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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MITAGE Dec 31. 2023

치킨 말고 삼겹살 말고

영등포 윤달오리전문점



기력을 보하고 싶었다. 하루가 다르게 더워지는 날씨, 여름이었다. 이젠 봄과 가을이 계절과 계절 사이에서 

하나의 존재감으로 있는 게 아니라 쉬는 시간 같은 계절감 속에 조금은 다른 선택지가 필요했다. 닭갈비는 좀 평범하니까 웃어넘긴다 치더라도 백숙으로 오리를 먹기엔 마음이 무거웠다. 능이버섯을 올리려면 그만한 명분이 필요했다. 주물럭이라는 선택지를  막연히 생각해 보면 그렇게 달갑지만은 않은 메뉴다. 애초에 빨간, 붉은색의 볶은 형태의 음식, 예컨대 제육볶음이나 오삼불고기 같은 음식을 선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때때로 볶음이란 메뉴는 불 맛이 그리울 때 계란말이로 중화시켜 하나의 페어링 메뉴로 정착시킬 순 있겠지만 날이면 날마다 생각나는 메뉴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건 아마 구내의, 사내의, 학교 안에서 단체로 먹는 식탁에 자주 오르내리기 때문일 것이다. 



오리라는 선택지가 결코, 흔하지 않다는데 동의할 것이다. 포장된 공산품에서 훈제로 등장해 진공으로 압축되어 있거나 생오리를 구우려고 한다면 최소 인원이 3명은 필요한 형태의 메뉴, 반 마리를 서비스하는 곳도 있지만 그건 왠지 손해 보는 기분이다. 먹다 만 것 같은 애매한 양도 그렇지만 그럴 거면 차라리 돼지고기를 굽고 있을지 모른다. 조금 더 생각을 보탤 만큼 우울한 날이면 소고기를 굽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한국인이라면 단연 치킨을 튀기는데 익숙하지만 오리에 관해서라면 한 발자국 물러서서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다. '자주'가 아니기 때문에 벼르고 별러 찾게 된다. 한 번의 기억을 좋은 곳에서 치러야 다음을 기약하는 시간이 짧아질 수 있다. 오리는 (양)과 같아서 냄새를 잘 처리하고 관리하는 가게에서 좋은 인상을 받는다. 특유의 향이랄지, 특색을 너무 쥐어짜듯 잡아내도 안되고 움츠러들지 않게 적당히 표현하는 것이 가장 좋다. 



눈 감고 먹으면 어떤 종류인지 모르는 것보다, 이건 분명히 어떤 종류의 것이라 느껴지는 인상을 받아야 맛 이상의 내공이 느껴지는 곳이라는 말이다. 영등포에서 찾아간 [윤달오리전문점]은 그랬다. 벼르고 별러 찾아간 가게였던 만큼 내공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숱하게 들려오는 ‘배달의민족 주문’을 들으며 입장한 가게의 첫인상에는 사장님의 화려한 앞치마가 시선을 강탈했다. 수려한 꽃무늬가 등장과 동시에 반갑게 맞이해 자리를 안내받았다. 순식간에 메인 메뉴 중 하나인 주물럭을 고르면 테이블 세팅이 끝난다. 


일의 능률이란 이런 것이다.’


힘의 모멘트, 업무처리능력에 관성이 붙은 모멘트이다. 생각이 스칠 때 철판에 가득 담긴 주물럭이 놓이고 불을 켠다. 능숙하게 굽는 솜씨에서 동시에 배달 주문을 컨트롤하고 다른 테이블을 비롯한 모든 테이블의 찬이 떨어지기 무섭게 채워 넣는다. 부족하기 전에, 떨어지기 전에 묻기 직전에 채워 넣는 것 그게 진짜 서비스다.

거기에 오리를 구워주시며 가게를 운영하며 있었던 웃프지만 해프닝처럼 지난 에피소드를 공유한다. 웃다가, 울다 냉철해지는 그의 행보를 동시에 볼 수 있어 그 모습은 마치 하나의 거대한 ‘커맨드 센터’ 같다. 


수많은 작업을 요청하는 심장과 같은 역할을 한다.’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쯤 주방에서 사장님의 어머님께서는 팔팔 끓고 있는 숭늉을 직접 내어주신다. 주물럭의 양념이 입안을 가득 메우고 있을 때 한 번쯤 누르고 다시 시작하라는 터닝포인트를 제시해 주시는 것처럼 전환점을 맞이한다. 


리프레시의 힘은 무섭다.’


참던 주류를 한 번 더 주문할 수 있게 하고 배부르다 믿었던 심리상태에 큰 용기를 불어넣어 주기도 한다. 영등포에서 기력을 보하고자 했던 처음의 목표에 도달하기 수월했다. 기분 좋게 먹은 만큼, 맛에 대한 기억도 그렇지만 음식 자체가 주는 것 이상의 높은 만족도는 사장님의 움직임으로 완성되었고, 영등포를 다시, 찾아가야만 하는 이유로 충분하다. 




EDITOR

:HERMITAGE

BY_@BIG_BE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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