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걷기, 매일 쓰기 D+69

by 마리뮤





왜 그런 날이 있지 않나? 해야 할 일들은 한가득인데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 그런 날이 자주 있어서 문제지만 하여간 오늘도 그런 날 중 하나였다. 서울에 일정이 있어 외출하기 전까지 침대와 물아일체가 되어 그저 존재했다. 애매한 아점을 챙겨 먹고 또 빈둥.


오후에 미룰 수 없는 일을 처리하고 집에 돌아와 또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나를 온전히 받아내는 것은 침대뿐이다. 머릿속으로는 내가 이래선 안된다, 주말에 집안일을 싹 해둬야 월요일이 즐겁다, 낮에도 실컷 빈둥대지 않았느냐 했지만 내 몸뚱아리는 그러거나 말거나 움직일 생각을 안 한다.


남편은 친구 어머님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고향집에 내려갔다. 남편이 집에 없는 순간이 집안일을 효율적으로 착착 끝낼 절호의 찬스인데 한편으로는 남편이 없으니까 더더욱 이 기회에 늘어지게 게으름이나 피워보자는 심산으로 시간을 흘려보냈다.


밖에서 혼밥 하기가 어렵다는 핑계로 햄버거를 먹은 것이 못내 마음에 쓰여 저녁은 건강식을 챙겨 먹기로 했다. 사다 놓은 파프리카에 남은 불고기, 양파, 버섯을 볶아 속을 채우고 치즈를 위에 뿌려 에어 프라이기에 돌렸다. 비주얼은 아주 그럴싸했는데 맛은 그저 그랬다. 그래도 패스트푸드를 먹은 죄책감을 조금 덜어내는 데는 성공했다.


20200621_212240_HDR.jpg 2020.06.21 매일 걷기 69일차!


저녁 9시가 되어서야 공원을 나갔다. 거의 매일 자전거를 타고 나갔었는데 최근 며칠은 걸어갔다. 괜스레 집에 남편이 없다는 생각만으로 쓸쓸한 기분이 들어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20대 때에는 그래도 이런 날 몇 명쯤은 전화를 걸어 볼 사람이 떠올랐는데 요새는 마땅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다. 고민 끝에 친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는 수요일에 둘째를 낳고 엊그제 병원에서 퇴원을 했다. 조심스레 걸었는데 다행히 언니가 전화를 받았다.


안부와 근황을 주고받았다. 생생한 둘째 출산 에피소드를 들으며 걸었더니 등골이 오싹했다. 언니는 한번 겪어봤더니 그 고통을 알아 더 무서웠다며 경험을 전해주었다. 나도 언젠가는 겪을 날이 오겠지. 그리고 병원에서 다리를 벌리고 눕는 순간, 오늘의 이 통화가 기억나며 '아... 그때 언니 말이 이 말이었구나' 싶을 테다.


둘째 조카를 보러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었다. 언니는 실제로 보면 귀여워서 까무러칠지 모른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언니는 평생 살면서 자신을 드러내거나 자랑하는 성격이 아니라 언니의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자기 자식은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는 말이 빈말은 아닌가 보다. 우리 언니가 저런 말을 다하는 걸 보면 말이다.


즐거운 통화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아빠가 농사해서 보내주신 수박을 허겁지겁 먹어 치우고 또 물 한잔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오늘은 수분 폭탄이다!


20200621_221917.jpg 운동 후 물 한잔 D+12

빈둥대다 오늘 하루가 다 지나버렸지만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뜨니까 미련 없이 눈을 감아야겠다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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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후 물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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