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산울림1992

육전, 프리미엄 막걸리

by HERMITAGE


많은 전통 한식 주점이 막걸리를 취급하고 있지만 앉은자리에서 앉은뱅이를 자처할 수 있다, 豪言壯談(호언장담) 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종류의 풍요로운 선택지를 제시하는 곳은 많지 않다. <산울림 1992>을 들어가 보면서 느껴지는 연륜과 내공은, 들어서기 무섭게 눈치챘지만 자리에 앉아, 많은 사람들의 애정 어린, 손 때 묻은 메뉴판을 책장처럼 넘길 때마다異色(이색)의 인상을 받아왔다. 이렇게 주류가 음식까지 확장된, 복합 문화공간으로 완성하기까지 이제는 점차 밖에서는 찾기 어려운 또, 명맥만을 이어가고 있는, 8,90년대 ‘학사주점’이라 불리던 분위기의 전통 주점 형태를 무려, 19년 동안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내공의 깊이를 감히, 상상해 보게 한다.


거기에 다양한 선택지가 중요해진 ‘프리미엄 막걸리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 한국의 양조장에서 피땀 흘려 만든, 엄선된 결과물을 한자리에서 만나 볼 수 있는 편의성은 대형마트나 쇼핑몰, 백화점까지 떠올리게 한다. 이제 막 내 집 꾸미기를 시작한 사람에게 스웨덴의 홈 퍼니싱 브랜드 IKEA(이케아) 와도 같은 곳으로, 이런 분위기에서 전통주 안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제조 방식에 따라 가득 메운 냉장고, 거기에 곁들이는 음식에서, 오랜 내공의 실력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비교적 괜찮은 가격에 많이 마실 수 있는 배부른 탁주, 곡주, 막걸리라는 이미지보다, 오늘만큼은 亂臣賊子(난신적자)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그동안 꽤 마셔왔다던 사람들에게도 마음가짐을 벼려야 하는 장소이며, 소화능력처럼 선천적인 이슈를 제외하고 분위기와 상황 속에서 곡주에 오해가 있어 왔던 사람에게 취향을 찾아가기 적합한 장소다. 그동안 와인만이 가져왔던 고상한 취향의 이미지를 막걸리에서, 나아가 ‘우리 술’에서 비교적 포만감과 함께 이색적인 시간을 제공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탐구적, 체험의 시간에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육전>에 <갓김치>가 함께 나온다. 그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밥맛이 없을 땐 차라리 穀酒(곡주)를 택했다. 맥주의 벌컥벌컥도, 와인처럼 吟味(음미)까지는 아닌 줄만 알았지만 이제, 세상이 달라졌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니었는데 주식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쌀로 빚은 그 술을, 끼니 대신, 어떻게든 때우는 것에 저항하다 내린 결론이 혼탁하지만 때론 투명한 듯 보이는 순백의 탁주, 시원한 막걸리를 마시는 일, 그것 하나면 끼니로 충분했다.


1837년 경 쓰인 조선시대 문헌 상으로도 존재하는 저자 미상의 <양주방>에선 混沌酒(혼돈주)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막걸리 이야기다. 막걸리가 사람들 사이에서 ‘앉은뱅이 술’로 불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저도수 주종이면서 穀氣(곡기)를 해결한 듯 느껴지는 포만감은 밥을 먹어도 배고픈 이들에게는 든든함을, 아직, 술이 고픈 누군가에게는 조금 더 마셔도 괜찮을 것 같다는 착각을 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취한 듯 안 취한 듯한 알딸딸함이 사람 여럿을 亂臣賊子(난신적자)로 만들었다.


막걸리는 모두 마셔 없어졌지만 숙취만 남은, 깊은숨을 들이쉴 때마다 진한 누룩의 향이 코끝을 찡하게 하고 걸어 다니는 디퓨저가 된 것 같은 기분을. 어제는 분명, 오늘만큼은 취하지 않으리라 豪言壯談(호언장담) 했지만 예상대로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지금이야, 고주망태가 될 정도로 쌀로 만든 막걸리를 마음껏 마실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일제의 계속된 수탈과 광복 직후, 한국전쟁까지 겪은 우리나라는 식량난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결국, 정책적으로 주식인 쌀로 술을 만들지 못하게 했다.


다시 말해, 1964년부터 1971년이 될 때까지 쌀로 술을 빚어 만드는 건 違法(위법)이었다. 부족한 쌀을 대신해 밀가루를 섞기 시작하면서 酒質(주질)이 떨어졌고 두텁던 소비층의 기호가 다른 주류로 눈을 돌리게 만들었다. 혼돈 속에서 탁주의 침체기를 맞이해야만 했지만, 달라진 세상에선, ‘프리미엄’이 붙는’ 프리미엄 막걸리 시대’가 도래했다.




Herm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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