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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빵 Jul 30. 2023

룰은 룰이니까

2회 말


프로야구 원년 세대들이 아직 어린아이였던 그 시절 동네는 거대한 놀이터였다. 내가 살던 동네의 낮은 언덕은 주로 구슬치기를 하는 곳이었다. 작은 골목에서는 딱지치기와 딱지 따먹기 같은 비교적 정적인 놀이가 산발적으로 열렸고 동네를 가로지르는 가장 넓은 골목에서는 숨바꼭질과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 축구와 손야구 같은 메인이벤트가 개최되었다. 여러 놀이들이 동네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렸는가 하면 그것은 아니었다. 한 집에 아이라고는 한 명 혹은 두 명이 고작이었고 그중의 반은 여자아이라 동네에 동원 가능한 인원이 그다지 많지는 않았다.


구슬치기나 딱지치기는 비교적 분란의 소지가 적은 게임이었다. 서로의 주장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게임은 주로 구기종목이었으며 특히 야구에서는 세이프냐 아웃이냐를 두고 다툼이 잦았다. 의외로 볼과 스트라이크 판정에서는 이견이 적었는데 루킹 삼진을 당하는 일 따위는 없었기 에 볼카운트에 관해서는 그다지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주먹으로 친 공이 내야에 머무는 경우도 있었지만 반발력이 좋은 테니스공은 외야수를 넘어 멀리 달아나기 일쑤였다. 공을 친 타자주자가 세 개의 루를 거쳐 곧바로 본루로 돌아오는 일도 잦았다. 아이들은 이것을 홈런이라며 좋아했지만 과연 그럴까.


타자가 친 공이 우익수 옆을 지나쳤다고 가정해 보자. 사실 동네 야구에서 외야수는 한 명 정도가 고작이었다. 말했다시피 동네에 가용 인력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타자주자는 전력을 다해 2루에 도착했다. 이때 우익수가 공을 더듬었고 이 틈을 타서 타자주자는 3루로 향하는데 우익수가 던진 공이 3루를 크게 빗나가고 공이 뒤로 흐른 사이 타자주자가 홈으로 들어온다는 설정이다.


9.05 안타(BASE HIT)

(a) 다음의 경우 안타로 기록한다.

(1) 페어 볼이 야수에게 닿기 전에 페어지역에 떨어지거나 페어지역 안의 펜스에 맞거나 페어지역의 펜스를 넘어가 타자가 안전하게 1루(또는 그 이상의 베이스)에 살아나간 경우


타자가 친 볼이 페어지역을 굴러서 통과하는 사이 타자가 1루와 2루 베이스를 터치했으므로 야구규칙에 따라 안타가 성립된 상황이라 볼 수 있다. 이 판정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인데 여기부터는 서로의 주장이 달라질 수 있다.


9.06 단타 장타의 결정

실책이나 아웃이 개재되지 않았을 때 단타, 2루타, 3루타, 홈런은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a) 다음 (b), (c)의 경우를 제외하고 타자가 1루에서 멈추면 단타, 2루에서 멈추면 2루타, 3루에서 멈추면 3루타, 모든 베이스를 밟고 득점하면 홈런으로 기록한다.


(b)는 주자가 있는 경우, (c)는 오버슬라이딩과 관련된 내용이라 이 경우에는 해당하지 않으니 이 상황을 홈런으로 볼 수 있는 것일까. 아니다. 연속된 플레이에 실책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9.12 실책(ERROR)

실책이란 다음에 규정된 바와 같이 수비행위가 공격팀을 유리하게 만든 경우 야수에게 부과되는 통계이다.

(a) 공식기록원은 다음의 경우 실책을 기록한다.

(1) 타자의 타격시간을 연장시키거나 아웃될 주자(타자주자 포함)를 살려주거나 주자에게 1개 베이스 이상 진루를 허용한 미스 플레이(공을 잡다가 놓치는 것, 공을 떨어뜨리는 것, 악송구 등)는 실책으로 기록한다.


위의 가정된 상황에는 두 개의 실책성 플레이가 존재한다. 우익수의 악송구로 타자주자가 홈인한 두 번째 플레이는 명백한 실책으로 기록지 상에는 E9-5로 표시된다. E는 실책, 9는 우익수, 5는 3루수를 나타내는 기호다. 첫 번째 실책성 플레이가 실책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9.12 실책 (a) (1)

[부기1] 송구, 포구, 태그의 미스 플레이가 아니라 공을 느리게 처리한 것은 실책으로 기록하지 않는다.


우익수가 공을 더듬은 것은 [부기1]의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데 다만 이것은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실책의 정도를 살펴봐야 하며 주자가 2루를 지나쳐 3루를 향할 때 우익수의 플레이를 보고 뛰었는지 아닌지도 고려 대상이 된다. 이 플레이를 실책으로 보지 않을 경우 타자주자는 3루타를 치고 3루에 진루한 후 실책의 도움을 받아 득점에 성공한 것이 된다. 이렇게 한 개의 점수가 생성된 상황이라면 득점과 타점은 어떻게 부여해야 할까.


5.08 득점의 기록

(a) 3 아웃이 되어 이닝이 끝나기 전에 주자가 정규로 1루, 2루, 3루, 본루에 닿을 때마다 1점이 기록된다.


이 규정에 따라 타자주자에게는 1 득점이 주어진다.


9.04 타점(RUN BATTED IN)

타점은 타석에서의 행위로 1점 이상의 득점을 만든 타자에게 부여되는 통계이다.

(a) 타자가 안타, 희생번트, 희생플라이, 내야아웃, 야수선택에 의하여 주자를 득점시키거나, 만루 때 4사구, 방해, 주루방해 등으로 타자가 주자가 됨에 따라 다른 주자를 득점시켰을 경우 타자에게 타점을 부여한다.


타자주자의 행위가 타점에 해당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더 살펴봐야 하는데 실책에 의한 득점일 경우 타점 요건에 해당하지 않지만


9.04 타점 (a)

(2) 무사 또는 1사에서 실책이 없었더라도 3루 주자가 쉽게 득점할 수 있었다면 그 플레이 중 실책이 발생하더라도 타점을 기록한다.


이 규정에 의해 실책과 무관하게 점수를 낼 수 있었을 것이라 판단된다면 타점을 부여할 수 있다. 우리의 손야구에서는 타자주자에게 타점 없이 1 득점만 부여하는 것으로 정리를 하려 한다.


9.16 자책점(EARNED RUN)

자책점이란 투수가 책임져야 할 실점을 말한다. 자책점을 결정하려면 실책(포수의 타격방해 포함)과 패스트볼을 제외하고 그 이닝을 재구성하여야 한다. 실책 없이 진루한 베이스를 결정할 경우 의심스러운 것은 투수에게 유리하도록 한다.


득점과 타점이 정리되었다면 이 득점에 대한 책임소재도 가려져야 한다. 자신이 마운드에 있는 상태에서 한 개의 득점이 생성되었므로 투수에게는 1 실점이 부여된다. 이 실점이 자책점인가 아닌가에 대한 판단은 바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이어지는 플레이를 살펴봐야 한다. 해당 플레이가 이루어진 때가 투 아웃이라 치자. 실책과 패스트볼을 제외하고 이닝을 재구성하면 투 아웃에 주자 3루의 상황이 된다. 가상의 주자를 3루 베이스에 세워두는 것이다. 후속 타자가 삼진을 당했다면 실점을 하지 않고 이닝이 끝났을 것이므로 앞의 실점은 비자책점이 된다. 반면 후속 타자가 외야로 향하는 안타를 때렸다면 실책이 아니었더라도 득점이 가능했을 것이므로 앞의 실점은 자책점이 된다.


동네 야구에서 타자가 타격을 하고 세 개의 루를 돌아 홈까지 들어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길게 잡아도 이삼십 초가 되지 않는다. 상황 자체도 크게 복잡하지 않다. 3루타에 이은 실책 하나로 득점 하나가 추가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 단순한 플레이도 수많은 야구규칙을 적용한 후에야 기록지 상에 정리된 기록으로 남을 수가 있다. 그런데 야구 기록은 시간과의 싸움이라 해당 플레이를 눈으로 보는 것과 동시에 기록이 이뤄져야 한다. 잠시라도 머뭇거리면 그다음 플레이를 보고 기록하는 것에 영향을 주게 되고 결국 기록원이 경기를 따라잡지 못하는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기에 야구 규칙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한데 아직까지는 야구 규칙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야구 기록법을 익히고 나서 야구 규칙으로 진도가 넘어가면서 야구가 꽤 잘 짜인 게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야구라는 종목은 그 기원이 확실하지 않다. 영국의 크리켓이 라운더즈를 거쳐 베이스볼이 되었다는 주장이 가장 그럴 듯 하지만 나무 막대기로 공을 치는 운동이 크리켓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현대 야구와 유사한 경기가 등장한 것은 1845년으로 뉴욕에 니커보커 야구협회를 조직한 카트라이트가 그 중심에 있었다. 이때 처음으로 다이아몬드 경기장이 고안되었고 경기 인원을 아홉 명으로 하며 스트라이크 세 개가 원 아웃이 된다는 규칙이 정해진다.


이때의 규칙에 살이 입혀지고 수많은 수정을 거친 끝에 만들어진 것이 오늘의 야구 규칙일 것이다. 게임이 잘 짜였다는 것은 그만큼 논리가 정교하다는 것일 텐데 익히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해해야 할 상황이 많아 불평도 하게 된다. 그렇거나 말거나 룰은 룰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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