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 동북화과왕

경장육슬

by HERMITAGE


京酱肉丝(경장육슬), (징장러우쓰)를 먹어본 사람이라면 현지에서는 흔한 음식이지만 정작 한국, 여기 서울에서 제대로 된 맛을 주문하기 어려운 이 메뉴의 매력이라는 것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봤을 것이다. 그건 뇌리에 스치는, 배가 부를 만큼 무거운 메뉴는 아니지만 꼭 한 번은 주문하겠다는 다짐을 만들고 춘장으로 볶아낸 고기의 양념과 간이 가게마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하는 원초적인 호기심으로 이어진다.


아주 많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때때로 가능하다면 [경장육슬]을 주문해, 얇게 썬 건두부(포두부라고도 한다), 신선한 야채를 아삭하게 먹는 것만큼 참을 수 없는 조합 위에 잘게 썰린 육류, 고수의 콜라보는 중국음식을 시작하기 전, 애피타이저로 손색이 없다. 식욕을 돋우는 건 물론이고, 배부르지만은 않아서 순서를 뒤바꿔 끝내기 아쉬울 때 끝으로 주문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물론 이런 방식은 베트남의 [월남쌈]처럼 제대로 먹으려면 품이 든다. 취향 따라 귀찮아할지 모르겠지만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세팅된 [경장육슬]은 배달 주문으로 막 도착한 [퀘사디아] 같다는 점이다.


시원하면서도 따뜻한, 제대로 된 맛을 온전히 구현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선도는 물론이고 보기 좋게 준비되었다면, 흩어진 재료를 한데 모아 먹기 좋은 하나의 음식으로 완성하는데 한결 수월해진다. 간이 너무 세면 감당하기 어렵고, 반찬처럼 가볍게 집었을 때에도 부담이 없어야 한다. 모든 조건이 갖춰진 상태로 테이블에 올라온[경장육슬]은 겉으로 단순해 보이지만 완성도 있는 깊은 맛을 보여준다. 투명한 술과 곁들이기에도 이제 막 도착해 목을 축이는 맥주에도 소화가 가능하다. 선택한 후에 만큼은 全天候(전천후) 지만 거기까지 가기가 어렵다.


먼저는 지난번에 주문했던 좋은 기억의 메뉴를 고르고 데이터가 쌓이면서 호기심은 자라난다. 그때가 아주 좋은 타이밍이다. [양꼬치]와 [꿔바로우]를 무난히 통과하는 가게는 요리부에 접근하는데 설득력을 갖는다. 다른 선택을 해볼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시작되었다면[경장육슬]에 거의 다 왔다. 그 앞에 어떤 작은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처음엔 짐짓, 들어가지 않으려고 했다. (동대문)에서 맛집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어색한 일이기도 했지만 아주 멀지 않은 가까운 곳에 살면서 낯선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동대문)이란 자고로 어딘가로 향할 때 지나치는 거대한 문의 선 거점 같은 곳이다.


여기에서 별다른 약속을 잡는다거나 하는 일은 잘 없다. 예컨대 추운 겨울 <닭 한 마리 골목> 거리에서 자주 가던 가게에서 뜨끈한 닭기름이 둥둥 떠다니는 육수에 소주 한잔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동대문)은 자체만으로는 특별하지만 내려서 걷다 정착할, 그러한 동네는 분명 아니었다. (창신동)을 자세히 걸어본 적은 더더욱 없다. 길을 걸을 땐 야시장의 이미지만 잔상처럼 남아있다.


그런 동네, 뒷골목 한편에 오랜 세월을 지키고 선<동북화과왕>의 유려한 역사는 입구에서부터 당황스러울 정도로 강력한 노포의 존재감을 보여준다. 첫 방문이라면 거기에 ‘노포 분위기’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면 들어가기를 꺼려할지 모른다. 그 힘이 과연, 무시할 수 있을 만큼 일반적이라 보기는 어려워 고민하게 만들 수 있겠지만 주저하다가도 ‘여기까지 왔는데 올라가 보자’라는 심정으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면 마음먹은 데 붙은 관성이 몇 번의 발걸음을 옮겨 안으로 들어선다.


자리에서 끝없이 펼쳐야 끝이 나는 메뉴의 페이지를 거슬러 시간이 몇 시를 향해 가고 있는 지조차를 아득하고 어렴풋하게 만든다. 낡은 것을 언제나 좋아하지는 않는다. 낡았다 피하지도 않았지만 처음엔 분위기에 눌려 곧 이곳의 유구한 역사 속에 서려 있는 음식의 첫 술을 떠보기도 전에 놓칠 뻔했다. 깊이 있는 맛에 오롯이 집중하지 못하리라는 걱정은 시작을 [경장육슬]로했지만 혹은 끝을 정하는 동안 또 다른 메뉴를, 얼마만큼의 주류를 마시게 될지 예측하고 싶지 않아 졌다. 최근 이곳을 마지막으로 들어간 건 한 여름의 벌건 대낮이었다. 계산을 마치고 문을 나선 시간은 오후 네시의 해가 쨍한 지면이 가장 뜨겁게 달아오른 시간이었다.


Hermitage

@big_be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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