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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MITAGE Jan 16. 2024

개굴개굴 개구리 노래를 한다

합정동 카에루(蛙)




:かえる(蛙):개구리

박제된 개구리가 대문처럼 자리한다.

밤과 술이 깊어 갈수록 은근히 노래를 불렀다.

망원과 합정사이 이자카야 카에루에 다녀왔다.


한여름 도쿄의 공기는 꽤나 현기증 난다. 7월의 오사카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서울 정도의 더위를 생각했다가는 가슴이 철렁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近畿地方(간사이 지방)인 오사카가 습식 사우나라면 도쿄는 그래도 건식이다. 날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습도에서 적어도 아주 축축하진 않고 비교적 쨍한 편이다. 물론,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해도 몸은 그렇지 않아서 건식 체제를 유지하려던 몸도 항상성을 위해 땀을 배출하다 자체적으로 습식의 형태로 변형된다. 


사계절 모두 도쿄에 다녀왔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때마다 아쉬운 건 마찬가지였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아쉬운 계절은 여름이었다. 기대만큼 걸을 수 없어서, 거세게 몰아치는 더위에 숨을 허덕이다 보니 절로 줄어든 식욕이 의욕을 떨어트려서였는지 조금 분하지만 다음번의 다른 계절을 기약해야만 했다. 한낮에 돌아다니다 숙소인 베이스캠프로 돌아와 열을 식혀야 할 때도 있었고, 카페로 피신하거나 그늘을 찾아 사방으로 헤매는 일은 해가 쨍한 날이면 당연한 하루의 일상이었다. 뜨거운 햇살을 무시하고 무작정 걷다 보면 현기증이 나 속이 울렁거렸고 몇 시간을 아무것도 먹지 못하기도 했다. 그래도 여행이 주는 아드레날린은 대단해서 반나절이면 에너지를 회복했고, 지면의 열기가 조금은 누그러지기만을 기다렸다 바지런히 여정에 오르곤 했다.



계절마다 기억이 많지만 가장 짜릿했던 건 역시 전날 숙취가 남아있는 상태로 한 여름의 이른 점심이었다. 도미국수를 먹으러 들어간 가게에서 병풍처럼 보이는 거대한 고성능의 냉장고, 그러니까 식재료 따위를 넣어두는 냉장 기술력이 쉼 없는 찬기로 뿜어져 나오는 곳에 며칠일지 모를 만큼 보관해 차가울 대로 차가워진 병에 담긴 에비스와 같이 따라 나오는 김 서린 유리잔, 시원하게 오픈한 병뚜껑 소리 뒤에 졸졸 소리를 내며 단단하게 얼어붙은 고체에서 액체로 변환되는 것처럼 보이는 눈부신 금빛의 맥주를 아지랑이가 일렁이는 창밖을 보며 국수 한 젓가락과 함께 마셨던 일이다.  


‘도쿄의 鄕愁(향수)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음식, 더해지는 새로운 주류. 같은 도시라도 체험할 수 없는 이웃나라 로컬 맛집에서 온도가 다른 다양한 주류를 음식만으로 비용을 치르는 것보다 더해져도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 하고 다채롭게 경험할 수 있는 일본에서 마시는 사케는 여러모로 편안했다. 잔술을 체험해 볼 수 있는 크고 작은 보틀 숍에서도 또 어떤 가게에 들어가도 지역마다 다른 새로운 맛을 볼 수 있다는 건 조금 버거울 수 있는 한여름의 도쿄 여행에 목을 축일 수 있는 오아시스 같은 콘텐츠였다. 어딜 가나 자랑스럽게 위용을 떨치고 있는 사케의 프리미엄화는 각 지방별로 갖고 있는 전통에서 자부심으로 빗어낸 결과물이었다. 거기에 특유의 정서로 병마다 신성함을 부여해 스토리를 입혔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을 심혈을 기울여 골라 소개하는 모습은 소비자로서 또 거대한 도시를 여행하는 여행자로서 엄선했다고 보기에 충분했고 구체적인 해석이 더 해질 땐 흥미를 더 했다. 


한여름 밤의 꿈처럼 스러져 가는 도쿄의 향수를 달랠 서울의 이자카야를 돌아봤다. 최근 소개한 남영동에서 찾은 보석, 야루키부터 자주 가던 상수동에선 하꼬에 갔다. 상수는 일식 외에도 음식에 대한 기억이 많은 곳인데 원래 있던 가게가 더욱 발전된 형태로 진화한 곳이 바로 하꼬다. 세련된 인상에 인테리어와 전보다 한층 고급스러워진 메뉴들, 그중에서도 숙성 사시미는 주로 주문했다. 서울 이자카야에 대한 기억으로 합정을 빼놓을 수 없다. 알게 모르게 지도상으로는 광역에 걸쳐 여럿 분포하고 있는데 인근 상수와 연남까지 포함하면 선택지는 다양하다. 



합정의 카에루에서 한여름 도쿄에서 마셨던 [죠키겐 혼죠조 쇼조]를 주문했다. 현지에서 쟁쟁한 상대야 얼마든지 있겠지만 한여름과 잘 어울리는 아련한 과실의 풍미, 산뜻하게 정돈된 깔끔한 맛은 기본 중의 기본으로서 제 역할을 다한다. 데워 마실 수 있는 사케도 매력적인 맛을 내지만 꼭 차게 마셔야만 하는 이 사케는 그래서 여름에 더 잘 어울린다. 심야식당이라는 드라마가 만든 비슷한 이미지 때문일까, 얌전하고 조용한 분위기에 깔끔한 음식, 거기에 실력을 조심스레 들어내는 듯 보여주는 계절메뉴들은 이미 수많은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모습과 함께 곳곳에 은밀하게 새겨진 개구리가 카에루에서의 시간을 더 특별하게 만든다. 테이블석과 카운터 석이 가득 메워지고 프로페셔널해 보이는 주방 마스터들의 차분한 모습에서 뜨거웠던 여름, 도쿄의 향수는 충분히 자극되고 차가운 사케와 변화무쌍한 계절마다 어울릴 페어링 메뉴에 대한 기대감은 나날이 커진다.     




EDITOR

:HERM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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