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게 아니라면, 죽은 것이라기엔 주저앉은 생명체
처음엔 어떤 생명력이 들어가 있어 보였다. 하얗고, 차가워 보였지만 실제로 온도를 느껴본 적 없으니까.
외형은 생각보다 낯설었지만 시선이 어느 정도 머물 수 있다는 건 정말 당황해서거나 아니면 어느 정도는 납득할 만한 광경이었다는 것일 테니까 눈을 몇 번 깜빡였고 초점은 금방 맞춰졌다.
“차라리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지?”
“아니, 시간이 지나간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
충분히 아파야 끝이 나겠지, 시간이 지나면 뭘 해 나이만 한 살 더 먹을 텐데”
“그래 지금 보다 늙기 밖에 더 하겠어”
희고 커다란 갈기가 보인다. 길게 늘어선 꼬리가 신호등을 간신히 지탱하고 있는 두꺼운 기둥 틈에 끼어 버둥거린다. 처음엔 그게 도무지 무엇인지 알 수 없어 한참을 쳐다봐야 했다. 육교를 지탱하는 철근 에이치 빔 형태의 사이 또 사이에 걸쳐져 바닥을 적시 지도 않은 채 그대로 두껍고 거대한 그리고 아주 길게 늘어선 말총 모양의 꼬리였다. 말총의 수북한 털을 살짝 들어보려다 왕복 16차선쯤 돼 보이는 반대편에는 머리 부분이 끼어 허우적대는 것이 보인다. 이제야 겨우 무슨 상황인지 이해했다. 나중에 봤던 끼어 있던 下半身(하반신)의 두 다리가 주저앉아 서있는 쪽을 지탱하던 곳 임을 알아차린다.
반대편엔 허우적대던 傷瘢(상반)이 틈에서 꿈틀거리다 먼저 탈출한다. 어떤 에너지가 뿜어져 나올 때 무겁고 육중해 보이는 것을 과연 들어 올릴 수 있는지를 파악하기도 전에 飛上(비상) 한다.
하늘로 솟구친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괴상한 것이 퍼런색 통유리로 감싸고 있는 건물 숲 가운데 초고층 빌딩의 상부를 그대로 관통한다. 날아가 버린다고만 생각했지 건물을 정면으로 들이받을지는 예측하지 못했다.
층수를 헤아리기도 전에 유리창을 관통하는 傷瘢(상반)이 머리 부분부터 건물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모든 게 순식간에 일어났다. 부지불식간이라고 해야 할까. 생각지도 못하고 알기도 전에 먼저 관통해버린 것이다. 더욱 놀라운 건 머리부터 안으로 들어갔던 거대한 몸체가 다시 방향을 틀어 머리부터 밖으로 나오기 시작하더니 시야 바깥으로 사라진다.
눈을 뗄 수가 없다.
사라져 버리면 주저앉은
下半(하반)은 어떻게 되느냔 말이다.
고개를 돌려보고 싶지만 처참한 광경을 차마 바로 돌려 볼 수 없다. 저 멀리 하늘 위에 자극에서 머리부터 나온 상반이 꽤 길어져 잠깐이었지만 머물렀던 전부가 빨려 들어갔던 관통된 공간에서 모두 빠져나오자 곧이어 傷瘢(상반)에서 파생된 것 같아 보이는 또 다른 몸통이 개체를 만들어 따라 올라갔다. 무엇인지 가늠하기도 힘든 두 개의 비행하는 생명체가 시야 안으로 들어온 건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을 때였다.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말총 모양의 길게 늘어졌지만 건조하게 아무것도 흘리지 않았고 거기에다 또 육중한 프레임에 끼어 있던 하반으로 황급히 시선을 돌린다. 주저앉은 잘려버린 다리는 경계가 모호한 몸통 한가운데를 보다 문득 궁금해진다. 어째서 생명력을 가진 몸통에서 단 한 방울의 액체, 피 같은 게 조금이라도 떨어져 흔적 같은 것을 남기지 않는 것일까. 下半(하반)이 남은 자리 주변 바닥은 아무 일 없는 듯 메말라 있었다. 거리에 사람들도 주저앉아 꿈틀거리는 하반을 그대로 보고 지나쳤다.
Hermitage
@big_be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