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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MITAGE Jan 14. 2024

돈주나요 늘豚(돈)주는 날 알아줘

봉은사역 돈주는남자 삼성역점



육(肉)탄전이다. 사람은 사람대로 고기는 고기대로 분주하다. 陣營(진영) 없는 전쟁터에서 어느 한쪽으로 휩쓸려 다니지 않기 위해 잔뜩 집중해야 했다. 자리에서 흐르는 술처럼, 찰나로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아 두지 않으면 금세 끝이 나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런 조바심이 날수록 붙잡아 둔 시간을 꼭꼭 씹어 삼킨다. 하루 저녁의 소중하고 정겨운 마무리를 위해 제대로 된 식사를 기다리기 위해 바깥이 절반쯤 보이는 자리에 골라 앉는다. 연기를 집어 삼치는 예리한 통로에는 업력이라는 年輪(연륜)이 깊게 묻어나 있고 다소곳한 生氣(생기)는 살아남았다. 


편안함이 건네는 어딘가 익숙한 분위기를 천천히 뜯어보고 있으면 기다리던 밤이 소리 소문 없이 시작된다. 곧이어 돈 주는 남자가 다가온다. 제대로 초벌 되어 쏟아지는 고기 세례에, 한 상 가득 차려지는 찬들 사이에서 혹여나 선명한 제주섬의 맛이나 걸맞은 소주 한 잔 얼큰하게 걸치고 싶은 적당한 조명의 차분한 분위기, 다양한 연령대로 구성된 다채로운 테이블들이 하나 둘 차기 시작하는 풍경까지 어느 것 하나 놓치고 있지 않다. 어디일까 먼 나라에서 찾아온 외국 손님들이 잘 구워져 나오는 한 상차림의 한국식 BBQ를 손꼽아 기다리는 대견하기만 한 장면을 어렵지 않게 목격하고 그것만으로 이곳이 삼성역과 봉은사 사이 어디쯤에 있다는 사실을 즉시 實感(실감)한다. 



차가운 겨울에 더 잘 어울리는 찬 소주와 물처럼 넘어가는 맥주병을 하나 둘 바닥 어딘가에 내려놓기 시작했다. 일단은, 한숨 돌리고 짧아지다 길어지기도 하는 아쉬운 밤을 조금이라도 길게 가려면 이쯤에서 속도 조절을 해야 한다. ‘돈주남’은 쉴 새 없이 무대를 오르내리고, 효율적으로 戰場(전장)을 지배하고 있으며 보일 듯 말 듯 하지만 아슬아슬한 視野(시야)로 그림자처럼 공간 전체를 掌握(장악)하고 있다. 발걸음은 가볍고 쉴 새 없으면서 차분하게 분주함을 이어간다. 움직임은 선수 발끝에 닿는 필드를 연상하게 하고 멈추지 않는 테이블의 회전은 승전보가 울려 퍼지는 전쟁터 같다. 편암함을 무기로 소리 없는 戰爭(전쟁)은 끝날 줄 모르고 지속된다. 분위기에 취해 달아오르기를 멈추지 않던 불판에서 그에게는 보이지 않던 땀이 계속해서 흐른다. 가둬 둔 육즙을 참지 못했을 뿐 아니라 함성 대신 터져 나온 돈() 발린 기름이 엉겁결에 코팅된다. 동그랗게 마주 앉은자리도 그렇지만 둘러앉은 사람들의 기분도 마찬가지로 기름에 취하기 시작하면 思考(사고)는 유연해지고 고기 덕분에 한결 너그러워진다.




삼성동 奉恩寺(봉은사)역은 이름대로 절이다. 다리를 건널 때마다 장엄해 보이는 한강의 남쪽, 지상보다는 지하의 기억이 많은 건 외부의 풍경보다 눈에 밟힐 만큼 자주 들르는 무역 센터(코엑스)와 백화점 지하 던전 같은 쇼핑몰을 거니는 것으로 기억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메뉴라면 딱히 정해져 있는 것들을 먹어왔고 그다지 바깥을 거닐어본 일은 드물다. 하릴없이 일정을 소화하다가, 어쩌면 모든 일이 끝난 후에 잠시 들르는 정도에 그쳐본 적은 있다. 어디를 가봐야 한다거나 하는 특정은 손에 꼽아 비교할 만한 다른 정보는 없었다. 처음 들었던 이름에서부터 강렬했던 돈주남은 무한도전의 멤버 정준하의 노래를 떠올리게 했다가, 잊을 수 없는 문장으로 도착 전부터 선명하게 기억되기 시작했다. 거리는 예상대로 낯설었고 그래도 주변을 둘러보면 외관보다는 이름이 익숙한 건물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낯선 골목 사이에서 외롭지 않게 선 돈주는 남자를 어렵지 않게 찾았다. 





추워지는 겨울, 역시 기운 차리는데 돼지고기만 한 게 있을까. 그것도 푸른 밤을 가진 섬 제주의 깊이 있는 本然(본연)의 맛이라면 더욱 그렇다. 언제나 반가운 젓갈을 얹거나 끓여 찍어댈 수 있고 오롯이 돈()이라는 주제 한 가지에 집중하는 시간은 원초적인 욕구를 충분히 만족하게 한다. 超然(초연)하게 초벌 된 고기를 테이블에서 마무리까지 편안하게 입에 오르내릴 수 있는 체계화된 시스템 아래에서 오랜만에 만난 얼굴을 마주하고 별일 없이 사는 일상을 공유하며 한 잔 두 잔 적셔 올리는데 이만큼 최적화된 테이블은 드물다. 嗜好(기호)의 영역에서도 자유롭고 대체로 만족할 만한 맛을 부담 없이 소화하게 하는 진득한 맛에서 묻어난 진지함에 결국 붙잡지 못한 여러 시간이 지났다. 낯설기만 하던 지상의 봉은사 거리에 하나의 상징적인 이름으로 큼지막하게 자리 잡은 '돈(豚)주는 남자’는 더 이상 낯설지만은 않은 골목에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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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M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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