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동 라이라이

칠리가지

by HERMITAGE


‘두 번 오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최근 두 번 방문했다. 이 길이 맞나 싶을 정도로 골목 끝에 돌아서야 보이는 절반이라기엔 과하지만 평지와 단차가 있는 허름한 문. 붉은색 글씨로 [來來]라고 쓰여있는 <라이라이>에 갔다. 마치 한 블록의 중국 마을을 보는듯한 연희동 거리에는 소리 없는 중식 전쟁이 매일 일어난다. 경합이랄 것이 각자 나름의 종목이 있는 것 같다. 코스를 파는 곳. 간단하게 식사하는 곳.


삐뚤어지기 좋을 고량주 1+1 이벤트 하는 곳. 거리를 걷다 보면 각자의 가게에서 가장 자신 있는 메뉴들로 경합을 벌이고 서로에 대해선 크게 신경 쓰고 있어 보이지 않지만 붉은 무드로 각자의 개성을 어필하는 기이한 광경이다. 거리엔 내추럴 와인을 가득 머금은 보틀 숍에서부터 독립서점, 언제 생겼는지 모를 작은 카페로 아기자기한 것들로 몰래 조금씩 채워지는 한편, 우두커니 서있는 낡고 오래된 건물에는 주황색 맛이 날 것 같은 음식이 오가고 기침 나는 향을 풍긴다.


자리가 없을까 내심 조마조마하지만 주말이나 가장 바쁜 하이라이트 식사시간을 조금만 빗겨 나간다면 신기한 테이블 회전력 덕분인지 큰 웨이팅 없이 입장할 수 있었다. 각종 리뷰를 남길 수 있는 사이트의 후기에는 긴 웨이팅의 끝에 경험한 음식이 기다림의 비용을 지불할 만큼은 아니라는 후기를 종종 볼 수 있는 데는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분노의 카운트다운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기대 없이 들어간 자리지만 꽤나 만족스러운 기억이며 재료의 농도에서 현지를 담으려는 노력이 느껴졌다. 한낮의 길어진 해가 뉘였 해지기 전에 방문하더라도 꾸준히 오던 단골들은 지금이, 매 순간이 식사시간이라고 비웃기라도 하듯 뒤틀린 시공간에 다수의 팬층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에 근거이자 가장 큰 증거는 몸을 구겨 넣으며 문을 밀고 들어간 가게에 착석을 한 직후 목구멍의 뒤편 어딘가에 간지러움이 이르고, 금방이라도 기침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든다면 여기는 진짜인 것이다. 중식당에 갈 때면 그런 간지러움을 경험하는 순간을 즐긴다. 보통의 경우는 <하이디라오> 앞을 지날 때나 입구에 들어설 때쯤을 생각하면 바로 이해할 수 있다.



‘재밌는 일이 일어나고 있구나’



어수룩한 말투, 친절한 듯하지만 무표정인 응대는 두 개의 심장을 가진 선수 같아 보인다. 그렇게 친절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쩐지 친절할 수밖에 없는 자신을 부정하는듯한 직원들의 서빙이 인상적이고



‘곧이어’


주황색의 맛을 담은 [칠리 가지]가 나온다. 음식이 나오는 속도는 꽤 빠른 편이다. 신기한 테이블 회전 속도의 핵심으로 보인다. 가지라는 재료는 참으로 위대해서 사치스럽지 않은 가격으로도 대단한 만족을 준다. 어떤 곳에선 [어향 가지]로 또 다른 곳에선 [가지 튀김]이라 불리며 속을 채워 튀기기도 하고 가지를 자르지 않고 통째로 튀긴 후 양념에 버무리기도 한다. 스타일에 따라 양념에 버무리지 않은 것도 있다. 메뉴 이름 그대로 튀겨내기만 한 것도 나름대로 매력은 있지만 이곳의 개성을 따져 보자면 칠리의 맛이 튀긴 가지에 아주 잘 묻어있다. 두툼하게 튀겨낸 옷이 자칫 흐리멍덩하게 될뻔한 위기를 모면하고 콩국수에 중면을 사용하는 것처럼 맛을 제대로 표현한다.


재료를 구하기도 쉬울 뿐 아니라 가지의 매력에 한번 빠져들면 집으로 돌아와서 충동적으로 만들어 보기도 했는데 구색은 갖출 수 있지만 중식당이 보여주는 퍼포먼스인 ‘색’의 맛이 느껴질 정도의 깊이를 담아내진 못했다. <라이라이>에서 경험한 대부분의 음식에는 깊이 있는 색채가 느껴졌다. 아주 수려하고 대접받는 맛과 분위기라기엔 조금 투박한 인상을 하고 있지만 보기보다 맛있다. 기억에 남을만한 선택지다. 연희동에 걷다가 <라이라이> 앞을 지날 때 목구멍 뒤편의 작은 간지러움을 느낀다면 즉시, 칠리 가지를 주문하고 기호에 따라 주류를 선택하면 된다.


Hermitage

@big_be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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