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토요일.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다. 쑥떡을 구워서 아침으로 먹고, 어질러진 집을 말끔히 청소하고, 대패 삼겹살을 넣은 순두부찌개로 점심을 먹고, 저녁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거나 유튜브를 보거나 하면서 아주 게으른 오후를 보냈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저녁 시간. 아직 걷기 운동을 하지 않았다.
밖에는 아침부터 비가 내렸는데 많이 쏟아지는 것 같진 않았다. 집에서 걸을까, 우산 쓰고라도 밖에서 걸을까 고민하다가 결국 밖으로 나갔다. 비 내리는 날을 좋아하진 않지만 이런 날씨만의 매력도 있으니까.
2020.05.09 매일 걷기 26일차
비가 부슬부슬 내려 우산은 한 손에 들고 모자만 푹 눌러쓴 채 걸었다. 역시나 비가 와서 공원에 걷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래도 나처럼 우산을 들고서라도 걷는 분들이 있었는데 이분들에게 왠지 모를 전우애 같은 것이 느껴졌다.
두 바퀴 정도는 아무것도 듣지 않고 그저 걸었다. 몇 번 이어폰을 안 가져 나와 어쩔 수 없이 그냥 걸었었는데 아무것도 듣지 않고 걷는 것도 꽤 좋다는 걸 깨달았다. 그 후로는 종종 이어폰을 빼고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음악 삼아 걸었다.
걷다 보니 이 생각, 저 생각 두서없이 쏟아졌다. 보통은 나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었는데 어느 순간 마음속으로 '평범하게, 별 볼 일 없이, 뜨뜻미지근하게 살아도 괜찮아!'를 외치고 있었다. 항상 뭔가 더 잘해야 한다,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많은데 정작 실천하려는 의지가 부족하니 나를 채찍질하게 된다.
'나는 우선 매일 걷기 하나만 해내는 것만으로도 된 거야. 욕심부리지 말고, 느긋하게.'
이 말을 계속 되뇌면 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내가 더 했으면 좋았을 일들, 내가 낭비한 시간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나도 참 못 말려... 남편을 보고 배우자. 아무것도 안 하고 주말 내내 빈둥거려도 전혀 개의치 않고 행복한 그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