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암동 문화식당

김치볶음밥

by HERMITAGE


김치볶음밥에 ‘김며들었다’아무 생각과 고민 없이 무작정 들어갈 수 있는 가게가 몇이나 될까. 문장 한 줄 한 줄에 이 가벼이 여길 수 없는 음식의 기억을 적기 위해 그간 더 예리하게 날을 세워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오갈 데 없는 마음을 그저 몇 분의 서칭에 투자할 여력조차 없이 반복의 저항을 직업병처럼 변주를 탑재한 머릿속에서 꾸준히 그리고 자주 찾는 이 단골 메뉴에 대한 예찬을 어떤 형용의 문구로 소개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메뉴의 기억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식당도 사람처럼 때때로 슬럼프와 같은 바이오리듬에 문제가 생길 때가 있다. 겉으로 봐서는 잘 모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다. 컨디션이 난조 일 때 감기가 걸리듯 체온은 오르락내리락하고 식은땀이 나거나 다한증이 있는 것도 아닌데 축축해진 손을 마주한 경험이 있지 않은가 가게를 들어선 내게 그가 말했다.



“초심으로 돌아가 보려고요”


이 음식은 초심을 대변한다. 가장 원초적인 곳에 서서 공간을 찾아오는 사람의 향수를 자극하겠다는 것이다. 비장한 전략을 처음 전해 들었을 때 담담한 이야기라기보다 전쟁을 선포하는 사람의 기백이랄 게 느껴졌다. 승산 있는 전투로 보였다. 담백한 담담함은 높은 확률로 이성적인 승리를 가져오게 한다. 최초의 모습과는 달리 조금씩 다양한 시도를 통해 완성도를 높였다. 만드는 사람이 달라져도 뚝심 있는 맛은 흔들리지 않았다. 평범함 속에 특별함을 찾았다. 가장 기본에서 출발한 그의 시도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김치의 쉰 정도에 따라 주문을 받아 들고선 재차 확인까지 할 정도였다.




“ 김치가 너무 시어서 오늘은 조금 어렵겠는데 괜찮으시겠어요?”


화구의 앞의 장인들은 음식을 만드는 예술가다. 어쩌면 식재료에 한에서는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이 완성도 있는 음식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안정감 있는 기억을 선사하는 그들의 사명을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꾸준히 혼밥을 즐겨하는 사람으로서 높은 테이블 한편에서 김치를 볶아만든 밥과 레드와인으로 하루의 피로를 씻는다. 누군가 가끔 일을 마치면 어떻게 휴식을 취하냐는 질문을 받을 때, 이 같은 풍경에 대해 묘사해보곤 한다. 김치볶음밥을 주문하고 피로도에 따라 레드와인을 고른다. 피로도가 높은 날엔 산미가 높고 가벼운, 컨디션이 좋은 날엔 묵직한 바디와 탄닌을 머금은 레드와인을 주문한다. 여기까지 설명했을 때 재차 질문이 돌아온다.



“김치볶음밥이랑 레드와인이요?”


잘 익은 김치의 시다고 느끼는 맛과 레드와인의 산미는 훌륭한 마리아주다. 꼭 산미가 강하지 않은 와인이라도 둘이 만들어내는 기분 좋은 산미를 경험할 수 있다.


‘마리아주’는 본래 결혼, 혼인이라는 뜻이지만 마실 것과 음식의 조합이 좋은 것이라는 궁합에 관한 이야기다.


누군가에는 상상치도 못한 정체인 둘의 조화는 김치의 풍미에 끼얹은 레드와인은 청량한 탄산음료의 기포가 폭발하듯 입속에서 붉은 맛이 터진다. 한번 경험해 본 이 같은 화학작용은 두고두고 생각날 뿐 아니라 홈쿡에서도 참고할 만한 재밌는 사례가 될 수 있다. 어느 날 김치볶음밥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자연스레 레드와인이 떠오른다면 이 글을 읽어본 당신도 '김며든' 것이다. 주변에서 가끔 이미 김며든 이들은 줄곧 이런 말을 하기도 한다.




“김치볶음밥은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아”

같은 말을 들을 때면 성신여대에 문화식당이 생각난다.


Hermitage

@big_be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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