탕과 함께 송어회를 파는 곳이 있어 어쩌다 한두 번 송어회를 먹어본 것이 회와 관련된 경험의 전부였다.


요즘은 활어차가 전국 어디든 다니며 생선을 실어 나르지만 그 시절에 이런 시스템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내륙 지방의 소도시에 횟집이란 것이 있었을까 궁금해지는데 당시의 시내를 떠올려봐도 기억이 흐릿하다. 정육식당과 중국집, 분식집, 경양식집 정도가 길거리에 있었고 고만고만한 빵집 사이에 매머드처럼 거대한 맘모스 제과가 자리 잡고 있었다. 횟집이 있었다 하더라도 내 나이대의 아이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곳은 아니라 보고도 지나쳤을 수 있었겠다는 생각은 든다. 시장 안에도 음식점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무척이나 유명해진 찜닭 골목이 대표적인 곳이었다. 시장 안 좌판에도 살아있는 수산물은 없었고 대신 간고등어만 천지로 널려있었다. 그나마 살아있는 것으로는 문어가 있었는데 유리 수조가 아닌 빨간 고무다라이 바닥에 찰딱 붙어있었다.


시간이 흘러 종종 횟집을 출입하게 되었다. 횟집에는 생선회 외에도 스끼다시라고 불리던 안주거리들이 많아 술을 마시기에는 좋은 곳이었다. 매운탕이 나오면 2차라도 온 듯 새롭게 시작하는 기분이 들었고 그렇게 한참을 먹고 마시기에 횟집은 적당히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활어회의 맛만 놓고 보자면 이게 무슨 맛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탱탱한 식감은 있으나 무미 무취에 가까운 이 생선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했다. 와사비 함량 제로의 가짜 와사비를 간장에 타 생선회를 찍어 먹으면 소스의 맛 밖에는 느껴지지 않았다. 생선회를 맛있게 먹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내 입맛이 촌스러워서 그런 거겠거니 생각할 수밖에 없었는데 회를 먹을 때마다 내내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선어회 혹은 숙성회라는 것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한참 후였다. 이자까야 혹은 고급 일식집이나 초밥집에서 먹는 회는 동네 횟집에서 먹던 것과 맛이 달랐는데 그저 비싼 생선이라 그런가 싶기도 했고 요리사의 칼질 기술이 차이가 나서 그런 것인가 막연히 생각했었다. 넓게 보자면 이런 요인들도 회의 맛에 영향을 끼칠 테지만 보다 본질적인 차이는 과학적으로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다.


갓 잡은 생선은 사후 경직 상태에 접어들어 비정상적인 조직 경직이 일어나며 죽은 후 대여섯 시간이 지나야 조직이 느슨해지고 점점 부드러워지는 과정을 거친다. 한편 생선 체내의 ATP(아데노신3인산)가 분해되면서 IMP(이노신산)가 증가하는데 이 이노신산은 생선을 잡고 나서 24시간 후 최대치에 도달한다. 이노신산은 감칠맛을 내는 성분으로 이것의 영향으로 생선회의 맛과 향이 극대화된다. 초밥에 쓰이는 생선회는 일반적으로 이보다 더 숙성을 하게 되며 이때 최적의 타이밍을 포착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네타의 상태가 달라지게 된다.


활어회와 숙성회 중 어떤 것을 선호하는가 하는 것은 취향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찍먹파와 부먹파, 써니 사이드 업파와 플립 오버파처럼 활어회와 숙성회는 서로 대립하는 관계인 것일까. 자장면파와 짬뽕파처럼 공존하는 관계가 될 수는 없을까. 활어회는 막장에 찍어 쌈을 싸 먹을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되면 아예 다른 장르가 되어 서로 부딪힐 일이 없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활어회에 비해 숙성회는 전처리가 상당히 중요하다. 근래에 각광받고 있는 츠모토식 전처리법은 미야자키현의 생선 도매상인 츠모토 미츠히로가 고안한 것으로 일본 내에서 혁명이라고까지 평가받으며 생선 처리의 표본으로 자리 잡은 방법이다. 이 과정이 간단하지 않으나 요약하자면 생선을 즉살해 신경을 제거하고 '궁극의 피 빼기‘ 기술을 시전 하는 것이다. 즉살이라는 것은 생선회의 맛에도 영향을 끼치지만 단칼에 숨을 끊어 생선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주지 않으려는 행위이기도 하다.


제대로 처리된 생선을 필렛으로 만들어 냉장고에 보관하면 업장에 가지 않고 가정에서도 숙성회를 즐길 수 있다. 숙성의 정도는 자신이 원하는 만큼 조절하면 되는데 어종과 크기에 따라 숙성이 생선살에 끼치는 영향이 다르고 숙성이 가능한 기간도 달라지므로 직접 경험해보고 타이밍을 잡아가야 한다.


필렛을 먹기 좋은 형태의 회로 가공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회칼이 필요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회칼은 마사모토의 백로 특선이며 길이는 210밀리미터다. 입문용 회칼로 많이 추천되는 이 칼은 스테인리스로 만들어져 날이 쉽게 서고 녹이 슬지 않아 관리가 편하다는 장점이 있다. 가격도 부담이 없어 막 쓰기에 좋은 칼이다. 쉽게 날이 서는 만큼 쉽게 뭉개진다는 단점이 있지만 사용량이 많지 않은 가정에서는 이 때문에 곤란을 겪을 정도는 아니다.


폼 나는 칼을 고르지 않고 입문용 칼을 선택한 이유는 나의 수준이 딱 그 정도이기 때문이다. 뒤돌아보지 않고 한 번에 플래그십 모델을 선택해야 하는 도구도 있고 입문용 도구로 시작한 후 자신의 역량에 맞춰 한 단계씩 올라가는 것이 바람직한 도구도 있다. 회칼의 경우에는 후자가 적당하다 생각된다. 탄소강 등으로 만들어진 고가의 칼은 오히려 관리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이렇게 말은 하지만 최근 들어 날이 조금 더 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윗등급의 회칼에 눈길이 가긴 한다. 기변의 계절이 다시 돌아온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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