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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MITAGE Jan 16. 2024

달큰한 감칠맛

압구정 까폼(ครับผม)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때를 잊을 수 없다. 들어가는 깊숙한 입구에서부터 사람보다 먼저 맞이해 주는 키오스크도 그렇지만 꽤 익숙한 거리에 있는 한때 꽤나 자주 지나다니던 길에 있는 가게였다. 어쩐지 지도에 찍힌 이름의 위치가 아주 낯설지만은 않았다. 압구정에 자주 가야 할 일이 이제는 없어졌을지 몰라도 가봐야 할 충분한 이유가 생겼다. 까폼을 알게 된 것 하나만으로도 그래야 했다. 첫 방문에 언젠가 애정하던 뿌님팟퐁커리를 주문한 건 다시 생각해 봐도 아주 좋은 선택이었다. 이 메뉴 하나로 모든 설명이 필요 없어졌다. 메뉴를 모두 주문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인지, 한꺼번에 많은 양을 소화하기란 능력 밖에 일이라 이후로 몇 번을 더 방문한 후에야 다른 메뉴까지도 천천히 주문해 볼 수 있었다. 감질맛 났지만 오히려 기억은 선명하게 남았다. 



한 차례의 태국여행에서 돌아온 후 지독히 뜨겁고 적응하기 어려울 만큼 습하던 지면의 열기는 하나도 그립지 않았지만 이색적으로 느껴지는 외국의 맛인 달큰한’ 국물과 입에서 탄성이 절로 터져 나오는 낯선 중독성을 지닌 타국의 감칠맛그 입에 착-하고 감기는 달달하게 까지 느껴지는 커리와 순식간에 입 안으로 사라지는 팟타이가 그렇게나 자주 눈앞에 아른거렸다. 



삼천 킬로쯤 떨어진 그곳에서 현지 맥주 싱하를 마실 땐 당장은 갈증이 해소되어 기분은 좋았지만 제대로 맛을 내는 가게에서 소주가 없음을 아쉬워해야 할 정도로 서울에서 페어링은 안정적이었다.(한라산 노지 소주에 똠양꿍 같은 국물요리라면 어떨까한국 주류와 기대 이상의 이상적인 매칭이다. 태국 음식에 중독된 이후 최근까지 정말 많은 가게를 방문해 봤다. 부지런히 도전했지만 재방문한 곳은 그리고 다시 같은 메뉴를 주문해 먹고 싶은 곳은 여기밖에 없었다. 다른 가게의 맛을 폄하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무리한 한국식 재해석을 굳이 뜯어보자면 한국인의 입맛에 맞춘 지나친 배려로 본연의 매력을 잃어버렸거나, 재료와 소스 대부분을 ‘한식’ 재료로 본래의 맛과 유사하게만 만든 메뉴를 먹어 보며 적잖이 실망했다. 


조금 유연하게 생각해 본다면 팟타이 같은 기본 메뉴 정도는  대형프랜차이즈'나 태국음식전문점이 아닌 곳에서도 볶음국수’라는 넓은 의미에서 비슷한 범주의 이름으로 차용하고, 나름의 해석을 해오는 중이지만 까폼의 카오카무, 뿌님팟퐁커리같은 현지의 정수가 느껴지는 메뉴는 다른 곳에서는 차마 비슷하게도 흉내 낼 수 없는 맛을 보여준다. 앞으로 한국에서 또 서울 어귀에서 더 많은 태국 음식점을 방문하고, 지속적으로 도전해 볼 계획이지만 까폼의 감동을 넘어설 수 있는 곳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혹여나 개인적인 취향일까 하는 짧은 두려움을 마주하는 것도 잠시, 이미 한국화 되지 않은 진짜 현지의 태국 맛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벌써 유명한 聖地(성지)다. 짧은 기간 동안 벌써 네 번째 이상 방문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여의도 더현대서울에서 복잡한 점심의 한 끼를 부탁하기도 하고, 지금도 압구정에 가야 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카오카무(족발덮밥)의 맛이 허기 없이도 머릿속을 훑는다. 시원한 맥주도 차가운 소주도 둘 다 마음에 들어 할 포용력 있는 맛이다. 어느 날 한 번은 너무 늦은 점심시간 끝자락 브레이크타임 직전에 도착하여 주문 마감으로 돌아온 적도 있다. 아쉽지만 괜찮다. 다음엔 오늘 주문하지 못한 메뉴까지 두 개를 주문하면 된다. 이제는 압구정과 판교에 있는 까폼은 그 정도로 만족할만한 맛의 시간을 제공한다. 



EDITOR

:HERMITAGE

BY_@BIG_BE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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